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에서 아침을 살고 싶었지

과거에서 바라본 나의 미래, 유학생활의 시작

by 래연





단풍잎을 따다 붙여놓은 기숙사 책상 앞.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작문 숙제를 했다. 나는 그때, 고양이와 살면서 저녁 창가에 앉아 일몰과 저녁별을 보며 와인을 마시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썼다. 이런 그림이 머릿속에 들어온 건 그 무렵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완성하려면 최소한 ‘문 리버’를 기타로 치며 노래 부를 수 있으면 된다. 내가 지금 사는 그림도 어릴 때 그려 본 거랑 그리 다르지 않다. 워낙에 거창한 그림이 아니어서 이루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소도구 두어 개로 충족되는 삶, 죽을 때까지 그러고 싶다.



더구나 이 배경을 프랑스에서 구현하고자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낭만’인 모양새가 된다. 나는 포 대학 레지던스 중 하나인 클레 드 솔Clé de Sol의 기숙생이다. 기숙사란 누군가들에게는 이상적 주거형태일 수 있다. 각각의 공간이 분리된 채로 한 건물 내에 공존하는, 개인과 집단이 대립하지 않는 공간이다. 복도에 오가는 사람들의 신발 소리와 바깥의 차 다니는 소리, 미지의 누군가가 그의 지인을 부르는 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온다. 지나치게 고요하지 않아서 좋다.




책상 왼쪽엔 세면대와 거울이 있었다.





옷을 수납할 수 있는 선반과 가리개. 모든 게 단출하고 편리했다.





책상, 의자, 침대, 책장, 옷장. 딱 있을 것만 있는, 살림살이라고 말하기엔 단출한 세간. 최소의 살림으로 버티는 유학 생활이다. 물컵이 와인잔으로, 커피잔은 국그릇이 되기도 한다. 생활은 축소되고 필요는 상쇄된다. 그런데도 어쩐지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다 저 있을 곳에 놓여 애써 그걸 찾느라 기억의 서랍들을 일일이 열어 보지 않아도 된다. 부족하지만 남루하지는 않다. 굳이 안 쓰는 무언가를 버릴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아주 적은 것만을 가졌으니.


딱 이 세팅으로 죽을 때까지 지내고 싶다. 어느 일본 만화에서 ‘마야’라는 소녀는 특이한 초능력 즉 모든 사람과 사물의 최후를 읽는 힘이 있어서 스스로 그 능력을 고통스러워한다. 그녀의 방에 놓인 것이라곤 딱딱한 의자 하나가 전부다. 그녀는 어떠한 빛나는 존재에서도 그것의 소멸을 먼저 보기에, 방 안에 물건들을 잡다하게 둘 수가 없다. 내 안, 내 공간 안에 무언가가 많을수록 망각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어떤 것들은 먼지를 뒤집어쓰다가, 타고난 빛이 퇴색된 채 어루만짐에서 멀어져 쭈그린다. 이런 것이 싫다. 내 공간 안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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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 뒤로는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는 작고 정겨운 주방. 아무런 들꽃을 따다가 다 마신 와인병에 꽃아놓기도 했다.





유학 생활은 간소한 대신 그로 인한 정신적 풍요를 맛보게 한다. 최소한의 것들로 부족한 듯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낭만이다. 많이 가진다는 것은 어쨌거나 어수선한 일이다. 잠식과 횡포로 범람하는 생존의 정글, 이윤 위주의 장사판에서는 자기 것을 팔아 이득을 얻기 위해 타인의 뇌에 입점해야 한다. 매일 아침 메일함 정리는 바오밥 청소와도 같다. 이런 환경을 떠나 간소하게 살아감이란 시장판을 머리에서 떨어낸 자연인으로 잠시 돌아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곳 테크놀로지의 느릿함은 속도감을 포기하게 하는 대신 좀 더, 햇빛과 꽃과 나무를 즐기라고 한적한 산책길로 내보낸다.


꾸려나가야 하는 안살림이 간소한 만큼 오히려 시선은 늘 밖을 향해 열린다. 바깥 공간은 텅 비어 휑한 일 없이, 우애와 파티 그리고 축제가 사오월의 꽃가루처럼 공기를 꽉 채우고 훈풍 따라 흘러 다닌다.

