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학기 초반 주거가 안정되었을 무렵 성진 씨는 멜리에스 영화관에 가자고 했다. 그는 영화관까지 초저녁의 긴 길을 그 자신도 약간 헤매가면서 안내했다. 지금도 나는 약간은 드라큘라처럼 보이기도 하는, 흔치 않은 분위기의 야릇한 외투 깃을 세우고 아랍인 같은 바지에 멋진 팀버랜드의 갈색 워커를 재빠르고도 섬세하게 옮겨놓으면서 앞질러 걷던 그의 뒤로 남겨지던 담배 연기를 기억한다.
우리는 멜리에스에 도착했다. 마침 프랑스어 자막이 곁들여진 한국 영화 ‘박쥐’가 상영 중이었다. 그는 영화관 입구에서 관계자에게 꽤 자연스러운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네고 표를 끊었다. 그는 서울에 있을 때 디자인 쪽 일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혹여 일거리가 있을까 하여 관계자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준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고강한 생활력이랴!
밤늦게 영화관을 나온 다음 성진 씨는 우리들을 '쇼케이스'라는 바에 데려갔다. 도시라고 해봤자 저녁이면 거리가 싹 비고 어두워져 버리니 우리나라하곤 밤 문화가 정말 다르다.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드문 몇 장소가 그대로 익숙한 단골집이 되곤 한다. 쇼케이스는 학생들 사이에 가장 대중적인 장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또 이곳은 성진 씨가 유일한 낙인 멜리에스 영화 관람 후 들러 혼자 한 잔씩 하던 곳이라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고독하게 자생해온 자의 포스가 묻어났다.
맥주를 들이키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바의 입구에 나왔는데 그는 담배를 우리로부터 얻어 피우며 “여기선 담배 인심 좋으면 안 돼요.”라고 했다. 프랑스는 담뱃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친구들을 비롯한 애연가들은 흔히들 직접 말아 피는 담배를 즐기곤 했다. 이런 자잘한 충고까지 챙기는 그는 프랑스 생활에 속속들이 잔뼈가 굵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간 짐작지 못할 애로도 많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학교에선 이방인들인 외국 친구들의 회오리 속에서도 유독, 낯선 문화를 내게 친절히 번역해주던 곰 인형 같은 중간 대상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슈네이드가 그러한 완충지대였다. 언젠가부터 슈네이드는 교실에서 늘 내 옆에 앉았다. 좀 비약하면 이즈음의 나에게는, 그 자신 수업에 별 의욕이라곤 없는 슈네이드는 마치 내 친구가 되어줄 요량으로만 거기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소스의 이름이라던가 영국의 풍습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었는데, 더욱이 내가 무언가를 물어보면 일단 그 구김 없는 아이 같은 웃음을 가득 얼굴에 띄우는 것으로 대답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영국 아이들은 동양 친구들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않고 자기들끼리 어울려 논다. 리즈 대학에서 온 한 무리의 교환학생인 그들은 자기네들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매일 학교 밖에서 파티며 외출 등으로, 각종 술이 넘쳐흐르는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슈네이드가 사는 건물은 파티의 온상이어서 그녀의 방에는 다 마신 술병들이 울타리를 이루었다. 그런 한편 슈네이드는 자신이 자기들 무리 속에서도 동양 친구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소수의 몇몇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페이스북을 하느냐 물었고 이때를 계기로 나도 계정을 만들었다.
수업 시간이 5분이나 10분 정도 남으면 선생님들은 프티 박petit bac(미니 바칼로레아, 인물, 도시, 동물, 식물 등등의 칸들을 만든 다음 선생님이 불러주는 알파벳으로 시작되는 이름들을 칸칸이 적은 다음 스톱을 부른다. 모두 멈춘 상태에서 채점을 한다.)을 비롯한 간단한 게임을 했는데 여기서 나는 단짝 슈네이드와 한 조가 되어 다른 조들를 격파하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로서는 연약한 개인이었으되 둘이 뭉치면 무적이 되었다. 우린 함께 아이디어로 넘쳐났고 죽이 잘 맞아 신이 났다. 예문 하나 만드는 것도 재치와 귀여움이 넘치던 그녀를 나는 참 좋아했다.
