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우리는 한국인을 아직 한 명도 못 만난 상태였다. 이 지역에 연수 오는 사람들이 꽤 적은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코빼기도 안 보일 줄은 몰랐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온통 중국어만 들려올 뿐이었다. 중국인들은 같이 먹고 늘 함께 다니며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물품도 나누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 낯선 땅에서 치러야 할 이런저런 행정적 수속에도 어려움이 덜할 것이었다. 나로 말하면, 도착한 지 이틀 혹은 삼일째 offi에 체류증과 관련된 서류를 부랴부랴 보내고 나자마자 복사본을 남겨놓지 않은 것을 곧장 후회했다. 같은 나라 사람이 없고 정보를 얻지 못했으므로 매사에 서투름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런 우리 앞에 이날 드디어 최초의 한국인이 나타났다. 처음에 그의 국적은 중국, 대만, 한국 중에 어딘지 불분명해 보였다. 윤기 나는 피부, 살집 좋은 체격, 검은 가죽점퍼, 좀 두꺼운 검은 뿔테 선글라스, 혀를 일부러 꼰 것도 아닌데 말끝마다 묻어나는 느끼함, 삐딱하게 옆으로 고개를 누이고 말하는 버릇, 마치 그는 홍콩영화에서 바로 나온 듯이 보였다. 나는 약간 겁을 내며 물어봤다. “한국인이세요?”
그는 ‘유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동족이라는 반가움을 나눌 겨를도 없이 이 인물은 자폐증 환자처럼 끝없이 혼잣말을 했다. 처음 만난 처지에 대놓고 웃을 수는 없어 속으로 폭소했다. 그에게는 자기 혼자만의 공간과 사회적 공간의 구분이 의미 없어 보였고, 그의 언행에는 사회적 관계에서 암묵적으로 필요로 하는 모종의 필터가 부재해 보였다. 우리는 대개 마음에서 생성된 최초의 생각을 즉각 그대로 바깥에 던지지는 않는 법인데, 그는 바로 그러했다. 얼마나 솔직한지 나중에 수업 도중, 어제 무엇을 했느냐는 선생님 질문에 대뜸 여자 친구와 키스를 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지나가던 나에게는 “어제 여친과 할 때 콘돔 안 썼는데 괜찮을까?” 이런 말을 마치 “아까 먹은 밥이 체했네.”처럼 자연스럽게 내뱉곤 했다. 그는 터부가 없는, 세상에 드문 인종에 속했다. 한편으로는, 에티켓이라곤 숙지된 적이 없는 듯한 그에게 정감을 느꼈다. 그렇듯 가식 없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 테이블에는 중국인 슈안이 앉아 분위기를 이끌었다. 친절함이 뚝뚝 묻어나는 그녀는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 유준까지도 존중했지만 유준은 오히려 그녀의 거리낌 없는 태도에 짜증을 냈다. 그는 우리 쪽을 향하여, 그녀가 손으로 유준의 팔을 툭툭 쳐가며 말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는 경계 없는 스킨십에 상당한 알레르기가 있었다. 둘의 분위기는 서로에게 통역해주기 애매하므로 그냥 방치해야 했다.
이날은 일본인 친구들과 또 한 무리의 중국인 남학생 무리와도 인연을 텄다. 중국 남자애들은 좀 촌스럽거나 수줍음이 많았고 여자애들은 대체로 화장이 현란하고 다소 기가 세 보였다. 그런데 중국 친구들의 이름은 잘 외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힘을 합쳐 헤쳐 나가느라 늘 뭉쳐 다니는 나머지 그 얼굴이 그 얼굴 같고 이름조차도 비슷해 보였다. 다만 그들 중 구레나룻이 있는 판전동이란 이름만은 기억한다. 그는 한국문화를 좋아한다며 이런저런 아는 척을 했다. 그러나 유준은 역시 판전동이 자기 몸을 만지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어찌 되었건 이 한 무리의 중국 친구들은 개학 전 첫 일요일 샤토(성)에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 한국인들은 기꺼이 동행키로 했다. 그날은 성이 무료 개방되는 날이다. 이 성은 앙리 4세가 태어나 꽤 의미 있는 곳이지만, 역사 및 건축에 대해 무지한 채로 보면 그저 외국의 숱한 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성은 거대한 성벽 위 피레네대로의 한쪽 끝에 위치하고, 이 대로에서는 피레네 산맥의 수려하고 섬세한 전망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피레네는 나지막이 옆으로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관광객들이 포를 찾는 이유가 된다. 몇 개의 카페 앞에 즐비한 긴 수영장 의자 같은 데 몸을 누이고 피레네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또 거기서만 가능한 풍경이었다.
이 피레네 대로에선 피레네 산맥의 전경이 보인다.
친구들과 이런 알음알이를 하는 한편, 처리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수업에 들어가 생면부지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것 외에도, 핸드폰 구매와 충전, 인터넷 설치, 은행 계좌 개설, 학생증 발급, 체류 스티커를 받기 위한 신체검사, 카프CAF에 주택보조금 신청하기 등을 해야 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란 게 따로따로 해치울 수 없이 서로 얽혀 있어서는, 이걸 해야 저걸 할 수 있는 식으로 순차적인 것인데다 각 과정들은 저마다 만만찮은 시간의 경과를 요구했다. 인터넷 개통만도 열흘 정도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인터넷까지 되면 그럭저럭 살만해지지만 정작 체류증에 관련된 문제는 어찌나 늘어졌는지 나중에는 통보받기를 포기한 채 꼬박 한 학기를 보내고 만다.
개강 직전, 반 편성 발표가 났다. 이번 학기는 영국 리즈Leeds대학과 USAC프로그램 학생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인원이 꽤 많은 나머지 반이 어지간히 세분되어 11개나 되었다. 내 생각처럼 그냥 상중하 세 개 반이 아니었다. 아뿔싸, 이렇게까지 반이 조각조각 나뉠 줄 알았더라면 더 기를 썼을 것이다. 역시나 시험에 몹시 집중했던 일본인 미츠요는 나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반에서 이름이 발견되었다. 학기 초면 이 반 편성표 앞에서 늘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아마 이즈음이었을 거다. 웬 깡마른 남자가 엄청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를 거의 달구지만한 캐리어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건물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가 본 두 번째 한국인이었다. 그는 이스탄불을 여행하느라 뒤늦게 도착했기에 당장 방부터 구하고 분반시험도 따로 치러야 했다. 깡마른 몸에 꼼꼼해 보이는 가는 눈, 안경, 광대뼈, 이런 외양에서 왠지 고단함이 느껴졌다. 그는 한국인답지 않게 손의 제스처가 컸고 표정이나 말투에서도 프랑스 냄새가 많이 났다. 그는 봄 학기부터 수강했고 여름학기를 파리에서 보낸 다음 다시 온 것이라 한다. 이 가을 한 학기 동안 그를 자주 보게 되었고 적지 않은 시간 함께 어울려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