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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인형극제 웹진 COBAZIN Vol.4에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의 저자 래연 인터뷰

by 래연






춘천인형극제 웹진 코바진 COBAZIN 4호(11월)에 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습니다. 취재해주신 특파원, 극단 푸른 해 대표 정명필 님과 코바진 편집진께 감사드립니다!! 한 명의 관객인 제가 춘천인형극제 웹진에 실리다니,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코바진 인터뷰는, 저와 인형극 그리고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책에 대해, 책이 나오기까지 지난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게 된 계기였어요. ⏳




골목 같은 것이 떠오릅니다.

삶의 무수한 미로 속에서 모르는 골목을 따라가 길 끝에 뭐가 나오는지 궁금함을 감출 수 없어 죽 걸어가 보게 되는. 저의 인형극에 대한 기호가 바로 이 골목 같은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골목을 따라가 본 사람은 알겠지요. 골목 끝이 단지 집이나 공터로 막혀 그 뒤가 없을지라도 그 '끝의 공간'이란, 모르는 어딘가로의 연결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요.


그러니까 흔히 끝을 안다고 여겨지는 세계의 끝은 실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겠지요.




코바진에 소개된 내용의 앞부분을 소개합니다.





1. 제목에 대해: 자유와 소통의 갈망,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이 이야기의 배경 도시인 샤를르빌 메지에르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지닌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태어난 곳이다. 이에서 착안하여 제목을 지었다.

피노키오는, 인형의 제약을 벗고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길 갈망하는 존재, 바람구두란 그 존재의 여정을 상징한다. 바람이라는 요소 또한 자유와 소통의 상징이다.

랭보의 시 세계와 피노키오는 맥이 통한다. 둘 다, 존재의 변환, 탈바꿈(métamorphose)과 관계되어 있다.



2. 내용 소개: 인형극 테라피

샤를르빌 세계 인형극 축제의 한복판. 다채롭고 몽환적인 축제 분위기에 녹아 들어가던 나는 어느덧, 과거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운명이라는 줄에 칭칭 감겨 어쩔 줄 모르는 마리오네트처럼 몸부림치며 살아온 내 안의 인형이 독백을 시작한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설렘과 도처에 도사린 악몽들이 교차하던 ‘피노키오 시절’(격동 성장기)를 다시 만나간다. 이 혼란의 터널과 터닝포인트들을, 나무인형 피노키오가 진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빗대어 그려낸다. 인형극들을 거울삼아 문득 깨어난 ‘나’라는 인형이,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마치 인형극 속 인형 같은 모습으로 던져진 우리 삶의 조건들을 바라본다. 일종의 인형극 테라피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인형극 축제를 배경으로 하였지만, 공연 감상이나 평가가 주축을 이루지 않는다. 인형극이라는 종합 예술의 스펙터클들이란, 묘사하려 들수록 언어만으로는 현장의 감동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루해지기 쉽다. 어차피 유튜브엔 잘 갈무리된 동영상들도 있지 않은가!

그보다는, 이 분야에 앎이 많지 않은 평범한 한 관객으로서, 내가 인형극과 축제로부터 무얼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잠재적 관객이 될 독자에게 일종의 샘플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3. 나와 인형극: 늦깎이 인형극 애호가

정작 어릴 때는 단 한 편의 인형극도 본 적이 없다. 나는 늦깎이 인형극 애호가이다. 어릴 땐 모든 아이와 마찬가지로 그냥 인형을 갖고 놀았을 뿐이다.


원래는 시를 좋아했다. 한글을 깨치자마자 시를 쓰기 시작했고. 나중엔 결국 프랑스 시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랭보를 전공하게 된 것은 16살 때 발견한 랭보의 시 한 구절이 계기였다. 샤를르빌에서 태어난 시인 랭보는 이런 시를 썼다.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가슴들이 열리고 온갖 술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의 어린 시절과 사춘기도 험난했다. 영혼이 바스러져 가는 것 같은 나날들을 보내다가 만난 이 구절은, 한 개의 큼직하고 아름다운 열쇠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인형극에 대한 유일한 기억은 실제 극이 아니라 동화책이었다. ‘인형 놀음장이 폴레’라는 동화 속에는, 커다란 카스퍼를 인형이 어린 소년 폴레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비한 무대 뒤 공간이 나온다. 컬러 삽화가 아주 몽환적이었다!


실제 인형극은, 삶의 곡절들을 넘겨 가면서 오히려 나중에, 서른 넘어 접했다. 아픔이 깊어지며 세상을 등져도 봤고, 마음의 치유가 큰 화두가 되었던 30대였다. 이때 프랑스 그림책들이며 미술치료 그리고 점성학 등의 각종 신비 분야에도 탐닉했다. 이렇게 자기 치유에 골몰하던 어느 날 인형극을 보게 되었다. 러시아 극단에서 마리오네트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인형의 몸짓을 빌어 나오는 탱고곡이 순간 그렇게 뭉클할 수가 없었다.


미술치료에서는 대상, 관계, 질료 등이 다루어지는데, 여기서도 인형들의 존재가 ‘중간 대상’으로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내 마음속에선 언젠가부터 詩, 그림책, 인형극, 테라피가 연결지점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배낭여행 때 랭보의 고향 샤를르빌을 찾았다가, 거기가 세계 인형극 축제의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한 작은 도시가 일순간 인형극의 세계로 돌변하는 샤를르빌의 축제는 갈 때마다 업그레이드되면서, 매번 새롭게 벅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축제를 나만의 예외적 추억으로만 남기기보다, 거기서 조금 더 원하게 되었다. 기왕이면 그 축제의 시간을 증류하여, 우리가 위치한 이 현실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 고인이 되신 인형극 축제 창시자 자크 펠릭스의 말에서처럼, ‘우정’과 ‘의지’로 되찾는 공동체의 에너지 같은 것이, 책 속에서 직접 강조하여 외치지 않더라도, 같이 녹아들어 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세계인형극 축제 속에서 찾은 반딧불 같은 삶의 순간들!!

한국 최초 인형극 에세이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https://linktr.ee/ulfeena


*** 서평 이벤트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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