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기본적인 배움에 그토록 오랜 시간을 소일하여

생애 전반부를 낭비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나?

by 래연




늘 어찌나 피로한지, 평생 어딘가 기대어 꾸벅꾸벅 존 느낌이다. 간간이 꿈을 꾸었다는 기억만이 걸어 다닐 뿐, 내가 가진 건 다리가 아니었고 단지 기다랗게 흐느적이는 무엇이었다. 피로나 권태는 내게는 육체적 상태 이상으로 거의 해묵은 감정이기조차 했다. 그것은 종종 희노애락을 대신하기도 하는 정서화된 감각이다. 나는 현대라는 용매에 섞이지 않는 이상한 용질로서 부유한다. 뭔가를 말하거나 쓰려는 것도 이 당혹을 헤쳐 나가려는 자가 동력이다.



교육 기간에 해당하는 형성기도 그랬다. 이른바 교육이라는 것이, 잡다한 문명에 나를 그런 식으로 내어주기 위한 준비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칭찬과 인정이라는 조건반사의 멍에에 단단히 재갈이 물려 있었다.

사실인즉, 저학년 때 나는 무척 저등한 채로 있었다. 생일이 빠르고 어쩌고 해서 일찍 들어간 학교란 곳은 당혹, 그것도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당혹 자체였다. 일곱 살까지 내 별명은 ‘안하무인’이었다. 막내인 나는 집에서는 제멋대로였고 눈치라곤 보지 않았으며 모든 걸 뗑깡 부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지점으로 회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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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이래저래 불쾌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는 개들이 아주 많아서 어머니가 겁 많은 나를 데리고 다녔다. ‘앞으로 나란히’라던가 ‘좌향좌, 우향우’는 내게 잠자던 강박성향을 일깨워주기에 딱 좋았다. 서로의 어깨 면적도 다르건만 어떻게 ‘줄’이라는 걸 맞추라는 건지, 어린아이에겐 험한 과제였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 처음 배운 띄어쓰기란 것도 영 이상했다. 그것은 어딘가 복잡다단해서 원칙이 그렇게 단숨에 익혀질 리 없어 보였건만, 모두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배우자마자 대번에 해내지 않는가? 그때는 선행학습도 없었음에도. 또한 늘 가로셈으로 셈하다가 어느 날 문득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세로셈으로 전향해갈 때 역시도 어색했다. 이런 법칙이 왜 있어야 하는지 자체가 이해가 안 되어 지우개로 노트를 벅벅 지우다 울음을 터뜨렸다. ‘자연’이라 불리는 과학 교과에서 깃털이나 나무 조각을 구해 오라는 숙제도 뜬금없었다. 그런가 하면 나뭇결을 보고 무슨 나무인지 가려내는 법 따위는 교과 과정에 왜 있었는지 모른다. 나뭇결은 어린 내 수준에서는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였다.

도무지 모든 절차에는 설명이 생략되어 있었고, 하나의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의 전환이란 것 자체가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는 신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친절하지 않았다. 더욱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것에 아무런 저항 없이 복종했다는 것이다. 나는 적지 아니 마음을 다쳤고 외로웠고 분노했다. 법칙이란 것들이 설명 없이 강요되는 것이, 가족을 벗어난 어린 내가 처음 만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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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었다. 늘 나를 에스코트하던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교실 뒤편에 자리했다. 선생님은 수업을 마치며 ‘2’자를 노트 한 바닥 가득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집에 돌아와 숙제본능을 불태우며 ‘2’자를 야심차게 채워가려는데 어머니는 숙제 내용이 ‘2’자가 아니라 ‘8’자라고 주장했다. 나는 어머니를 존중해 팔자에도 없는 ‘8’자를 적어갔는데 역시 어머니보다 서른 살은 더 청력이 좋았던 내가 들은 것이 옳았다. 어머니 덕분에 나는 엉뚱한 숙제를 해간 셈이 되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순간 나는 가뜩 억울해져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교실 뒤로 고개를 휙 돌려 큰소리로 외쳤다. “거봐. 2자가 맞잖아!”


