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사무실 문이 열린다. 곧 내가 적籍을 두게 될 여기 피레네의 학교는 어떨 것인가? 아침빛이 벌써 너무 눈부시다.
마담 로슈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기숙사 계약 문제를 두고 그녀와 나는 격돌했다. 계약과 관련하여 원래는 프랑스 도착 전 유학원을 통해 9개월 치를 한꺼번에 지불하고 계약을 완료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여기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간 한 여학생이 숙소 근처에 아랍인들이 많아 분위기가 별로라는 정보를 주는 바람에, 유학원에서는 일단 3개월을 살아보고 나서 계속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낫겠다고 했고, 그래서 방값으로 준비해온 현금은 딱 3개월 치뿐이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는 나의 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체류기간 전체 월세를 한꺼번에 지불해야만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니까 유학원과 여기 사이에 이야기가 다 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프랑스어로 일차 소통이 결렬되자 마담은 이번에는 여비서를 부르더니 다시 한 번 같은 내용을 영어로 반복하게끔 했다. 기분 탓인가, 불려온 젊은 여비서는 눈을 슬쩍 내리까는 모습이 왠지 비아냥거리는 기색이었다. 어쩐 일인지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이야기가 잘 안 되면 자신들도 그리 유창하지는 않은 영어로 소통을 시도하곤 한다. 프랑스인의 유별나다는 모국어 사랑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다행히도 마담 로슈와의 곤혹스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새로 찾아간 다른 사무실에서는 마담 드리아슈가 우리를 맞아 주었는데 그녀는 젊은 데다 나무랄 데 없이 친절했다. 그녀는 여기 IEFE Institut d'Etudes Françaises pour Etudiants Etrangers엥스티튀 데튀드 프랑세즈 푸르 에튀디앙 에트랑제(포 대학부설 국립어학원의 외국인을 위한 불어교육과정)의 제반 사무를 도맡고 있다. 첫 학기가 지날 무렵 그녀는 카우타르라는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 사무실에는 항상 두어 명씩 대기자가 있었는데, 이 첫날 그녀는 뒤의 줄을 모두 물리고 우리의 사무만을 보았다. 그녀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우리는 기숙사비를 월 단위로 지불하는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되었다. 매달 몇 유로의 저렴한 수수료만 덧붙이면 되었다. 이로써 기숙사비 납부 공방은 깔끔히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앞으로 9개월을 살게 될 기숙사로 무거운 짐을 옮겨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학교와 기숙사 사이 길의 가로수들
오전 내내 길고 많은 서류에 도장을 찍는 첫 수속을 마치고 학교 밖 기숙사까지 걷는다. 2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무거운 짐 탓에 땀이 질질 흐른다. 두 번이나 벤치에 앉아 쉰다. 이 짧은 멈춤 속, 나무들의 그림자는 유난히 깊고 짙다.
정오 무렵. 겨울 점퍼를 꺼내 입던 아침과는 사뭇 다르게 햇빛이 갑자기 쨍쨍해진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포의 햇빛은 지난 세기에 영국 사람들이 결핵 등 질병 요양을 위해 몰려들 만큼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어떤 영국 귀족이 결핵을 고치러 요양지를 찾아 떠났다 이 도시에서 묵게 되었는데, 3일 동안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그쳐 덧창을 열자 이루 말 할 수 없는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그는 이 기후에, 병을 낫게 만드는 어떤 특별함이 있다고 믿어 포의 햇살과 기후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를 효시로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게 되었다. 아직도 여기에는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빌 앙글레즈Ville anglaise’(영국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이 햇살이야말로 음울함이 깃들 틈 없는 절대적인 화창함을 자랑한다. 사람을 멍하고 늘어지게 만들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으면서 오로지 부드럽고 따스하기만 하다. 이 이국적인 햇빛은 가히 갖은 근심들을 지워준다. 내 마음 내벽의 빽빽한 어둠들도 이 햇빛에는 데인 듯 놀라지 않고 부드럽게 귀화했다. 여태껏 내가 지녀온, 햇빛이란 자기 아래 모든 존재들을 노예로 삼는 폭압적 에너지라는 상징도 해체되었다. 그토록 이곳의 햇빛만큼은 갖은 경계를 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체류 기간 내내 이 햇빛에 감탄하며 그것을 명명해보려 했는데 어쩐지 적절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생의 한 가운데 햇빛’이라 해야 할까? 암튼 포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오마주는 단연코 햇빛에게로 향한다. 종종 포의 햇빛을 기렸다.
이 길, 앞으로 매일 수없이 오가게 될 아브뉘 드 사라고스Avenue de Saragosse. 가로수들의 규모가 우리나라완 딴판이다. 건물 높이를 가뿐히 추월하여 훤칠히 솟아 쭉쭉 시원하고 잎들도 무성하다. 전나무 잣나무 포플러 단풍나무 떡갈나무 마로니에, 이들 중에는 ‘어서 와’라고 말하는 몸짓을 지닌 것들도 있다. 그러나 내리쬐는 햇볕 속, 배낭과 캐리어는 버겁기만 하다.
이 길 중간에 얼굴이 희끔한 베트남 청년을 마주쳐 길을 물었다. 청년은 기 뿐 아니라 기숙사 수속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그는 여기 7년 머물렀고 대학원 과정을 끝마쳐가고 있었는데 아직도 자기 프랑스어가 충분치 않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 마지막 학기 반 친구의 남편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여기는 지역이 작아, 인맥의 얼개는 시차를 두고 맞추는 퍼즐이 되기 일쑤다.
입사 수속은 설겅설겅 단순했다. 관리인들이 실내 비치물들의 상태를 점검한 다음 열쇠와 매트리스 커버를 준다. 사람 좋아 보이는 관리인과 청소 아주머니들은 모든 게 서툰 나를 보고 연신 낄낄거렸다. 하지만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묻어가지 말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 시점 이전에 파손된 것일지라도 이때 발견하여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퇴실할 때 내가 전부 변상해야 할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방 보증금이 날아간다. 시설물 기록 용지에는 어찌나 생소한 용어가 많은지 내가 아는 거라곤 책상, 의자, 스탠드, 수도꼭지 정도였다. 아주머니들은 일일이 물어보는 내게 하나하나 답해주면서, 내가 알아들었다는 듯 ‘아아, 그거.’라고 하는 게 재미있었는지 계속 내 흉내를 내며 웃었다. 긴장이 조금 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