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낯선 그들은 내겐 빅뱅을 갓 마친 우주

나의 첫 외국인 친구들

by 래연



시네마 강의실엔 교정의 햇빛이 자주 쏟아부어졌다.





첫 수업 첫 만남


첫 강의는 반 편성이 되자마자 바로 그다음 날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주당 20시간의 강의들이 10주간 꼬박 이어진다. 반 편성표를 보니 놀랍게도 선생님이 모두 다 마담이었다. 무슈는 없었다. 30-50대의 마담들이 이 교육과정을 맡고 있다. 나의 첫 선생님들의 이름은 이러했다. Maire-Christine마리 크리스틴, Nathalie나탈리, Marina마리나. 아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매 화요일 오후마다 Langue en acte라는 특이한 수업을 맡는 Pascal파스칼 선생님도 있다. 실제로 관계를 맺게 되는 첫 프랑스인들의 이름들이다. 정치 예술인이라던가 책에 나오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나게 되는 프랑스인 말이다. 이 사실이 내게는 특별하게 와 닿았고, 곧 만날 네 명의 마담의 성격이 그저 만만하기를 바랐다.



대망의 첫 수업은 131호 강의실에서 있었다. 뒷벽에는 커다란 삼성 벽걸이 TV가 있고 옆 벽면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 배우들인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나 장 루이 바로 Jean-Louis Barrault 등의 사진과 영화 포스터가 가득했다. 그리고 방 전체가 영화 필름 모양의 띠로 장식되어 있다. 이 방은 다큐 혹은 시네마 강의 용도다. 해는 한창이어서 교실 안으로 빛이 부어지고 있었다. 나는 창가 가까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날따라 정신 사나운 마름모꼴의 자리 배치 때문에 어디 앉은들 맘에 드는 자리는 없을 터였다.


전날 반 편성표에서 급우들의 이름을 훑어본 바 있다. 이름으로 성격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국적을 짐작해볼 수는 있다. 사라 리Sarah Lee니 킴 스미스Kim Smith같은 이름이 있어서, 혹 이들의 핏줄이 한국계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정작 반 아이들이 모두 입장하고 나서도 검은 머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다들 눈썹까지 금색인 앵글로 색슨들이었다.




모두 착석하고 선생님이 도착한다. 나의 첫 선생님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마리 크리스틴. 그녀는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툴루즈 출신이고 남편을 사랑하며, 내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이이고 내 딸은 역시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다......단지, 그녀의 노래하는 듯한 억양은 좀 거슬렸다. 정감 있는 억양이지만 이때의 나로서는 프랑스인들의 다양한 억양에 조금도 적응되어 있지 않아 오직 밋밋하고 납작한 파리 억양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게다 가 이 여인의 꽤나 예민한 분위기도 내게는 거북했다. 50세가 훨씬 넘었지만 모든 여성미가 아낌없이 살아 있는 이 선생님은 학생의 제스처 하나하나에도 섬세하게 반응했다. 나는 긴장감 탓에 어느새 발을 떨었는데 그녀는 나의 발을 곧장 주시했다. 움찔했다.



첫 수업이니 모두는 당연히 의무적으로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선생님은 이것을 기왕이면 일종의 게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노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적어서 모두 섞은 다음 쪽지를 뽑아 알아맞추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이었다. 우리 반에는 예쁜 털모자를 쓴 슈네이드라는 친구가 있어 모두의 쪽지는 그녀의 알록달록한 모자 속에서 뒤섞인 다음 하나씩 떠나갔다.






모두의 쪽지는 그녀의 알록달록한 모자 속에서 뒤섞인 다음 하나씩 떠나갔다.







나는 비와 고양이와 시詩를 좋아하는 나와는 상반된 성향인 누군가의 쪽지를 뽑게 되었다. 거기에는 햇빛과 가족, 카약이라는 주제어들이 적혀 있었다. 카약이 뭐더라, 잠시 가물가물했다. 글씨체가 씩씩해 보여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었다. 곧 그 아이는 바로 내 앞에 앉은 영국 소녀 케이티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쪽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인물이 태양처럼 빛나고 밝은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당사자 케이트는 당장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시늉을 했고 마리 크리스틴은 케이트더러 “주 쉬 잘루즈 드 투와Je suis jalouse de toi."(너에게 샘이 나.)라고 했다. 잘 생긴 이목구비에 발그레한 볼, 건강미 넘치는 몸집의 이 아이는 나와는 토양이 도무지 다른 식물 같았다. 그녀는 마치 디카프리오의 여자 버전 같았다.


