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 카페의 실내이다. 늦은 오후이고 주말이니만치 평소 내가 앉던 테라스 자리가 비어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는 양복을 차려입은 어떤 신사가 걸터앉아 다리를 꼰 무릎 위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창가의 내 자리에서는 그의 프로필이 잘 보인다. 그는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한다. 그의 뒤로 좁은 인도와 차도 위로 열기 가신 햇빛이 최종적으로 희끗하게 추상화되기 직전, 잘 걸러진 밝음만을 부어놓는다.
이 램 카페 일기를 시작한 이후 맞는 첫 토요일이다. 다른 날과는 달리 평상시의 고요는, 누가 몇 번 주물럭거린 후 놓아둔 반죽처럼 그 형체가 변형되어 있다. 나는 오늘 동행과 더불어 천변 무대 스탠드에서 피크닉을 마치고 이리로 왔다. 평소보다 더 많은 자동차와 사람들. 이렇게 같은 곳이지만 바뀐 환경에서 늘 누리던 고요를 다시 찾아 먹겠다는 것은, 한여름에 제일 일찍 팔려버리고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느지막이 어슬렁거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옆 테이블에선 재산과 사업에 대한 담화가 들려온다. 바깥의 신사는 카페 내부로 들어와 운영자에게 핸드폰 충전을 부탁한다.
그새 Don't Speak. 어느 해 겨울에 많이 들려오던 음악이 흐른다. 그해 겨울은 누군가 내게 Don't speak.이라고 말하기가 무색하리만큼 대화 상대가 없었다. 지금의 내가 새삼 히말라야나 지리산 동굴로 들어가 은거를 시작할 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해 겨울이 내 생애 가장 철저히 외로운 겨울일 것이다. 다시 말하여 생애 첫 번째 겨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수수, 한 번 모든 잎을 벗고 숱한 가지까지 쳐 내어진 다음 뿌리로만 디뎌 본 첫겨울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을, 내 인간관계는 마지막 하나까지 낙엽이 되어 죄다 흩어졌다. 몇몇 친구들과 공유하던 아파트를 처분하여서는, 지형학적으로 바람의 소용돌이에 둘러싸인 성(城) 같은 느낌의, 언덕 지대의 원룸으로 향하였다. 느지막이 일어나 -나는 거의 폐인이었다. 하도 늦게 일어난 나머지, 은행이나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 인근 백화점에 걸어가, 최초의 식사인 저녁을 먹곤 했다. 설산 위에서 쐐기풀을 씹는 심정으로 연어 스테이크를 잘라먹곤 했다.
식사 후엔 쇼핑할 겨를도 없이 백화점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럴 때면 등 뒤로 백화점 폐막 음악인 메리 홉킨의 Good bye good bye가 흘러나오면서, 단지 연어 스테이크 하나 먹었을 뿐인데도 이 백화점의 VIP가 된 듯 느끼게 해 주는, 직원들의 90도 각도 인사를 받으며 백화점을 뜨곤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하는 합창이, 그들의 꺾인 척추의 건반 위로 메아리치곤 했다. 차가운 바깥공기에, 내 입에서 탈출하는 흰 김이 서리면서 내 긴긴밤이 시작되곤 했다.
아파트 전세비 뺀 돈을 나는 마구 썼다. 잔고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 겨울 뒤 필연적으로 도래할 봄 이후의 세상은 남들의 것인 양 그 겨울을 통째로, 내게 주어진 최초이자 마지막 시간처럼 살았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올 봄을 나는 지웠었다.
그때의 이런저런 세팅에 대한 추억은 일종의 적막 가운데 향기였다. 방의 가구는 최소한으로 단조로웠다. 언젠가는 다시 그런 느낌의 공간을 회복할 것이다. 가스 레인지는 설치조차 하지 않았다. 라면도 달걀프라이도 은행 볶음도, 모든 조리는 레인지로 대신하였으며 양념들도 철폐했다. 간이 필요할 때는 오리엔탈 드레싱과 마요네즈로 대신했다. 밤마다 편강을 씹고 끝없이 커피를 마시며 무협 비디오들을 섭렵했다.
