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난 1년을 회상의 집으로 재축조하는 사이, 지금 올해가 작별을 고하고 있다. 마지막 날이다. 밖의 길은 얼어붙었고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내린 눈은 여전히 쌓여 있다. 참으로 겨울다운 겨울이다. 외롭다. 모든 게 더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오히려 더. 여기에는 비즈(양쪽 볼에 입 맞추는 가벼운 인사법)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프랑스라는 땅에서, 서로의 의사소통이 완전할 수 없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비즈라는 인사법은 단지 프랑스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의미까지를 지니고 있었다. 한정된, 하지만 적지 않은 수효의 친구들이 늘 비즈를 부대끼며 같은 공간을 점유했으니 말이다.
마들렌느 과자를(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도입부) 집어 들다가 그것이 환기하는 감각에 의해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미끄러져 가는 식으로, 나는 비즈에 대해 추억하다가 비즈로 가득했던 한 모임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이 비즈를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맛볼 수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파티다. 우리 동양인들끼리 소소하게 모여 봤자 기분 나면 누군가는 비즈를 하지만 그것도 한국인들끼리만 모이면 거의 생략되고 만다. 에리나 같은 경우는 거의 서양인처럼 비즈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비즈를 맛보려면 프랑스인들끼리의 파티에 가면 된다. 마침 케이가 문화 센터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었으므로 어느 날 나까지 파티에 동행할 기회가 왔다.
카니발 때 실비앙의 퍼커션 팀
문화 센터의 퍼커션 팀을 이끌고 있는 실비앙이라는 남자는 참 친절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강습을 했지만 자기 팀이 지역 축제며 각종 행사에서 제 역할을 해내려면 강습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매주 한 차례 더 팀원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레페티시옹répétition(연습)을 실시하곤 했다. 이즈음 그는 마침 이사를 한 참이었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공장 창고를 개량하여 주거용으로 바꾼 장소였다. 수업시간에 배우기를, 그런 곳은 앙가르hangar(창고)라고 불리는데 예술인들 사이에 그런 공간이 유행이라고 했다. 말만 들어도 낭만적이고 근사했다. 그런 곳에 모여 북을 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놀다니! 더군다나 실비앙의 거처에는 멋들어진 고양이도 한 마리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실비앙은 거기에서 크레마이에르crémaillère(집들이 파티)를 벌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거기서 엄청난 수효의 비즈를 경험하게 되었다. 일단 그 공간에 들어가면 모두와 한 차례 인사를 나누어야 하고 이게 끝이 아니라 중간에 또 누군가가 오면 또다시 벌떡 일어나 의식을 치러야 한다. 수염 달린 남자들이 많았으므로 뺨이 무척 따가워지기에 이르렀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고 사나 싶었다.
집주인 실비앙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무척 마른 몸을 하고 있었고 얼굴은 몹시 흰 데다 머리카락이 길어 예민한 엘프처럼 보였다. 말하는 품새며 마음 씀씀이에 섬세함이 묻어났다. 가늘은 목소리에 콧소리가 많이 섞였는데 그것이 또 어딘가 연약한 듯 애교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가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축제 때 거리에서 공연하는 모습은 팀의 리더이자 선생님다운 카리스마를 내뿜었지만 보통 때 친구로서의 그는 그저 다정하고 고와 보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본 상당수의 골루아 족 남자들은 다들 실비앙처럼 어딘가 섬세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왠지 그들 존재 안에 상처를 쉽게 입을 것 같은 여자를 하나씩 품고들 있는 듯했다. 대개의 프랑스 남자들은 다른 민족보다 수컷의 야성이 적어 보였다. 중간에 나는 화장실이 어딘지 물었는데 실비앙은 안내해주며 양해라도 구하듯 “세 파 졸리C‘est pas joli."(화장실이 예쁘지는 않아.)라고 했다. 화장실에도 ‘예쁜’(joli)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다니. 그래도 내 기준에는 그만하면 졸리했다. 공장 화장실이라 삭막해 보일까 싶어 그랬나?
착한 실비앙은 이 장소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어색해하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언어 소통도 충분치 않고 그리 사교적인 편도 아니어서 겉돌기 쉬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웠던 것은, 프랑스인들이란 모여 놓고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떠들어댄다는 점이다. 골루아족은 이 세상에서 제일 수다스러운 민족임에 틀림없다. 학교 불어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말투로 엄청나게 지껄여대는데 통 적응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의 에티켓에서는, 계속해서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듯 떠들어대고 있지 않으면 뭔가 심통이 났거나 파티가 즐겁지 않다는 의미로 전달된다고 들었다.
실비앙은 우리를 편하게 해주려고 꾀를 내어 게임을 하자고 했다. 돌아가면서 세계 여러 언어 중 아무거나 아는 단어 한 가지씩 말하기라는 그다지 재미없는 놀이였으나 어쨌든 모두들 왁자지껄 한두 바퀴씩은 돌았다. 이 인위적인 놀이 다음에는 다시 한없는 수다의 향연이 이어졌고 우리는 버틸 만큼 버티려고 애썼지만 결국 귀가 시간 핑계를 대며 먼저 일어나야 했다. 실비앙은 예의 그 코멘소리로 “벌써 가?”하면서 우리를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거기를 빠져나오자 아주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한 번은 케이가 실비앙 네를 다녀오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재미있는 일이 또 있었어. 도대체 프랑스 사람들은...도대체 무슨 요리가 그 모양이야?...그걸 또 파르타제partager(나누다)한답시고...”
그는 언제나처럼 또 그 ‘창고’에 갔는데 그 날은 이 지역 특별 요리를 나눠 먹게 된다는 예고가 있어 잔뜩 기대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웬 들통 같은 냄비가 나왔고 각자에게 요리가 배분되었는데 받아든 그릇은 거의 멀국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가르뷔르garvure라는 지역 특선 요리로 오리고기와 야채를 넣고 푹 끓인 스프였다. 그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머지 한 무리의 프랑스인들은 겨우 오리 다리 한 개를 넣어 우려낸 국물을 나누며 굉장한 거라도 먹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각자의 접시에는 오리고기라고는 겨우 한 점 정도 들어갔을 뿐인데도, 우리로서는 어이없어 보이는, 거의 나눈다고 하기도 뭐한 요리를 놓고 그들은 파르타제한답시며 호들갑을 떨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우리네라면, 삼계탕 요리를 먹는다고 하면 각자 닭 한 마리는 좀 뭐하더라도 최소한 다리나 날개 한 개씩은 돌아갔을 것이다. 이후에도 종종 이 프랑스 친구들은 ‘파르타제’를 외치며 아주 적은 분량의 꼬치요리를 나눠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