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했다. 그러자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by 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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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시작과 더불어, 더 이상 치료의 영역을 맴도느니 ‘차라리 이젠 그만 즐기자’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밖으로 나가본 일이 없으니 이제라도 나가 보자 싶었다. 자기 치유의 여정에서 다른 시도들 이후 남은 게 그것이기도 했다. 결과는 의외로 ‘떨이’에서 많은 걸 건진 셈이 되었다. 처음 맛본 여행으로부터 이런저런 해묵은 고통들이 꽤 사라져 갔다. 나의 생체시계는 유럽에만 가면 아침형으로 돌변하여, 일찍 자고 일어나는 어린이의 생명력을 회복한 듯, 시차 적응이고 뭐고 할 사이도 그냥 거기 시계에 착 맞게 돌아가고 있었다. 건조한 공기 속에 온 몸은 가벼워지고 몇 개의 지병들은 더 이상 소일거리가 없다는 듯 내 몸을 떠나기도 했다. 다시 공기를 주입받은 바람인형처럼 조금 팽팽해진 걸 느꼈다. ‘이거 썩 괜찮은걸. 이거 좀 장기적으로 해보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어.’ 이런 속삭임이 스스로를 간질여댔다. 이래서 결국 자의식 비대한 ‘나’라는 여자는 피레네가 있는 동네로 가게 된다.



십여 년 전 생일 아침, 나도 모르게 일기에 썼었다. ‘앞으로 10년 후 나는 피레네에 있을 것이다’라고. 그때 나는 피레네라는 이름 세 글자 말고는 도대체 그게 어디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냥 그 이름이 저절로 떠올랐을 뿐이다. 자가 예언 같은 이 바람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나는 과연, 낯선 곳에서 신선하게 갓 짠 우유 같은 생활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에 드물게 존재했던 오롯이 인간적인 나날들이 되었으니, 따로 떼어 앨범을 하나 만들어 첩첩이 회상하기로 한다. 일상에 별 특별함이 없이도 생활을 이루는 배경 자체가 아름다웠던 그곳을 나는 이 글을 통해 다시금 되돌아 가보려 한다. 그 길은 단지 추억으로만 나 있는 오솔길은 아닐 것이며, 하필이면 너무 좋았던 그 경험 덕분에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통과해나갈지 줄곧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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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다. 그러자 나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돌아오니 마침 장마철, 평범한 커피도 맛나게 느끼게 만드는 유럽의 건조함 같은 것은 여기에는 없었다. 익숙하던 일상 전체가 갑자기 낯설어져 있었다. 그럴 계기는 산재해 있었다. 겨우 10개월, 그 짧은 세월 동안 그곳 상황에 맞게 새롭게 적응시켜 반복한 ‘신생 버릇들’ 때문에, 그 전 여기에서의 오랜 버릇들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 상실 상태에 가버린 것이다. 일상을 구성하던 작은 버릇들뿐 아니라, 내 주거환경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던 물건들의 위치조차 새삼 하나하나 낯설어져 있었다. 인간의 연약함이란 주제가 내 어깨를 흔들어 내려놓고 있었다. 자신의 작은 버릇조차 기억도 통제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 시간 앞에서 무언가를 약속할 호기를 갖는다는 게 가당키나 할 일이냐는 듯.



그리하여 그쪽에서의 경험과 다시 돌아온 여기의 나 사이에 다리 놓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 다리를 놓으며 추억의 망각에 저항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써나갈 글의 범주를 지금 모두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항상 믿기를,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저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누군가의 태를 빌린다. 쓰기보다는 써진다.

다시 돌아온 여기는 여전히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연상시킨다. ‘차별화’나 ‘틈새시장’을 노리며 끊임없이 기어오르는 삶. 적어도 나는 그것만이 땅을 디디며 사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지 않겠다. 나는 나대로 더 물러날 데 없는 외곽에 삶을 위치시켰다. 이제 내 몸에서, 내 누에로부터 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위에서 줄타기를 시작한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가을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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