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식물이었다, 나는

by 래연




응달에 든 매



햇빛의 능선에 수많은 활자들이 질주한다.

고로 빛의 송신은 자주 교란되었다.


오랜 숨바꼭질 끝에 밤이 온다. 쓰기란 던져지는 것일 뿐 완성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말과 나는 늘 법칙에 따라 술래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내가 늘 술래를 맡았지만 말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것이었다. 여하튼 그가 나와 자주 만날 수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뭐 오해나 멸시, 원한에 의해서는 아니고 이유 있는 술래잡기에 의해서다. 누구나 친구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이 친구가 되어 주지는 못하는 아이러니와 비슷하다고 해두자.

내가 그림자들 속으로 연거푸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말은 잘 알아채지 못한 채 투덜대며 햇빛의 조가리를 씹어댔다. 그가 아무렇게나 뱉어낸 것들은 바닥에 떨어져 풀이 되거나 민들레 홀씨가 되었다. 그의 분신들이 닿아 어떤 두개골에 자라면 그렇게 해서 지어진 집은 수없이 복제되어 팔려나갔다.

그늘의 거주민인 나는 두개골의 건축을 완성할 수 없었고 오로지 초지일관 응달에 수많은 작은 옹달샘의 얼룩을 겹쳐내었다. 그것은 ‘응달의 지문’이라 불렸다.











이 세상 어디든 각각의 매력은 있을 터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내면에 불가사의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삶을 변화시키는 결계들이란 대체로 감추어져 있으리라. 그 신비한 힘을 지구자기장이라 부르든 볼텍스Vortex라 부르던, 물리적 법칙이 와해되면서 기이한 실종현상을 야기한다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에는 오래도록 지병으로 앓아온 우수와 근심이 사라지는 장소도 있다. 알려지지 않은 22번째 볼텍스가 있다면 나는 피레네가 거기에 해당될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이국적이고 미려한 장소로서의 포를 소개하는 걸 주된 소일거리로 삼고 싶지는 않다. 장소란 어디든 고유의 매력이 있게 마련이니 굳이 그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 수 없는 스케치를 해 보이지는 않으리라. 그보다는 꺼진 줄 알았던 내 불씨가, 훅하고 한 번 불자 타닥타닥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하리라. 내 잿더미 품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따뜻한 불! 이 불을 수혈해주겠다.


오아시스를 이야기하려면 사막을 먼저 그려야 하듯, 어쩌다가 피레네로 갔고 피레네가 나를 어디로 보내고 있는지가 우선이어서 나머지는 바람의 번지수를 묻는 것처럼 부질없다. 고로 나라는 음각화로서 포라는 웅려한 양지를 그려낼까 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고스란히 음지 식물이었다. 이상하게 아파 보이고 코피를 자주 흘리고 창백했다. 가족과 선생님들로부터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수업을 빠지고 싶은 아이들은, 늘 기운 없는 나에게 묻어 쉬려고 종종 나를 앞세워 양호실에 갔다.


또 나는 채 다 자라지도 않아서 이른 퇴행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키만 껑충 웃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슬플수록 나는 점점 더 아이가 되어갔다.

나의 소년기는 어찌어찌하여 비밀을 늘려가게 되었다. 사춘기의 나는, 문명이라는 허울에 가려진 야생 밀림에 숨어 점진적으로 붕괴했다. 나는 ‘틈’ 혹은 ‘그늘’에 숨죽여 웅크린 거주자였다. 소녀들에게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변함없이 사회와 공동체에 의해 은폐되어온 그 영역을 살아야 했다.



게다가 살아가잡시고 아래위 좌우로 팔을 휘저어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경계가 너무 불순하게 여겨졌다. 나는 바깥을 포기하였다. 거기 양지에는 성공과 미래라는 빨래를 널지 않는다. 날카로운 매처럼 그림자 속에 숨어든다. 그러나 그림자 속에서도, 오래 복종해 온 햇빛 영토의 규율이 기억나 활개를 칠 수가 없었다. 허기질 때마다 그냥 그늘을 콕콕 쪼아 먹었다.

일찍이 후두둑 비가 떨어졌고 나는 서둘러 희망을 걷어 세탁기 속에 다시 넣었다. 나는 빙빙 돌아가는 세탁기 속에서 외치며 목이 쉬다 중얼거리며 잠이 들곤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