그녀는 출석은 잘 했지만 수업 중에 나서서 발표를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한 마디로 수업에 추호의 야심도 없어 보였다. 선생님에게고 친구들에게고 자신을 어필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그녀가 내 눈에는 마치 성공이나 명성에는 무심하게 우정과 내면의 멋만을 즐기려는 듯이 근사해 보였다. 이런 태도는 반의 다른 영국 아이들 이를테면 케이트나 버지니아와도 많이 달라 보였다.
슈네이드는 아주 내추럴했다. 여행 짐이 단출해서 옷이 많지 않았던 그녀는 매일 거의 같은 차림이었다. 그녀의 발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바탕에 빨간 끈이 달린 낡은 구두는 어느덧 발등이 좀 찢어져 있었다.
영국 여자아이들은 대개 터프하다. 우리라면 남 눈에 띌세라 창피해하며 숨길 것들을 그녀들은 오히려 드러내놓고 즐기는 것 같았다. 버지니아 또한 어느 날, 학기 초부터 신던 어그부츠가 너덜너덜 공중 분해되는 일이 생겼다. 그녀는 보란 듯이 문제의 신발을 끌고 다니더니만 이후 어느 비오는 날은 느닷없이 멋진 새 장화를 신고 왔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나 멋들어지던지 모든 수업의 모든 선생님마다 그냥 지나치지를 않았다. 그것은 검은 고무 재질의, 종아리 라인을 잘 살린 레인부츠였다. 사실 그것은 원래 승마용 부츠였다. 언젠가 슈네이드와 앞으로 다가올 추위를 두고 부츠 마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는 버지니아의 것이 꽤 비쌀 것이며 그러니 버지니아는 부자일 거라고 수군대었다. 실제로 그녀는 귀족이고 부자일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부츠는 알고 보니 이 도시 외곽에 위치한 스포츠 매장 ‘데카틀롱’에서 고작 불과 12유로에 불과했다. 정작 부러워해야 할 것은 그녀의 그 털털한 패기였다. 언젠가 버지니아는 내게 그 부츠가 정말 실용적이므로 하나 장만하면 좋을 것이라 귀띔했다. 특히나 고무 재질은 비가 자주 내리는 포의 기후엔 딱이었다.
그 부츠가 비싸 보인 것은 순전히 버지니아의 평소 분위기 탓이다. 그 누구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포스. 여유 있고 럭셔리한 자태. 어느 날인가 버지니아는 카펫 위에서 진행되는 라파엘의 수업에서 구멍 뚫린 양말을 드러낸 적도 있다. 라파엘은 버지니아를 무안하지 않게 하려고 평소의 낙천적이고 넉살 좋은 말투로 “양말이란 뚫어지라고 있는 거야.”라고 위로했다. 어차피 그런 위로 없이도 버지니아는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독특하고 기가 세어 어디서고 꿀리지 않고 느긋했다. 여자는 참하고 단정해야 한다고 교육되어 이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여자들과는 달랐다. 부러웠다.
슈네이드는 허름한 차림에 한술 더 떠, 당시 비까지 많은 포의 가을을 한동안 우산조차 없이 다녔다. 내 작은 토트 우산은 두 사람이 쓰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아쉬운 대로 이걸 같이 쓰고 귀가한 적도 있다. 우리는 우산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로서는 아직 영국식 억양의 프랑스어가 잘 들리는 시기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우산 속에서 슈네이드의 말은 모두 잘 들렸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남자의 영어 억양이 아주 섹시하다고 했다. 어쩐 일인지 영국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내가 해보라고 하자 슈네이드는 짧은 문장 하나를 스코틀랜드 남자 억양으로 말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