카페테라스에 앉으면, 여기가 그대로 내게는 세상의 중심이 된다. 실제로 귀를 가득 채우는 것은 도로에 가득한 도시의 차 소리이고, 작은 천변 도로를 걷는 간헐적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와 자전거 페달 소리 또한 거대한 도시의 소음에 삼켜져 버리기 일쑤지만, 여기 앉아 끊임없이 침묵의 정밀화를 그리기에 골몰하다 보면, 어느덧 갖은소리들은 모두 다 희미한 배경음으로 페이드아웃되다가는 마침내, 저 끝없는 차들의 행렬은 무성영화 속 슬로모션으로 바뀌어 간다.
간혹 이 평온이 일순간에 붕괴되어 산산 조각난 다음 그 파편 음이 도로 내게 쳐들어온들 그 또한 종종 때로 대낮의 별이 되어 박히기도 한다. 나쁘지 않다.
여남은 발걸음들, 킥보드, 자전거, 차 몇 대.
여기는 세계의 센터, 신비의 생성소.
커피는 특별히 카페라테로 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걸맞을 부드러움이 필요했다. 커피잔을 테이블에 앉히자 라테에 얹힌 하트가 흔들렸다. 커피가 바닥나도록 하트의 모양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단숨에 흩어지지 않는 하트의 다정함이 내내 나를 달래주었다.
어제 그제 가을비로 인해 대기는 급작스레 식었고 하늘은 음울한 주문을 외워댔다. 기후에 지배당하지 말자, 는 결심 따위는 소용없다. 어젯밤 나는 존재론적 추위에 포위되어 임시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저께 밤으로 말하면, 모기의 뱀파이어적 관능이 내게로 이식된 것 같은 밤이었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해서 어제는 종일토록 맥을 추지 못하고 신음했다. 다행히 오늘은 새로운 활력이 돋아났다.
홍시로 단맛을 낸 배추 연근 홍시 겉절이를 만들고, 택배로 도착한 두 벌의 바지를 입어보고 꼼꼼히 흠을 잡아 반품을 결심한 다음, 손톱을 대강 터프하게 깎고서 부랴부랴 나왔다. 이도 닦지 않아, 입안에는 배추 연근 무침의 고춧가루 맛이 남아 있다. 가뜩이나 게으른 나는 서두르지 않고는 램 카페에 올 수 없다. 오후, 그것도 빛이 급속도로 미끄럼틀을 타고 스러지는 한가을 오후란 밀크티 한 모금만큼 순식간이거늘.
하여튼 아까 홍시를 으깨 무치며 나는 생각했다. 삼시 세끼란, 세상의 주부들을 도태시키기 위해 딱 좋은 트릭이라고. 밥상, 집밥의 여왕으로 일가를 이룰 게 아니라면, 남편들은 선녀 옷을 감추는 수고 따위 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세끼 밥만 꼬박꼬박 요구하면 된다. 선녀를 아낙네로 만들려면 말이다.
테라스에 앉으면, 카페 내부 사람들의 소리는 묵음 처리된다. 대신 작은 벌레 식단으로 점심을 먹은 새들의 눈부시게 반짝이는 합창을 듣는다. 오늘 여기 앉아 내가 한 일이라곤, 이 테이블 사진을 찍은 것뿐이다. 카페라테의 하트에다가, 때맞춰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들이 같이 어우러지게끔.
아까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어떤 엄마가 몹시 귀여운 아이를 안고 지나다 멈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이 둥이 흰둥이!”
옆집 화단엔 흰 개 한 마리가 묶여 있다.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내가 만질 수 있을 만큼 순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시 몇 발짝 멀어지자, 느닷없이 컹컹 짖었다. 왤까?
대개의 외로운 개들이 그러하듯, 이놈은 고개를 담장에 걸친 채, 긴 응시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제 이 자리를 떠야 한다. 오후의 램 카페에서의 햇빛과의 짧은 해후를 기억하며, 아까 오는 길에 보았던, 널린 대추와 같은 얼굴빛으로 돌아선다. Au revoir. A d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