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운 크루아상 냄새란 프랑스인에겐 성스러운 것

by 래연




장엄한 입학식과 아침 식사


개학 전까지 성과 피레네 대로 근처를 몇 번은 더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분반 시험 후 개강 전 열흘 남짓은 체류 기간 중 가장 더웠다. 더위도 달랠 겸 집과 문화센터 사이의 커다란 공원에서 믿음직하게 무성한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책을 읽거나 하며 소일했다. 그러고 있자니 벌써 프랑스인이 다 된 기분이었고 이 휴양지의 한가한 시간의 해먹에 담긴 듯 거만하게 느긋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를 소일하다 돌아오니 케이가 “자기, 이게 다 뭐야!”라고 하며 내 몸의 앞뒤로 가득 묻어 있는 나뭇잎과 벌레들을 훑어 떼어주었다. 그것도 모르고 기숙사까지 온 것이었다. 케이는 내가 낭만 놀이를 하다 벌레나 묻혀 왔다며 놀렸다. 그러게, 로망이란 실현하고 보면 뭔가 작은 하자가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시험이 끝난 다다음날쯤, ‘엉트레 솔레넬’entrée solennel(장엄한 입학식)이라 불리는, IEFE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정식 입학식도 아닌데 왜 ‘장엄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이 ‘장엄할’ 오리엔테이션 장소를 찾아가던 중, 학교 건물 벽면에는 여기저기 갖은 투쟁 문구들이 거칠게 휘갈겨져 있었다.


(G)RÈVE GÉNÉRAL(E) 그레브 제네랄, 대다수의 파업grève(대다수의 꿈 헤브rêve을 패러디)

FAC À VENDRE 팍 아 방드르, 팔려고 내놓은 학교

ÉTUDIANTS PAS CLIENTS 에튀디앙 파 클리앙, 학생들은 고객이 아닌 것을



놀랍고 신기했다. 프랑스 같은 복지국가, 대학 등록금이 우리나라의 몇 분의 일밖에 되지 않을 곳에서 이 대학생들이 싸워 이겨야 할 실체란 무얼까. 오갈 때마다 줄곧 궁금했으나 끝내 알지 못했다. 언젠가 11월 즈음엔 교내 식당 직원들이 파업하는 나머지 우리 학생들이 르클레르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 적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 학생들 및 시민들은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집단적 경계와 노력을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는 듯했다.



강의실에 도착하자 학사 안내가 이루어졌다. 앞으로의 학습은 언어의 주요 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과 지각이나 결석의 해로움 등이 강조되었다. 뻔한 이야기들이어서 이런 개괄적 소개만으로는 실제 수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짐작할 만한 건 없었다. 단지 라파엘이라는 선생님의 말하는 방식과 표정은 코믹했다. 그녀는 연극적 방법들을 통해 발음 연습을 지도하는 선생님이었는데, 자기 수업엔 몸동작이 많으므로 여학생들은 자기 수업이 있는 요일만큼은 바지를 입고 오라고 당부했다. 도대체 수업 시간에 뭔 요상한 짓을 하는 걸까?








이어 그다음 날은 아침 식사인 르 프티 데죄네le petit déjeuner가 환영 행사로 마련되어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식도락가들이라 환영 또한 이렇게 먹는 것으로 한다고 전날 들었었다. 거참 반가웠다. 그런데 아침 식사로 환대받기 위해서는 꽤 이른 아침에 모여야 했다. 장소는 학교 바로 앞 대형마트인 르클레르Leclerc 2층의 카페테리아였다. 여기에서 우리 신입생들과 기존 대학원생들은 4인 1조씩 테이블을 채운 다음 곧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크루아상이며 팽 오 쇼콜라 그리고 커피를 무제한으로 즐겼다. 작은 빵들은 흠씬 귀엽고 향긋했다. 무릇 크루아상은 잘 굽거나 데워져 적절한 버터 향이 나야 한다. 갓 구워진 크루아상 냄새는 이들 프랑스인들에게 영원한 향수를 일으키는 ‘성스런’ 냄새라고 한다. 우리들의 밥 김 냄새처럼. 어떤 에세이에는, 일요일 아침 아직 모든 식구가 잠든 시각에 몰래 일어나 새벽을 밟아 갓 나온 크루아상을 사러 가는 일이 대단히 설레는 정경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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