내가 살던 우리나라 도회의 색깔이 이미 아득해졌다. 세상살이 지겨워진 어느 날, 지하철 역과 역 사이가 이리도 긴 게냐고 역 간 굉음마다 권태를 전송하던 그 날들이 멀어져 있다. 이제 새로 얻을 시간 또한 물리적으로는 흘러가 버리겠지만 그렇더라도 더 이상 파세passé(프랑스어로 ‘과거’를 지칭 여기서는 죽어 지나간 시간)가 아니게 되었다. ‘진짜인’ 시간이란 도살장의 소들이 아니어서 조각조각 살코기로 소비되어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제든 현재화되어 다른 시공간 속으로 겹쳐 든다.




기숙사 '클레 드 솔' 의 로고



현대적인 기숙사 건물입구 쪽 벽면에는 커다란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높은음자리표 모양이었다. 나는 이때만 해도 이 건물의 이름인 클레 드 솔Clé de Sol이 높은음자리표를 뜻한다는 것을 몰랐다.


방의 공간은 넉넉했다. 구석에는 작은 냉장고가 딸린 작은 부엌(소위 쿠앙 퀴진느coin cuisine라고 하는)이 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으로 복도에 있다. 화장실은 두 개였는데 늘 깨끗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변기에 앉으면 마주 보이는 벽에는 경고조를 넘어 약간 화난 듯한 어투로 ‘클레 드 솔 기숙사의 거주자들에게 제발 부탁이니 변기 사용 후에는 흰 변기에 당신이 다녀간 어떤 흔적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솔질해놓을 것. 청소 직원들의 노고를 헤아릴 것. 이런 기본에 미달인 자는 유치원 수준의 공동생활 규범을 재 복습할 것!!!’이라는 문구가 수많은 ‘!!!’들과 더불어 적혀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기숙사라는 곳이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의 장이 될 거라는 기대와 함께 혹시라도 골치 아픈 이웃을 만날까 봐 걱정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방을 공유하지 않는 우리 기숙사의 형태상 이웃과는 별반 얼굴 마주칠 일이 없었고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치더라도 서먹한 ‘봉주르!' 정도밖에는 오가지 않았다. 또 본디 기숙사라면 걸러지지 않은 소음들이 교차하는 곳이라 여겼었는데 적어도 내 주변은 너무 고요한 것이 오히려 불만일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어느 일요일 저녁 10시경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어느 이웃이 문을 두드려 신경질을 애써 참는 얼굴로 “혼자 사는 곳도 아니건만...”하며 조용히 해 달라는 것이었다. 방음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소리가 복도에 울리고 퍼지는 감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프랑스인들은 금, 토요일의 파티 후 일요일 저녁이면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때문에 이때 소음을 내면 실례가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울려 퍼지는 것은 내 방의 음악 소리만이 아니었다. 복도를 지나갈 때 커피 냄새가 무척이나 향긋하게 통로 가득 퍼져 있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했다기보다는 장소들의 자취에 깃들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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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밈이 잘 된 큰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시원스런 베란다가 나온다. 이 공간도 널찍해서 이불을 널거나 신발 일광욕을 시키기에 그만이었다. 한쪽에는 빨래를 조금 널 수 있는 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전 거주자가 남겨둔 작지 않은 편리였다. 저녁마다 자주 그 베란다에서 맞은편 건물 옆의 무척 높고 이국적인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외국 유학 생활의 기분을 달큰하게 곱씹곤 했다.







이후 자주 이런 환영이 날 지배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라치면, 이 구역을 조금 나가 모퉁이를 돌면 어딘가 우리나라에서 자주 다니던 거리가 나올 것만 같은. 두고 온 것들의 가까운 아득함. 반대로, 지금 여기 우리나라에선 조금만 걸어 나가면 클레망소 광장이나 덩치 큰 떡갈나무와 함께 포 대학 교정이 나올 것만 같다.



기숙사에 조용히 누워있으면 내가 프랑스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침이 되어 요란한 새소리에 깨어나, 서둘러 등교하러 거리에 나서면 여기저기서 프랑스어가 들려오고 그제서야 내가 낯선 땅에 와 있다는 걸 확인하곤 하였다.

생애란 그간 방문했던 모든 곳과 더불어 떠나는 항해다. 한 번 여기를 데려간 다음 줄곧 나는 여기와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실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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