싱글 침대 - 그 누구도 들인 적 없으므로 콘텐츠 면에서도 철저히 싱글인 - 위에는 고흐의 ‘밤의 카페’ 그림이 프린트된 담요를 깔고 그 위에는 달리 심므의 달콤한 수선화 향을 뿌리고서 눕곤 했다. 임상적으로 그 향이 악몽을 막아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달리 심므 외에도 살바드로 달리의 온갖 향수들이 다 있었다. 달리 믹스, 라구나, 르 로이 솔레이으 등등. 향 좋은 바디클렌저로 샤워한 다음, 크지 않은 원룸 화장실의 작은 창을 통해 욕실의 김을 추운 공기 속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난방을 높인 채 방에서 뒹굴었다. 향수를 사러 간 랭커스터 매장에서 그 브랜드의 모든 라인의 화장품을 차례로 구매한 나머지, 담당 코너 직원과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녀가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크리스마스 때 그녀는 특별한 카드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두통과 취약한 몸 상태가 일종의 신병일 지도 모른다며 진지하게 걱정해주기도 했다. 아마 그럴 거라고 여겼다. 그녀는 친구의 예를 들면서 내림굿을 받으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내 증상이 내림굿을 받아도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 절망스러웠다. 길고 깊게 골진 겨울이었다. 아주 추운 겨울이기도 했는데, 내면이 첩첩이 냉풍으로 봉쇄된 나머지 바깥의 추위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 추위는 내게 관념적이 되었다. 나는 내복도 없이 달랑 반팔 앙고라 니트 위에 얇은 가죽점퍼 하나만 걸친 채 거세지는 저녁 추위를 뚫고 마트에 가곤 했다.
삶에서 어느 것도 반복되는 것은 없다. 겨울도 계절도 나날도 일상도 나도,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도 신기루에 불과하다. 여기 속아 넘어가 느슨해졌다가는 어느새 운명의 철퇴를 맞고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 이른 실망에 자신을 내주고 나면,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다. 어린이가 풍선이나 연을 쫓듯,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발걸음을 따라 옮겨야 한다. 나의 잉여 퇴락기가 가르쳐 준 진실이다.
내게는, 대문호의 작품들만큼이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기록이 있다. 하루는 영월의 폐교를 개조해 만든 한 도서관에 소장된 한 평범한 개인의 몇십 년에 걸친 일기를 보았다. 그의 기록은 개인사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대 전체에 대한 사료의 가치까지를 지니게 되었다. 존경스럽고도 부러운 작업이 있다면 내겐 그러한 것들이다.
삼사십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는 한 사이클 정도의 사계(四季)를 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비발디나 피아졸라의 사계처럼, 사계라는 주제란, 꽉 차고 변화무쌍하며 완결성을 가진다. 사계라는 사이클은 하나의 시간적 우주이다. 우리가 공간적 우주의 모든 경계에 근접하기란 한계를 지니지만 시간적 우주는 또 다르다. 한 사이클의 샘플 정도는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일단 하루, 일주일, 한 달, 분기, 그리고 사계.
막연하고 방대하기는 하지만 사계를 그려 내고프다라는 욕구가 어느 순간, 호숫가 위로 튀어 오르는 잉어처럼 일어났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이 램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약 일주일 전 여기 테라스에 앉아 있는 동안에 줄곧 떠돌던 생각이 절로 하나의 문장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래, 램 카페의 사계를 기록하자, 오늘부터.”
이제 완전히 땅거미가 내렸다. 이 글쓰기에 도취되어 일몰의 점진적 과정을 놓쳐버렸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만이 환하다. 카페 안의 체감 온도가 더 올라가고 문득, 이곳의 샹들리에들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다. 짙지 않은 초록의 카페 내벽이 부드럽게 빛난다.
하나의 멜로디를 애써 기억하려 한들 다음에 이어질 진한 개성의 멜로디 하나가, 갖은 색들을 덮어버린 검정 크레용처럼 그 전의 색들을 덮어 감출 것이다. 서서히 벗겨 내어야 한다. 삶의 지층에 깔려 잠자는 멜로디들을. Au revoir. A d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