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중고 책방3.

by 래연







하지만 내 막연한 의욕이 의지로 바뀔 만큼은 그 카페의 입지가 좋지가 않다. 왜냐면 이 동네에는, 봄이면 수려한 벚꽃 나무의 향연을 기대케 하는 근사한 천변을 주변으로 속속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떼의 고양이 가족이 소파를 긁어 제치며 뛰노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출중한 커피 맛과 쓸 만한 인테리어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도 있고, 무슨 음료를 마시건 커피는 덤으로 나가서, 소위 1+1의 혜택을 주는 곳도 있는데, 이 카페들이 무얼 장점으로 삼건 간에 하나같은 공통점은 무엇보다, 이 카페들에선 멋진 천변과 하늘과 나무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청년이 있는 카페는 하늘도 천변도 없이 오로지 지하의 은하수를 배경으로 흐를 뿐이다. 당연히 인적이 드물다. 입지적 실패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이들은 죄다 천변으로 몰려가 앉는 동네다 보니 이 카페는 점점 더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고 있지만 이때까지 나는 아직 이 카페의 입지적 위기를 눈치채지 못하는 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카페는 카페 소식이며 각종 전시 프로그램을 온라인상에 활발히 게재하는가 하면 차와 음식들의 질도 훌륭해서, 그래도 누군가들은 들르겠지, 막연히 여기던 참이다.





그런데 이런 온갖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이 카페의 격을 떨어뜨리는 건 바로 그 격조 넘치는 카페 이름이라는 걸 깨닫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앵프라맹스. 어떤 미학적 개념을 지칭하는 그 불어 이름. 동네 주민들에게 먹힐 만한 이름이 전혀 아니다. 그런 이름이란, 이 장소가 카페인지 술집인지 갤러리인지 무슨 문화동호회인지 정체성을 흐릴 것임에 틀림없다. 이, 뭔가 아닌데, 하는 느낌을 확인한 것은, 언젠간 가야지 언젠간, 이런 뇌까림 끝에 드디어 다시 간 언젠가였다.


“이름부터가 동네하고는 떠요. 앵프라맹스가 뭐예요. 이름이 별로죠.”

“그러게요, 차라리 별 다방 이런 이름이 낫겠어요. 외국어로 하면 있어 보이긴 하려나, 친근하지 않죠. 익숙하지도 않은 이런 종류의 외래어는......”

“천하잖아요, 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있는 척하는 거.”

청년은 낮고 여유로운 음색으로 딱 자르듯이 이 말을 내뱉었다.




저항할 수 없는 중심이다. 삼십은 되었을까. 그에게서 이런 문장을 듣는 게 짜릿하다. 세대와 상관없이 모두가 대체로 ‘천하게 살기’에 동의한 채 살아가는 마당에 이런 고전적 페다고지가 청춘의 입에서 흘러나오다니.

있어 보이려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고가 일상인 무리 틈에서, 꾸밈없는 혼의 실루엣 자체로 선, 공작새 앞 까마귀의 당당함 같은.















몇 번을 더 들르노라니 그 카페가 얼마나 한산한지 와 닿았다. 페북에는 카페를 다녀간 손님들과 그들의 아이들 사진이며, 미대 출신인 여기 매니저가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벤트에 참여한 이들의 초상들, 이 지역 작가들의 전시들이 계속하여 올라왔었기에, 누군가들은 이 장소를 빈번히 들러 즐기리라 막연히 여겼었다. 아마 그 누구들도 나처럼, 다른 누군가들은 다녀가겠지 여겼을 거다.




초가을 바람이 불자, 나는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부과한 습작을 위하여 또 이 카페를 찾는다. 탱고를 소재 삼아 연작을 시도하고 있다. 하나가 끝나가고 그다음 작품의 윤곽이 자리 잡을 참이었다.

아프리카 이주민과 관계된 저번 파티 이후 내가 여기를 비우며 여름의 밀림 가운데서 혼돈한 동안 이 카페는 내 정신의 밀림 가운데 방치되어 이제는 이 동네의 모든 골목들의 끝에서 가느다랗게 점멸하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 위로 시선을 가득 채우는 서고엔, 이 시대 알려진 모든 소설가들의 웬만한 소설들로 빼곡하다. 이 벽면 자리들에는 좌석마다 하나씩 빈티지한 느낌의 스탠드가 놓여 있다.

이 청년은 프랍을 잘 만든다. 그동안 나는 거의 프랍을 부탁해 먹었지만 이미 여름은 소낙비처럼 쓸려갔으니 이번엔 따듯한 커피와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곧 이 카페 최신 메뉴가 내 테이블로 온다. 발을 오므린 게 모양의 빵을 잘라먹으며 서고의 책을 뽑아 읽기도 하면서 이 저녁을 소일한다. 단 한 번, 카페에 흐르는 노래 이름을 물어보기 위해 청년에게 말을 건다.




“잠시만요, 알아볼게요.” 하고 나서 잠시 후 그가 건넨 메모지에 적힌 이름, 다이아나 팬튼. 집에 가 유튜브에서 찾아 또 한 번 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게는 여기 지하 카페에서만 더 정감 있게 다가올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1d3bv3G_Abk




















매거진의 이전글은하수 중고 책방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