케이티 옆의 버지니아라는 아이는 어쩐지, 첫 만남인 이 자리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는 기색이었다. 수업 내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비실비실 웃고 있었는데, 알 수 없었다. 이 미소가 앞으로 친해 보자는 건지, 이 자리를 어색해하는 나를 재미있어하는 건지를. 긴 블론드의 그녀는 마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보였다.



그렇다. 이 자리에서 오로지 나만이 어색해 보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아이가 서양인이다보니 나만이 그들 무리와는 동떨어진 이방인이었다. 나는 한 무리의 외국인 집단인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말투와 표정, 얼굴 근육, 태도들 속에 완전히 외계인으로서 내던져졌다. 그들이 한없이 낯설었다. 그들의 어떤 감정이 어떤 표정으로 드러나는지 자체가 내게는 이제 막 빅뱅을 마치고 등장한 새로운 우주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들은 프랑스어를 참 수월하게도 말한다. 나는 그들과는 달리 머릿속에서 단어와 표현들을 조합해내느라 긴장해 있었다. 이 첫 시간은 이후 모든 학기의 어떤 수업보다도 가장 길게 느껴졌다. 이런 환경에 놓여 있자니 체취에도 과민해져 나만이 이질적인 냄새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어딘가 숨거나 뛰쳐나가 버리고 싶었다.



의식의 수면 밑에서 나 홀로 분주한 갈퀴질이 오가는 사이, 니콜라라는 남자아이가 내 쪽지를 뽑아 들었다. 그는 흡사 어린 왕자 같은 금발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추론하는 말투로 나를 지목했다. “명백히 여자예요, 왜냐하면 이 사람은 고양이와 비와 시를 좋아하니까요.”

또한 그는 내가 스포츠와 사람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아 수줍고 독립적일 거라고 했다. 내 정체가 이렇게나 허술히 탄로나다니! 좀 더 포장할 걸 그랬나?



이후 잠깐의 해방 같은 쉬는 시간. 그런데 그것이 과연 해방 같은 휴식이었을까? 커피 자판기 앞에서도 나는 온통 주변을 에워싼 영어에 압도되고 만다. 이럴 줄 알았다면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를 공부해 가지고 와야 했나 싶다. 알파벳이 아니라 순전히 ‘억양’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그들의 영어는 이제 그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피레네산맥이 되어있었다.


이 해방도 휴식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아까 교실에서 내게 파악하기 힘든 웃음을 던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풍의 버지니아는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내게 접근한다. 혹시 내가 영어를 잘하는지 물어보더니 다른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수형이 영어를 못한다니 우리 같이 있을 때는 프랑스어를 사용하자구!”


프랑스어만으로 소통한다, 그렇다 해도 완전히 고맙지만은 않다. 그들의 호의와는 별도로 영미인들의 프랑스어 발음이란 정말이지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두 달 지나면 그들 발음의 반복되는 특성, 예컨대 모든 경음이 격음이 되어 나오는 것 등에 익숙해지지만 이 기괴한 언어를 처음 들을 때는 그것이 오롯이 프랑스어로는 들리지 않는다. ‘빠스끄parce que’를 ‘파흐스크’로 바꿔버리다니, 아 정말 총체적인 난국이다.




잘 못 알아듣지 않기 위해 온 귀를 집중했던 첫 수업이 끝나고,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찬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몹시 피로해졌다. 특히 이 첫 학기 초반의 나날들에는 초저녁이면 피로에 떠밀려 쓰러져 자곤 했다. 나는 침대에 뻗어 누워서는, 케이에게 우리 반의 인원 구성을 두고 툴툴거렸다. 반 전체에서 동양인이 딱 하나뿐인 경우는 모든 반을 통틀어 우리 반밖에 없었다. ‘잘 못 걸렸다!’ 싶었다. 앞으로의 나날들이 너무도 길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반면, 영미권 아이라곤 딱 하나밖에 없이 갖은 대륙이 교차하는 초급반에 들어간 케이는 앞으로의 다채로울 행복을 예감하듯 유유자적해 보였다.




기숙사 앞의 그리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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