순간 내가 낸 큰 소리에 내 스스로가 겸연쩍어졌다. 학교를 다니며 무언가에 항의를 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마 내겐 사회화의 문턱이었을 거다. 이후 나는 무척 조용한 아이로 살았다. 그것은 내 껍질 안으로 나를 밀어 넣기 시작하여 바깥으로 나를 내보내기 점점 더 힘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적응할 수 없었으니 공부를 잘 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첫 학기는 기본적인 맞춤법 정도 말고는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이러던 내가 공부를 제법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집에는 오빠들이나 보던 글씨가 깨알 같은 책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 책들의 삽화를 따라 그리며 놀았는데 한글을 깨치고 나자 그 개미와도 같은 글씨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게 신기하여 책을 붙들고 놓지 않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나의 잠자던 숲속의 궁전 같은 지력이 일제히 깨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요리사도 마부도 알아서 척척 자기 역할을 했다. 언어 감각이 살아나자 초등학교 과정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동화 전집에 이어 역사 과학 위인전 가릴 거 없이 집에 있는 모든 종류의 전집들을 정복하여 나의 갓 개화한 총기의 깃발을 꽂았다. 그러고 나자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란 단지 이미 아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였고 수련장 따위를 푸는 일이란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 타는 일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우연히 등극한 우등생 자리가 처음에는, 기대도 주지 않던 막내딸의 갑작스런 재기에 쏟아지는 어른들의 칭찬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아 기뻤으나 차츰 그 자체가 족쇄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한번 잘하기 시작하니 그다음에는 내 몸에 ‘주변의 기대’라는 옷이 입혀져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내 인격은 나의 가면을 이루는 부분과 그 속의 일곱 살 미만의 원시인이 공존하는 상태가 되었다. 기실은 그 어느 것도 다 나 자신이겠으나, 지력 충만한 나조차 항상 자신을 인식하매, 그 제멋대로이던 원시적 자아가 본연의 나 같기만 해서, 언젠가는 회귀해야 할 자연으로 느껴왔다. 수줍음 많은 나는 학교와 사회에서 일종의 사회 공포를 갖게 되었고, 그 공포의 본질은 내심 항상 그 원시적인 자아가 탄로 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짐직한 나로 간신히 세팅해놨는데 그 말썽쟁이가 비집고 나오는 날에는 모든 게 파토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원시 자아를 감추려는 연기에 분주해졌고 이를 거듭하다 보니 스스로가 속아 넘어갈 지경이었다. 흡사 시드의 탈을 쓴 허클베리 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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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언제보다도 안하무인이었을 때의 내가 그립다. 7살 이후 나는 이미 망가져서는 필요 이상으로 남들을 의식했는데, 나 스스로는 거기서 언제나 가식의 흔적을 읽는다. 할 수만 있다면 내게 빙의된 이 친절 귀신을 혈액형을 갈아서라도 축귀하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거기서부터 망한 거다. 우연히 단 모범생의 타이틀이 족쇄가 되어 좋은 시절 다 보내버렸다. 중학교 고등학교 점점 더 미친 듯이 불어난 수업시간과 책가방, 교과목들은 청춘의 무덤이 되기에 딱 좋은 것이어서 걸 감당하면서 다른 무언가를 추구할 여력 같은 것은 없게 되었다. 중학교 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으며 ‘난 지금 잘못 걸려든 거야.’라는 느낌이 왔지만 어쩔 수 없었고, 곧 이어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를 읽으면서 나는 또 지상에 결박된 내 날개를 슬퍼해야 했다. 또한 같은 작가의 <환상>을 읽고선 내가 처한 개미지옥이 단지 환상일 뿐이어서, 뛰어내려봤자 절대 다칠 리 없는 절벽이라 느꼈지만, 이 절벽 끝에 누가 발라놓았을지 모를 아교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게다가 사람이 기본적인 배움에 그토록 오랜 시간을 소일하여 생애 전반부를 낭비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나? 내가 자란 교육환경 속에는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처럼 아이들의 꿈을 훔치는 세력이 있다고 나는 믿었다.

주목받고 칭찬받던 우등생 시절보다는 열등생으로 지낸 딱 1년, 저등하게 지낸 저학년 그 시절이 행복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대학을 갔고 꽤나 우울한 어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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