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를 버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강한 공포심이 몰려오는 그런 관계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관계라는 직접 신호일 것이다.
강한 공포심을 동반하면서까지 끝끝내 동반하여야 할 관계라는 것이 있을까?
강한 공포감을 주는 관계의 다른 이름은
막강한 사로잡힘일 것이다.
사로잡힘이란 이 관계가 특히나
심리적 지반 형성 차원에서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말이 되고
이 토양에 지독한 양분이 되는 것은 종종
이른바 세상에서 통용되고 강요되는 종류의 어떤 '명분'.
그런데 개인에게 있어
어떤 명분보다도 앞선 명분이란 게 있다면
존재 그 자체, 생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내가 존재하고 생존하고 보아야 하는.
이 명제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 명분 즉,
존재와 생존을 깎아 먹고 갉아먹는 명분이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명분을 잃는다고 할 수 있다.
나의 격, 나의 명예 또한
존재나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에
외압에 의해 이것을 잃고서 되찾을 방법이 묘연해진 이들이
극단적 선택까지도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격을 떨어뜨리고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위협하는 관계들에 대하여
조금도 참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먹이가 되지 않겠습니다,
라는 선언을 밖으로 하든 하지 않든 간에
자기 속에서는 분연히 선언하고
분리하거나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나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나 다름없었던 고양이가
한 마리 또 한 마리 떠나고 나자
이런 진실이 또렷이 보였다.
그동안 고양이들은 나와 세상의 관계들 속에 끼어있었던
에어쿠션 같은 완충제였었다.
견디게 도와준 존재들이 사라지자
그 외곽의 관계성들이 더 잘 보이고 와닿게 되었다.
관계성이 부당하거나 일그러지거나 왜곡된 채 유지되어온 관계들을
어떤 명분으로라도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내 삶을 버리지 않으려면
대신 버려줘야만 할 고질적 관계들이 있다.
모두 다 무난하게 다 가지고 갈 수만은 없다.
유지하려는 쪽에 자꾸 이유를 주려다 보면
주어야 할 이유가 계속 생기게 되어 있고
그러다 보면
주고 있는 주체인 내가 어느덧
상실되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