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요새, 포Pau

by 래연







지나고 보니 거기가 내게는 블랙홀의 출구였나?

오래도록, 한 40년 이상은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한 가지 마음밖에 없었다. 염세가 깊었다. 다시 태어나고 싶은 건지, 다시는 거기서 나오고 싶지 않은 건지는 답할 수 없었다. 일단 다시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의 도시가 그 자궁이 될 줄은 거기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단지 하나의 낯선 이국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려니 했을 뿐이다. 첫날, 그 풍경은 커다란 요새의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포. 포라는 도시. 큰 암벽 위의 도시.

커다란 성벽이 눈앞에 나타난다. 기차역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요새 같다. 파인애플 잎과도 비슷한 남국의 수많은 종려나무들과 쭉쭉 시원스럽게 뻗은 각종 나무들이 성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간 여행 다니며 보아온 이색적인 그 어느 도시하고도 완전히 다르다. 유학원에서 막연히 시골티 물씬 나는 도시라 듣고는, 숲과 들 그리고 가축들이 어우러질 거라 상상한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마주친 포Pau 이곳은 그런 목가적인 그림과는 전혀 다른, 높은 언덕 위의 도시다. 기차역에서 올려다보면 도대체 저 위에 사람 사는 곳이 있기나 할까 싶다. 외부와 여기를 연결시키는 기차역을 제외하면 따로 고립된 하나의 ‘둥지 세계’로 보인다.



포는 프랑스 남서부, 스페인과의 국경지대 가까이에 위치하여 예전에는 나바르 공국의 수도로서 번성했다. 현재 프랑스 자국민들 의식 속엔, 인근의 비아리츠 등과 더불어 시크한 휴양지로 자리한다. 그리고 여기는 피레네Pyrénées라는 자연과 앙리 4세의 문화유적 그리고 현대적인 편리가 공존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막연히 알고 있던 지리적 앎의 전부였다. 기차역을 나오자마자 만나는 전경이, 몇 세기에 걸쳐 방어 목적으로 축조된 요새와 성, 유명한 군주 앙리 4세의 산책길이라는 것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다. 역사가 오랜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면 다소 비현실적으로, 사람 사는 도시 전체가 펼쳐지게 되지만 이 날은 푸니쿨라funicular(산악 기차)조차 타지 않았다. 무거운 짐 때문에, 기차역 앞에서 곧바로 택시를 탔다.





도시로 올라가는 푸니쿨라




택시는 아침 풍경을 깨우듯이 가로질러 포 대학 기숙사 사무실 앞에 나를 떨궈놓았다. 유학원에서 일러준 대로 마담 페레즈를 만나 최초의 수속을 밟아야 하지만 일찍 도착한 탓에 문이 닫혀 있다. 건물 밖 차가운 돌 벤치에 앉아 있노라니 이 지역의 적지 않은 일교차가 실감 난다. 한겨울처럼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온다. 십여 분을 떨고 있다 결국 배낭을 열어 따뜻한 패딩을 꺼내 입는다.


학생들이 지나가고 차가 지나가고, 수면부족으로 인해 멍하다. 와중에 보이는 사람들의 행색이 랭스와는 딴판이다. 랭스에서는 거리로 쏟아진 사람들의 물결이 온통 검정이어서 장례식 물결 혹은 중세가 통째로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칙칙한 동시에 시크했다. 그에 비해 여기 남쪽은 두드러진 칼라에 꼭 끼는 바지, 뭔가 촌스럽다. 게다가 회상컨대, 이 벤치 위에서부터 이 도시를 떠나는 그날까지 눈길이 한 번 더 갈만하게 생긴 남자라고는 보지 못했다. 이 도시의 상징인 앙리 4세도 그리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다.

이미 떠올라 밝아진 태양이 내 목덜미를 눌러서, 어느새 여독 섞인 아득한 졸음에 잠겨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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