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학의 학식을 매일 먹던 날들

by 래연




꿈의 공 던지기


월요일 수업 끝날 때 마리 크리스틴은 메리냑 선생님을 잠시 예고했다. 그녀는 툴루즈에서부터 10년 넘게 같이 지내온 지기이며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우리들의 행운이라고. 이 말이 꽤 기대감을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도 과장이 아니었다. 모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행운은 내게는 3학기 내내 이어졌다. 실로 메리냑은 3학기를 함께 한 유일한 선생님이다. 이 짧은 금발 웨이브의 여인은 어딘가 지적인 현자 같아서 나는 종종 그녀를 ‘여자 리처드 기어’니 ‘여자 해리슨 포드’라고 묘사하곤 했다.


메리냑 선생님은 마담 메리냑 대신 자기를 그냥 나탈리라고 부르도록 했다. 그녀의 말은 빨랐으나 안정된 톤과 정돈된 어법 덕에 잘 들렸다. 그녀에게는 부드럽지만 지루하지는 않고,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한 균형이 있어 참으로 마음이 끌렸다.


우선 그녀는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항상 유익한 정보를 주고자 했다. 피레네는 10월과 11월이 가장 좋다던가, CD나 DVD를 맘껏 빌리고 반납하는 지역도서관 망에 대해서라던가, 교내 스포츠클럽의 이용, 하물며 교내 식당에 대한 어드바이스까지. 그녀는 우리 건물에서 가까운 라 바그La Vague보다 좀 더 멀리 있는 깝 쉬드Cap Sud를 추천했다. 그녀는 두 식당의 주방장이 다른 사람이며 La Vague는 자주 물컹하게 된 반죽을 내놓는다며 깝 쉬드 음식이 더 훌륭하다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껍질콩 볶음이 자주 딸려 나오곤 했던 학식



매주 수요일 오전 오후 도합 네 시간은 오로지 메리냑 선생님만의 수업이다. 오전에는 주로 문법이나 발음을 꼼꼼하게 짚어주는 수업이 진행되고 오후에는 좀 널널한 형태로 시청각이나 게임을 통한 학습이 이루어진다. 지금 생각나는 게임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각자 종이에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 한 가지씩을 적어 취합하여 랜덤으로 다른 사람이 뽑아 그것에 대한 솔루션을 고안하여 일정 어법을 사용해가며 발표하는 것이었다. 마침 창밖의 나무에 오렌지 색 공이 얹혀 있는 걸 보고 나는 그 공을 가지고 싶은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른다고 썼다. 내가 뽑은 종이에는 인터넷 계좌이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또 하나의 게임은 둘씩 짝을 지어 한 조가 되었다. 이 역시 문젯거리 몇 가지가 적힌 사진들을 보고 각 조가 문젯거리를 하나씩 택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을 하나씩 발명하여 종이에 그리고 그 아이템의 이름과 가격까지 정해 광고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그러하듯 슈네이드와 한 조였다. 우리가 택한 문제는, 너무 많은 책을 학교에 가져가야 하는데 쇼핑용 캐리어는 왠지 모양이 빠지기 때문에 보다 적당한 도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캐리어에 스케이드 보드를 연결시켜 ‘샤리오 트르와이엉chariot troyen(트로이의 수레)’라 이름 지었다. 그냥 가지고 다니기에는 쪽팔리는 캐리어도 스케이트 보드와 연결시키면 쿨하게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게임을 하며 나는 슈네이드와 의기투합이 되어 의기양양해졌다.

단지 어학 수업을 위한 것이었는데도 이런 종류의 ‘공부가 되면서도 재미있고 창의적인’ 게임들은 수업마다 차고 넘쳤다. 이런 수업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고무적이다.


첫 수업 때 나탈리는 자기를 소개하는 작문을 시켰다. 나는 한 페이지 적기도 빠듯했는데 제출할 때 보니 버지니아는 앞뒤로 깨알같이 빼곡하게 적은 종이를 내고 있었다. 이미 그러려니 하면서도 역시 약간 기가 죽었다.

그래도 첫 수업 때는 ‘한 무리의 외국인’으로만 존재하던 반 아이들이 어느덧 내 시야에 한 명씩 개별화되기 시작했다. <튜더스>에 나오면 썩 어울릴 법한 긴 금발에 짙은 화장, 길게 붙인 속눈썹이 돋보이는 레베카는 나탈리의 수업 직후, 자기는 선생님 이야기들을 어쨌든 알아듣기라도 한다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차갑고 새침한 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내게 자주 말을 걸어주었다. 그런가 하면 착하고 예쁘게 생긴 미국 소녀 코리나는 내 커다란 닥터 마틴의 청록빛 워커에 관심을 보였다.



유일하게 눈과 머리 색이 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파리다는 어느 날 아침 내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언제든지.”라고 답해주었다. 이후 두어 번 같이 밥을 먹었고, 비 오는 날에는 생강이 들어간 아프간 차를 그녀에게서 얻어 마시기도 했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였고 자기 나라에서는 의사로 일하다 이민 왔다고 했다. 그녀는 일상회화엔 어려움이 없었지만 수업 진행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새 단어들이 나오자 버거워했고 나는 반대로 텍스트들은 좀 보아온 편이라 적지 않은 어휘들을 알고 있어 이런 이유로 서로 퍽 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와의 우정은 딱 일주일가량만 지속되었다. 그녀가 반을 하나 아래 레벨로 옮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반을 바꾸고 나서도 수업은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그 반에서 새 친구들이 생겼지만 “너 같은 친구는 없다.”고 각별히 말해주어 나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아무튼 그녀가 떠난 자리를 대신할 친구가 생길 때까지 나는 당분간 좀 외로워하며 지내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역시 언어는 장벽이었다. 나는 수업 중간의 소위 포즈pose(휴식)시간마다 마주침을 피해 화장실에 숨었다. 그들과는 학생 식당 한 번 어울려 간 적이 없다. 영어를 피해 다닌 것이다. 대신에 케이의 반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먹었다. 꿈의 데뷔탕débutant(시작)반은 일본, 중국, 베네수엘라, 르완다, 한국, 에콰도르, 말레이시아 등 국적이 아주 다양해, 영어 없이 서툰 프랑스어로만 소통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안락했다. 그러나 우리 반과 같이 먹기 꺼리는 이유가 단지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먹고 나면 휴식하는 나와는 달리 식사시간이 곧 휴식을 겸하기도 하는지 많은 대화와 더불어 세월아 네월아 오래 먹는 그들의 문화가 적응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초급반 친구들과의 식사조차도 점점 줄어들어 나중엔 혼자 먹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사교적인 테이블로부터 멀어져 갔다.


수업 외의 시간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들어간 프로그램에서 그 전에 먼저 영어가 벽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정작 프랑스인들 앞에서 프랑스어가 편한 것도 아녔다. 이런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자니 나 자신이 무능함의 전형인 듯 느껴지지만 딱히 부인할 수도 없다. 아직 인터넷과 은행 계좌 개설을 위해 담당자를 한 번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운 나머지 심호흡을 필요로 했기에, 교내 스포츠클럽에 가서 등록한달지 하는 용기 있는 행동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차라리 그냥 부딪쳐 버리면 어떻게든 해결되는 일들이언만 지레 겁을 먹은 탓에 미적거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