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안의 미처 못 자란 아이를 양육하는 중이다.
기숙사 이름과 로고, '높은 음자리'라는 이름의 기숙사였다.
그 화사한 세입자는 햇빛이라고 했고, 베란다에 사다리를 걸치지 않고도 모든 세간살이를 입주시키곤 했다.
옮겨 심어져 다시 자라나는 식물은 다른 흙과 빗물을 머금으면서 새로운 목소리를 갖기 시작한다. 나는 햇빛 무성한 곳에 꺾꽂이 되어 새삼 햇살 맛을 알게 된다. 포, 이 도시는 삶이 내게 마련해 둔 페이지이다. 내 삶의 책에서 예쁜 삽화까지 그려진 이다지도 호의적인 페이지가 튀어나올지는 몰랐다. 각자의 삶이란 자신이 써나가는 것임에도 뒤의 전개를 도무지 장담할 수 없는 기이한 책이니, 모름지기 중간에 재미없거나 흉측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쉬 덮지 말고 끝까지 읽고 볼 일이다.
나의 여행 풍습은 굳이 명소를 탐하지 않는다. 정말로 감흥을 받는 장소들이란 정작 간이역, 공항, 휴게소 따위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터미널을 사랑한다. 그곳은 마치 저승과 이승 사이의 공간처럼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이 아늑한 기운이 가득 감돈다. 거대한 요새 도시 포도 내겐 이런 공간이어서 내 실존의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나도 모르게 늘 이런 장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전에도 단지 왠지 모를 느낌에 끌려 안착한 도시가 있는데, 내가 오래 산 대전이 그렇다. 여기에 오게 된 건 이상한 연고였지만 어쨌든 처음에는 그 어떤 한적함에 끌렸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이 도시 특유의 묵직한 중력은 그 지하에 또 다른 차원의 문명 도시가 있을 듯한 환각을 일으켰다. 그래서 이 도시에 자발적으로 사로잡히기로 했었다. 생면부지의 장소에 착륙하여 살아가는 느낌을 즐기는 나머지, 어느 역마살이 가득 낀 해는 한 도시에서만도 일 년에 네 번이나 이사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빨래판과 휴지통을 사며 즐거워했다. ‘이 세상 밖이면 어디든지’라는 보들레르의 시에서처럼 난 어딘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을 헤집어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밖 거주자로 나를 임명해 준 터전이 된 대전. 그런데 서른다섯 즈음이던가? 주말만 되면 갑천변에 ‘그랑자드 섬의 휴일 오후’라는 그림처럼 사람들이 즐비했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 이리저리 뛰며 공을 물어오는 개들. 이 도시의 가족들이란 가족들은 다 나온 듯 둘러앉아 하나같이들 고기를 구웠다. 그 지글거리는 냄새는 내 정서적 허기를 압도했다. 그럴 때마다 이 행복이라 불림직한 정경을 곁눈질하며 걷곤 했다.
타인들의 시선에 비추어 다시 바라보이는 나는 무척 빈 존재이다. 가족이나 아이와 연관되지 않는 개인들이란 타인들의 시선 공화국 속에선 대개 애매한, 규정되지 않는, 나아가 불건전한 잉여의 개체들이기까지 하다. 공동체의 생산성에 기여하지 않는, 사회라는 바퀴에 응분의 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그리하여 비난이라도 받아 마땅할듯한 존재들이다. 이 세상 속 뭇 행복한 가정들의 창문 앞, 나는 가득 서린 김에 그려진 한 개의 물음표가 되어 선다. 내가 부당한 존재인 것만 같다. 이 천변에서 또 한 번 내가 지워져 가는 느낌이다. 나는 이제 나무랄 데 없이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어쩌다 하루 묵을 때마다, 그다음 날 아침 남향 거실에 가득 쏟아지는 순수한 햇살이 어색한 사람이 되어있다. 어디까지나 변두리 거주자로서.
마흔이면 자신의 아이를 키울 나이련만, 나는 내 안의 미처 못 자란 아이를 양육하는 중이다. 남들이라는 그들은 어쨌거나 다수이므로 때로 나는 소외자가 된 기분이다. 이 다수 중 누군가는 삶의 조건에 대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횡포 어린 시각을 내게 던지기도 한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결혼은 언제 하실 건가요?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해요. 그러니 당신도 해야 하죠. 이런 말들은 내게 ‘렝비타시옹 오 말뢰르L'Invitation au maleur’(불행에의 초대)로 들렸다. 모두가 동참하는 공동의 희노애락, 희와 락은 분명치 않은데 치러야 할 노고와 슬픔은 더 뚜렷해 보이는 고단한 길, 그 길을 자기들만 가는 게 영 억울해서 남을 하나라도 더 초대해야 분이 풀리는 게 아닐는지,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왠지 그런 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슴 저리게 상호 소통을 갈망하다가도 역시나 서로 너무 관여되는 삶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을 어쩌진 못하겠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이다. 세상에 태어나 나 하나 가누기도 벅차거늘 에너지 부족인 내게 이 풍습이란 적지 아니 번거롭다. 둘이 겨우 행복해지기도 힘든데 모두를 신경 써야 하다니, 다들 미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인간관계를 종으로 횡으로 바톤터치 해가며 서로 부둥켜 얽혀 돌아가는 기운의 레슬링으로 힘을 발산시켜야만 좀 시원한 것인지? 나 같은 것은 그런 시스템 속에서 진액이 쪽쪽 빠져나갈 것만 같다. 링에 들어갈 힘이 없다, 정말로.
내겐, 현대 문명이라는 체로 거른 다음 다시 이런저런 관념의 깔때기로 통과시키고도 남는 이상한 침전물, 더는 걸러지지 않는 느낌들과 이 느낌들을 몽땅 담은 덩어리인 나 자신을 마주 대하는 일이 더 골똘하다. 이 사회 속에는 공동체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자기 몰두를 죄악시하기까지 하는 세력이 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의무니 성숙이니 하는 말로는 쉬 결혼교에 전도 당하지 않는다. 잠시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만큼이나 홀로 있음이 최후의 보루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외로움은 불쌍한 상태가 아니라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