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 손이 타인의 손 같다
식사 주문하듯이 비를 주문할 수 있다면 지금이 그러고 싶은 순간이다.
모리가 떠나기 전엔, 모리가 가고 나면, 그동안 나들이를 못하고 살았으니 1박 2일 여행이라도 갔다 올까 했었지만, 막상은 남은 로리를 돌봐야 했고, 마침 우기가 와 있기도 했고, 다른 할 일도 있었다. 떠나지 못할 사정으로 포위되어 머물렀다.
작년 이맘 맏이가 떠났을 때 다른 두 마리는 예상외로 초연했었다. 그들의 태도는, 아직 우리들은 삶의 편에 있거든, 하고 말하는 듯했다. 맏이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반면 모리가 아팠을 때 로리의 태도는 달라졌다. 매일 핥아줬었고 새삼 나란히 붙어 있기도 했고, 마지막 날엔 뉘어 있는 시신 옆으로 와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모리가 떠나는 날로부터 이틀 정도는 겁을 먹은 듯 침대에 붙어 평소 같지 않았다. 이러고 보니 당분간은 로리가 좀 더 편안해지게끔 곁에 있고 말을 걸어주고 자주 쓰다듬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 한 달이 되어간다.
지난 몇 년 내내 쓰기 중독이 되어버린 나를 버거워하던 날들이었는데, 특히 근 한 달 여는 무언가를 쓰기엔 참으로 바빠져 있었고, 이게 차라리 편하기도 했다. 무언가에 밀려 계속 쓰게 되는 것도 어딘가 고역이다. 허기를 계속하여 생산하는 일처럼. 멈출 수 없는 러닝 머신 같은 것이다. 러닝 머신 위에는 심장 내과에서 딱 한 번 올라가 보았을 뿐이지만.
대학 때는 일기조차도 쓰지 않았었고, 대학기부터 잠적기에 이르는 13년 정도의 시간 동안엔 토탈, 일기 서너 페이지가 전부였다. 기록이라곤 하지 않은 그날들은 지금 와 돌이켜보면, 푹 찌르면 붉은 단물이 죽 터져 나오는 수박 같은 시간이었다고도.
일기라는 형식의 기록을 나도 모르게 다시 잡은 날들의 시작은. 그러니까 몰려들었던 일차 하객들이 우르르 돌아가면서 끝난 청춘의 잔칫상을 무른 바로 직후부터였던 것 같다. 여러 번의 파열이 겹쳐 나중엔 완전 짜부가 되어 일그러진 깡통처럼 통통 울부짖으며 결핍을 자꾸 꺼내 보이고 호소하게 되었던 것이.
오롯이 삶을 누리던 꽉 찬 날들엔 따로 기록이 없었다.
내게 기록이란 결핍이란 조건과 맞물려 있는지.
무언가를 묘사하는 단어 따위 떠올리지 않고 삶을 맛보고 있는 순간들을 반긴다.
어제였나, 동네에 늘 있지만 전혀 보이지 않던 간판이 몇 년 만에 갑자기 처음으로 보였다.
인식의 신장개업에는 언어들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많다.
오른손을 들어 왼 어깨에 올려보면, 내 오른 손마저 타인의 손 같다.
따스하다.
왼 어깨가 나고, 오른손은 온기에 찬 뭇 인격들의 대표라도 되듯이.
이 느낌 정말인지, 다들 한 번씩 해 봐요.
내 안에도 나를 위로하는 응급반으로 파견된 누군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