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어학원의 수업과 숙제들

by 래연




이 첫 금요일 이후 주말을 어찌 보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와중에도 숙제처럼 받아온 설문지를 완벽한 문법구조를 가진 문장들로 채워 넣으려 애썼을 거다.

주말이라는 완충지대를 지나선 어쨌건 좀 더 수업에 적응되었지만 여전히 사정은 밝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좀 한다고 여겨오던 독해조차 영미인들이 나보다 1/3쯤 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좌절하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료를 읽고 대의를 파악하고 쟁점을 찾아내어 자기 입장을 표현하는 과정에 훈련이 되어있었다.



둘째 주에도 자기소개 프로그램들은 모양새만 바꾼 다른 게임들로 대치되면서 디테일을 불려나갔다. 게임 중 버지니아는 나의 나이를 알게 되고는 소스라쳤다. “그 나이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야 하는 것 아냐?”

나는 아시아인들의 좋은 피부가 습기 많은 기후에 기인할 거라고 설명했고 아이들은 이 ‘습기설’을 수긍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의 이모뻘이었지만 습기를 머금은 피부 덕인지 아이들과 세대차 없이 지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우리들은 문자 그대로 단지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나의 몰골은 초췌했다. 개강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바지는 헐렁거렸고 건조한 기후 때문에 피부는 거칠어졌다. 머리카락은 몇 가닥 세어 있기조차 했다. 스트레스 탓이었다.

옷은 몇 벌 안 되지만 코디하기 쉽게끔 맞춰 가지고 온 것들로 조금씩 돌려가며 입었다. 하지만 화장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온 얼마 안 되는 샘플들이 떨어졌을 무렵 Leclerc의 화장품 샴푸 코너 그리고 약국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토양과 기후에 맞는 것을 써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약국에 건강보조제가 잘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된 후 글루코사민이라던가 물에 녹여 먹는 비타민 등을 종종 사 먹기도 했다.



첫 주나 그다음 주에 자기소개의 물결과 함께 다뤄진 소재들이란, 여기 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일테면 bisou(양볼에 키스하는 프랑스인들의 인사법)에 대해서라던가 교내 및 시내의 갈 만한 장소 및 시설들의 이용법, 인근 명소에 대한 안내 같은 내용이 다루어졌다.


그런데 이 내용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파트를 나눠 조사해 와서 발표하는 식이었다. 어느 수업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떠먹여 주기만 하는 것은 없었다. 선생님은 게임의 목적과 규칙을 설명하고 필요한 부연 설명을 해주는 역할이었고, 가장 중심을 이루는 활동은 언제나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모든 수업 활동은 구성되었다.


일상에서 유용한 표현들도 공부했다.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리액션 즉 ‘승진했어요’와 ‘나의 딸이 결혼합니다’ 같은 말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꾸를 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일상회화 역시 서양 아이들은 같은 문화권이라 그런지 쉽게 대답했다. 나의 긴장은 계속 이어질 뿐이었으며.


문법적으로는 형용사 같은 비교적 쉬운 부분부터 시작하여 점차 복잡한 동사 시제로 파고 들어갔다. 보통 워밍업을 하듯 가벼운 소재와 주제로부터 점점 어려워져 가는 게 수업의 추이였으나 모든 선생님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선생님은 프랑스어에서 무척 난해하다 여겨지는 접속법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모든 수업에는 일정 정도의 과제가 늘 일정 속도로 따라왔기에 방과 후라고 맘 편히 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숙제에는 늘 단어의 분량이 미리 지시된다. 이러저러한 주제를 250단어 혹은 350단어 내에서 작성해올 것, 이런 식이었다. 나는 이런 분량 제한이 낯설었지만 여기서는 아주 일반적인 듯했다. 숙제도 시험도. 오차범위는 +-10% 범위였다. 그러니까 분량 제한이 250자라면 225-275자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다. 첫 학기에 나는 중급반이어서 이 단어 분량은 엄격히 요구되지 않고 단지 참고로 제시되었지만 나중에 상급반으로 가면 일정한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작문을 연습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단어 수가 중요해진다. 중언부언함 없이 주제에 딱 맞게 내용을 구성하여 골자만 추려 기술하는 과정이 훈련된다.


그러나 중급반 정도에서는 이런 의견 표명 양식이 필요한 정치적 주제같은 것은 아직 다루어지지 않는다. 대신에 보통 꽤나 동화적인 주제를 던져준다. 이를테면 ‘각 나라별 이상형의 외모에 대해 묘사하기’라던가 ‘자기 나라에서 유명한 인물 한 명씩 전기 적듯 소개하기’라던가 ‘21세기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단순과거를 사용하여 써 오기’ 혹은 ‘내가 백만장자가 된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를 조건법을 사용하여 써보기’ 등이고, 좀 긴 분량을 요구하는 주제로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라의 요건’ 등이 있다. 보통 가장 흔한 숙제는 문법 연습문제 풀어오기였으며, 주제에 따라 작문해오는 것은 대략 1, 2주에 한 번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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