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중고 책방2.

by 래연




청년은 청년 시절의 고흐처럼 생겼다. 진한 눈썹과 큰 눈, 육감적으로 벌어져 외기(外氣)를 호흡하기에 유리할 것만 같은 콧구멍, 얇지 않은 입술. 옷보다는 혼(魂) 자체의 실루엣을 드러내듯 마르고 꼿꼿한 몸매. 확실히 이 시대에 범람하는 취업준비생의 얼굴들 위로 드리운 표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이날은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그로서는 바쁜 낮이다. 평소엔 찾는 사람이 드문 지하의 카페지만, 오늘은 아프리카 이주민 여성의 작품을 전시하고 관련 문화를 소개하는 단체의 행사가 진행 중이라서 청년도 동시에 분주해져 있다. 촘촘한 서빙과 행사 진행을 살피는 눈길이 이어져야 하므로.

그래도 한마디, 두 마디, 그와 나는 뭔가 아깝다는 듯 덧붙여간다.


“융, 좋아하세요? 저는 라캉 쪽이에요.”

“라캉, 예전에 대학원에서 수업받고 리포트 낸 적 있어요. 정과리 선생님 강의였죠.”

“ 아, 불문학 하셨어요? 전 영문학 전공했는데, 저희 교수님이 그런 말씀 하셨어요. 솔직히 영문학은 평생을 바쳐 연구할만하지는 않다. 섬나라가 뭐 있겠어요. 하지만 불문학이나 독문학은 다르다고 하셨죠.”

“막상 전공자인 저는 불문학이 다른 나라 것들에 비해 가볍다 여겼는데요.... 괴테, 셰익스피어...... 음 불문학이면 누구를 들면 좋을까요?”

“같이 수업 듣는 프랑스 교환학생 있었는데 그 친구가 궁금해하더군요. 번역된 거 읽어도 보들레르의 시들이 와 닿느냐면서. 랭보는 어떻게 번역해도 원어의 느낌을 망칠 뿐이라 번역 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랭보, 어렵죠. 훗, 제가 랭보로 논문 썼는데 논문이 통과된 것도 순전히 어려워서일 거예요. 프랑스인 교수님이 그랬거든요. 랭보는 프랑스인조차 이해하기 힘들다고. 그러니 논문을 어떻게 쓴들 그게 틀렸다고 하기도 그렇죠.”

융을 부싯돌로 삼아 라캉이 쏘시개가 되어서는 보들레르에 이르러 이글거린 그의 눈빛이 랭보에 이르자 활활 타오른다.

그러나 곧 한 떼의 손님이 몰아닥쳐 그는 부지런히 커피를 갈아 우려내야 한다.



가게 매니저는 이 청년이 어느 유명 작가 P의 문하생이었으며 시를 쓰고 있다 했다. 그 말을 듣고부터 어느 카페에나 다 있는, 물과 시럽 옆에 고이 놓인 베이지색 휴지가 달라 보인다. 저기다 한두 구절 시를 적으면 좋겠다 싶다. 적어놓고 맘에 들지 않으면 확 코를 풀어 버린다던가.


그는 여전히 바쁘다. 나는 나대로 이날 행사에 빨려 든다. 차려진 음식을 주워 먹고 다른 참석자와 친교를 나눈다. 몸살 기운이 있는 아프리카 여자 나디아는 빨간색 붙임머리를 덧대어 내 머리를 아프리카식으로 땋아주었다. 이식된 머리칼이 데려온 이방의 혼을 만끽하며 아프리카 춤을 배웠다. 전시된 도자기 꽃병도 샀다.

이제는 카페 안 그 어디에나 그가 있다. 일단 한 번 인지된 존재들은 시선의 반경을 넘어 서로를 보기 시작한다.



이제 그곳은 내게 언젠가 한 번씩 들러야 할 곳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