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 패스 릴레이

프랑스어 학습의 다양한 방식

by 래연




외국인들에게 지레 갖는 어려움을 전혀 느낄 수 없이 완전히 편한 친구는 딱 한 명, 슈네이드였다. 그녀와의 첫 기억을 더듬자면 첫 화요일 라파엘 선생님의 랑그 안 악트Langue en acte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시간은 과목 이름처럼 신체 동작들과 언어 활동을 연결시키는 수업이다. 통상 신발을 벗고 매트 위에서 워크샵처럼 진행되었다. 근육 이완을 위한 스트레칭과 각종 놀이, 발음 교정이 이어진다. 때로는 완전한 발음을 위해 입에 볼펜을 물리기도 했다. 발음 연습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어려운 발음만을 모아 이것들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요령을 가르쳐 준 다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시키기도 했는데 킴벌리는 자기 차례가 돌아옴에 따라 다리를 덜덜 떨며 긴장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잘 못할까봐서라기보다는, 몹시 여성적인 킴벌리로서는 남 앞에서 자기 발음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몹시 쑥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이나 ‘간장 공장 공장장은’의 불어버전 같은 것도 연습했다. 프랑스어로는 이런 단문을 ‘virelangue'비흐랑그(발음하기 어려운 말)라고 한다. 어떨 때는 몇 개의 단문들을 주고는 조를 나누어 돌림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미처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언어습득 방식들이었다.


스트레칭이나 멤버들 간의 상호 신뢰 형성을 위한 게임들도 있었다. 자신이 나무라고 상상하면서 바람 부는 데 따라 움직여보라는가 하면 때로는 chef d'orchestre쉐프 도케스트흐(오케스트라 지휘자 놀이)라는 것도 했다. 한 사람이 나와서 동작을 만들어내면 그것을 나머지 인원들이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두 팀으로 나눠 정해진 개수의 단어들을 마임을 통해 전달하고 맞추어내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또 빠뜨릴 수 없는 게임은 jeu d'aveugle쥬 다베글(장님 놀이)였다. 붕대로 눈을 가린 장님을 다른 한 사람이 인도해주는 것인데 이것은 수업 횟수가 쌓여감에 따라 조금씩 변형 혹은 진화해갔다. 초반에는 부축을 다음번에는 한 팔로만 부축을 그러다가 점점 접촉되는 신체 부위를 최소화하고 나중에만 말로만 인도하기도 했다. 혹은 먼저 위치를 확인해놓은 물건을 눈을 가린 상태에서 집으러 가는 놀이도 했다.


아이들은 이 수업을 처음에는 부담 없다며 좋아하다가 점차 지겨워하게 되었다. 특히 버지니아는 몸이 아프다며 밥 먹듯이 빠졌고, 사라도 점점 염증을 냈다. 다들 종국에는 이 수업을 쓸모없고 유치하다 여겼다. 그런가 하면 이시도라는 다른 이유에서 수업을 싫어했는데, 특히 그녀는 긴장을 풀게 하려고 카펫에 누우라는 지시에 질색했다. “수년 동안 그 카펫 청소 한 번도 안 했을 거야. 진드기가 얼마나 많겠어?”

그녀는 알레르기가 몹시 심해 학기 내내 재채기를 달고 살았던 것이다. 재채기라는 현상은 예상도 억제도 할 수 없는 것이라 그녀는 재채기가 터져 나올 때마다 어떻게든 소리를 작게 내려고 용을 썼는데 그러느라 ‘켁’,‘콕’하는 귀여운 소리가 나곤 했다.





늘 배색모자를 쓰고 다니던 슈네이드가 코코아를 들고 눈오는 창가에 있다. 여기는 눈이 정말로 적은 지역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작은 물의였던 이 수업, 나는 그 최초의 시간 직전 교실 뒷문 앞에 서 있다. 여기에 곧 여러 층으로 예쁘게 배색된 털모자를 쓴 슈네이드가 나타난다. 눈이 큰 슈네이드는 나와 마주치자, “프랑스어 잘 못 해서 겁나.”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주었다.

이윽고 매트에 올라가려고 신발을 벗는데 라파엘이 내 신발을 보고 감탄했다. “그로스 쇼쉬르Grosses chaussures!"(커다란 신발이군 그래!)

수업 전 아이들은 영어로 웅성거렸다.

“어디서 앵글로 색슨 말이 들리네?” 라파엘은 눈을 크게 뜨고 영어 사용을 저지시켰다. 오로지 프랑스어, 프랑스어로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창밖은 오후의 햇살로 가득했다. 우리는 우선 두 줄을 만들어 마주보았다. 내 앞에는 2 미터의 거리를 두고 창문 가까운 편에 슈네이드가 서 있다. 복도 쪽에 서 있던 나는 창밖의 빛이 슈네이드의 등을 비추며 머무는 후광을 가늠한다.


이날은 게임을 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단지 입 모양의 움직임만으로 전달하여 문장을 알아맞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시야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던 슈네이드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모하여 몰래 상대에게 문장을 반복하여 한 번씩 더 가르쳐 주었다. “튀 에 시 벨르Tu es si belle."(너, 참 예뻐.) 내가 뱉은 이 말은 그녀의 첫인상에 대한 고백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슈네이드에게는 모든 경계를 풀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또 이날의 두 번째 게임은 ‘꿈의 공 던지기’였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둘러앉아 자기의 꿈을 말하며 아무에게나 공을 던지는 릴레이를 이어가는 거였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꿈은 아무리 희귀하거나 사소해도 상관없고 직업의 형태를 띨 필요도 없다. 이런 게임을 자주 하며 사는 문화권 아이들에겐 별 것 아니고 유치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런 게임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공을 던지노라면 뜬금없지만 자연스럽고 즐겁지만 진지해진다. 나는 묘한 이 게임에 자극되어서는 생애 처음으로 능동태로 살고 싶은 기분조차 들었다.


꿈의 패스 게임,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각자가 퍼 올리는 수액으로 충만하여 바깥을 향해 피워 올리는 염원의 꽃이 단지 아름다울 뿐, 매 순간이 벅찰 수 있다면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이어도 상관없으리라. 우리는 40대, 50대, 60대, 그 이후에도 가끔씩 잊을 만하면 언제고 이런 꿈의 공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고개를 돌리면 창밖, 말발굽처럼 휘어진 ‘ㄷ’자 교정은 햇빛의 저수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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