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프랑스!
떠나는 날 아침, 나의 고양이들은 자고 있었다. 1년 후에나 저들의 털을 만지게 될 것이었다. 다행히도, 충직한 동물들은 내가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도록 심지어 그들 나름의 연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울거나 보채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잠을 틈타 살금살금 빠져나와 공항버스, 긴 비행, 거의 종일에 해당하는 경유 시간, 그러고서야 이윽고 파리에 떨어졌다.
샤르르빌 뫼즈 강변 야외무대에서의 인형극 공연.
프랑스 안에서 포Pau라는 목적지로 곧장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우선 며칠, 벨기에 근처 샤를르빌 메지에르에서 열리는 ‘세계 인형극 축제’를 보러 갔다. 목적지로 가기 전 일종의 베이스캠프였다. 무엇보다 이곳은 인형극 이전에 랭보의 유적지로, 나로선 두 번째 방문이었다. ‘랭보 중학교’에는 랭보가 앉아 생각에 잠긴 동상이 있는데, 그 새 누군가의 장난기에 의해 발톱이 칠해져 있었다.
수많은 아이들과 어른들, 인형들 속에서 먹고 놀며 지내노라니, 날씨도 화창할 프랑스 남서부에 공부하러 간다는 게 별로 실감나지 않았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고 낮에 해가 날 때면 등이 꽤 뜨거웠다. 기후변화가 심해 안개가 끼면 목이 좀 아프기도 했다. 낮에는 인형극을 보고 저녁에는 호텔방 TV로, 프랑스어 더빙이 어색한 미드 튜더스Tudors를 보며 소일하였다. 결과적으로 여기서의 시간이 프랑스 체류 중 가장 한가로운 나날이 될 줄은 짐작도 하지 못 한 채.
인형극 축제 시즌에는 샤를르빌 시내에 숙소를 잡기가 쉽지 않아서 기차로 40분쯤 떨어진 랭스에 숙소를 정하고 출퇴근을 했다. 오가는 차창 밖으로는 눈과 마음을 휴식시키는 평야가 펼쳐지곤 했다. 간간이 끄적였다.
자동기술법으로 흐르는
구름의 산문을 번역하다 보면
상념이 물체를 빚는 것은 확실하다
세상의 의자들은
허공에 던져진 외로움의 형태들
요람은 진보하여 그네가 된다
제초기로 잡념을 밀고
빛의 양수기를 풀어 놓는다
한 무리의 새떼들과
들짐승을 이용한 자연농법
평화에게 장기전세 낸 들판
랭스의 호텔에서 열흘을 묵고 파리를 거쳐 남쪽으로 향했다. 타르브 Tarbes 행 새벽 기차가 포에 도착한다. 예전의 이탈리아행 밤기차에서처럼 차장이 친절히 깨워 모닝커피를 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알아서 내려야 했다. 하마터면 역을 지나칠 뻔했다. 부랴부랴 침낭을 걷고 끈 매는 신발에는 겨우 발만 담은 채 겨우 기차 밖으로 탈출했다. 새벽안개가 있었던가? 내 기분 속 기억에는 꼭 있었던 것만 같다. 역 앞에는 다행스럽게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어라, 도시의 첫 느낌이 희한하다.
그 1년 후 가을, 11월도 아닌 10월말 아침. 갑작스런 한파에 길이 다 얼었다.
나무들의 혼이 몸을 벗어나 떠나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하필이면 나는 그때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해마다 나는 가을을 심하게 탄다. 유기체를 입은 내 혼은 스며드는 한기 속 소멸되는 것들의 합창을 매번 가까스로 빠져나오곤 했다. 거리를 거닐면, 번역되기 힘든 사연들로 일그러진 영혼들이 가뜩 얼룩진 팔레트를 들고서 나를 집요하게 따라온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어느 새 이들의 피치 못할 붓 끝에 눅눅한 빛으로 칠해져 버린다. 그리하여 세포 속속들이 스며든 어둑한 낌새를 몰아내지 못해 곧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되곤 했다.
사실은 매가을마다 아주 오래전 유년기의 망령이 거듭 다시 왔는지도 모른다. 나의 유년기는 막다른 골목, 벼랑이었다. 나는 내 안에 깊이 숨었고, 표면의 나는 내가 숨기 위한 껍질에 다름아니었으며 이후 나는 이 세상에 유령이 되어 살았다. 또 그 유령은, 유령이 아닐 수 있는 방식으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자기의 살과 피를 매우 그리워하고 꿈꾸었다. 이제 그 유령은 살과 피를 다시 입고 싶어 미치겠다. 하지만 유령은 오래된 비밀주의자로 살아와서 그게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가을마다 귀환하는 내 유년기의 망령들과 사투를 벌인다.
가을 타는 증상, 아마도 이 신드롬은 걸어온 삶을 되받아 쳐주는 ‘메아리 없음’에 대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저편에서 누군가가 대답해주면 순식간에 다정한 담요에 감싸진듯 녹아내릴 수도 있는 증후군일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최초의 걸음마를, 부모가 지켜보며 격려해주는 가운데 내딛지만,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나 누군가 내가 걸어가려는 방향에서 ‘너의 방향이 옳아’ 혹은 ‘넘어진대도 여기 내가 있어’라고 말하는 피드백 없이도 의연히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지금 나는 궁여지책으로 이 필요한 에코를 스스로 생성 중이다.
모든 사유와 느낌의 흐름에 코러스 파트를 그려 넣고 크레센도 부호를 준 다음 ‘견고한 믿음을 가진 듯이’라는 악상을 추가해 본다. 낙엽들의 합창이 장렬한 레퀴엠으로 마무리되지 않게 하려는 자구책이다.
기억들과, 되살리고픈 기억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 작업을 더 쉽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작년 포에서의 가을을 생각해보면, 가을 타는 모진 느낌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년은 완전히 달라진 배경, 풍경, 기후 속에 처음 살아보는 시간이었고 그것은 새로움을 향해 활짝 열린 시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세포들은 여기라는 익숙한 땅에서 어둑한 빛깔로 칠해지는 대신 낯선 땅에서 낯선 것들을 받아들여 길들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나는 이 선물같이 즐거운 가을을 소환할 작정이다. 이 기억의 에코는 아스라이 외친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낙엽들의 합창은 장렬한 레퀴엠으로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