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의 온상, 슈네이드의 집

by 래연





파리다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 단짝은 나타나지 않은 채 새로운 한국인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어쨌거나 학생 식당은 사람들이 마주치기 좋은 장소였다. 성진 씨와는 점점 더 자주 마주쳤다. 그는 급히 어떤 주택 꼭대기 층에 하필이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침침한 방을 구했다. 고풍스런 방엔 새 물건이라고는 없어 이불 침구류마저 앞선 거주자가 남긴 것을 빨아 말렸는데 그래도 퀴퀴함이 전혀 날아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전 거주자도 그 전 거주자의 것을 쓰다가 남겨둔 건지도 모른다. 그의 주거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나름 근사해 보이는 욕조뿐이었다.


그의 주거는 콜로카시옹(부엌 등 일부 시설을 나눠 쓰는 공동 주거)형태였는데 그는 부엌을 공유하는 일본 소녀 하루카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편한 대로라고 했다. 자기 물건은 남이 손대지 못하게 보란 듯이 챙기면서 정작 성진 씨 물건은 아무렇지 않게 막 가져다 쓴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성진 씨의 파티에 처음엔 안 온다고 했다가 막상 파티가 무르익자 슬그머니 기어 나와 무리 속에 끼어들어 같이 먹고 즐겼는데 이런 모습도 싫다고 했다. 그녀에 대한 그의 불평은 점점 업데이트되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일본 친구들을 초대해서는 부엌문을 닫아놓고 미친 듯이 시끄럽게 웃고 떠들며 자기를 따돌렸다고 했다.



성진 씨에게 찍힌 건 같은 층의 하루카 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아랫방 영국 여자애들이 밤마다 파티를 여는데 영국 아이들이 이 방에 잔뜩 모여서는 참아줄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논다고 했다. 어느 주말 어찌나 공부에 방해가 되던지 결국 파티의 한 가운데 나타나 불만을 토로했더니 그다음 날 영국 여자애들이 간식거리 빵을 사가지고 와 몹시 미안해하며 사과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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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의 온상이었던 바로 그 집





그녀들의 해프닝은 파티의 소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들의 행각은 파티뿐 아니라 생활전반의 각종 무질서로 표현되곤 했다. 한 번은 감당할 수 없는 음식물 찌꺼기들로 개수구를 채워 수도관이 모두 막혀 버릴 지경으로 만들어 집주인의 분노를 샀는데 또 이것을 다른 이웃인 루한과 그녀의 중국 친구들이 다 치워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루한이라는 친구 또한 방을 지저분하게 쓰기로는 챔피언급이어서 그녀의 방을 우연히 보았던 케이는 살다 살다 세상에 그렇게 지저분한 방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나는 성진 씨의 처지에 동정이 갔다. 그의 서식지가 건강에 썩 좋지 않은 데다 집 건물 전체가 이상한 공동 거주자들에 점령된 ‘혼란의 집’ 그 자체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래층 영국 아이들이란 내 친구 슈네이드와 그녀의 단짝 릴리였다. 슈네이드의 방을 중심으로 그 층 자체가 말하자면 사교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외로운 고슴도치 성진 씨는 나보다 두 단계 아랫반이었는데, 내가 있는 반 정도로 바꾸고 싶어 했다. 그는 지난봄부터 심지어 여름 학기까지 모두 바쳐 쉬지 않고 프랑스어를 연마해왔기에 더 상급반에서 수업받아야 마땅하다고 자기 자신을 진단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의 반은 미국인 아이들이 유창한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죽이는 수업 분위기여서 그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그는 자기 반 담임 마리나에게 반을 옮겨 달라고 간청했다. 마리나는 다른 선생님과 상의 결과 월반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때부터 마리나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실망을 간직한 채, 자신과 영 삐걱이는 수업 분위기에 끝없이 낙담하면서 학기 말까지 별 의욕이라곤 없이 단지 ‘버티게’ 된다. 그는 열악한 주거환경에다 월반의 좌절 등 스트레스까지 겹쳐 점점 몸이 나빠져서는 학기말에 이르자 며칠 동안 결석하다가 결국 최악의 상태로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나중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는 귀국하자마자 거의 앓아누웠다고 한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겠다는 희망이 이렇게 귀결되는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가 비교적 건강했던 초창기, 그는 자기 방에서 기꺼이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이 파티에 말레이시아 친구 에리나가 와주길 희망했다. 그녀가 늘 혼자 다니는 것 같으니 우리와 합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희망은 제삼자에 의해 전달되었고 에리나는 기꺼이 합류했다.

에리나, 남방계적인 생김새다. 단발, 까무잡잡한 둥근 얼굴에 가득 띤 미소, 큰 눈에 진한 눈썹, 교정에서의 그녀는 멀리서도 환히 웃으며 여유 있고 자신만만하게 담배 연기를 날리며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종아리에 달라붙는 부츠 위로 늘 입는 가을 코트를 휘날리며 총총히 사라져 간다. 그녀는 자기 나라에서 건축 일을 하다가 영국에서 다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했는데 이 과정들에서 성차별과 인종 차별을 두루 경험, 환멸을 느낀 다음 이제는 프랑스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소르본 대학원에 들어가 예술경영을 공부하려고 불어를 배우기 시작한 거다.



만만하게 끓여먹던 홍합탕, 백포도주를 곁들여 마시곤 했다.





에리나 외에도 미츠요와 시게똥 등 일본 친구들이 합류했다. 나는 곧장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홍합탕과 미역국 재료들을 챙겨갔는데 나의 기숙사와는 달리 그 집 부엌 화력은 영 좋지 않아서 뚜껑을 닫고 끓였는데도 참으로 천천히도 끓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모두들 홍합을 발라 먹으며 흡족해했다. 미역을 끓이는 동안 미츠요는 내 옆에 서서 “미역국은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라고 들었어.”라고 말했다.


에리나와는 이 첫 만남부터 흉금을 나누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반항적으로 살아온 그녀와 나는 목소리를 모아 인간을 억압하는 것들을 비판하며 영혼의 동지라도 만난 양 기뻐하며 잔을 비워댔다. 나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마셨고 에리나도 결국 귀가하지 못하여 나의 좁은 침대를 나눠 쓰게 되었다.

파티 주최자인 성진 씨는 다음에는 각자 프랑스 친구들을 한 명씩 데려오자고 제안했지만 이후 파티 멤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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