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친구들은 이즈음 어땠나? 버지니아는 요리조리 갖은 핑계를 대며 결석했다. 한 번은 자기 집주인이 밤새도록 마카레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다며 조퇴하기도 했다. 학기 초에 그녀는 ‘브롱쉬트’라 불리는 일종의 기관지염을 앓았는데 이런 병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담배를 물고 살았다.
이렇게 학업에 불실한 것까지를 포함하여 그녀는 시크했다. 그녀가 보여준 영국적인 시크함은 이를테면 거만하고 분방하고 거친 무심함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까? 타인의 동의와 승인이라곤 필요로 하지 않는 버지니아의 무사태평함이 진심 부러웠다. 선생님들도 그녀의 애교어린 불성실을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끔찍이 잘 받아 준 나머지 그녀는 그야말로 귀족처럼 있었다. 발표할 때는 “여기 앉아서 해도 될까요?”라고 하며 교탁에 자연스레 앉았다. 마치 교실을 자기 집 안방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지금도 수업 시간에 종종 볼펜 끝을 멋들어지게 입에 물고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금빛 팔찌를 두른 손목을 드러낸 채 큼직한 셔츠 위로 금발을 아무렇게나 흘려 내린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가 하면 이시도라는 다른 이유로 자주 결석했다. 그녀는 심한 알레르기 때문에 재채기를 해대었고 그러면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아 테 수웨!”A tes souhait(시원하겠네!)라고 덧붙이곤 했다. 통통한 체구와는 달리 몸이 약해 언젠가는 신종플루로 의심받는 증세로 꼼짝 못 하고 누워 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실 수업 시간이라는 게 그녀에게 필수 불가결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프랑스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그녀가 왜 나와 같은 반에 있는지 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작문이 허약하다든가 유독 쓰는 시험에만 약하다든가 하는 약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시도라는 결석도 잦았고 반 친구들과 그다지 연대감이 없었으며 어딘가 그늘져 보였다. 그녀는 베네수엘라의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 누구나 차로 다녀야 하고 부모들은 웬만하면 자식들이 해외에 나가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중에 <엘 시스테마>라는 다큐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는 우리나라보다 살기 힘든 나라들이 있는데 이시도라의 베네수엘라도 그중 하나라는 것을.
11월 중에는 두 군데의 좀 큰 파티에 가게 되었다. 하나는 슈네이드의 생일이었다. 그런데 슈네이드는 수줍음 때문인지 딱히 나를 초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베카가 귀띔했다. “슈네이드가 널 좋아하니까 너만큼은 파티에 꼭 와야 해!”
더불어 그녀는 슈네이드가 견과류에 알레르기가 있으니 선물 살 때 주의하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프란시스 미오의 초콜릿과 아르마냑Armagnac을 준비했다. 그 날 저녁, 늘 파티의 온상으로 되어있는 슈네이드네 집으로 향했다. 슈네이드는 오는 사람마다 기쁘게 포옹을 하고 선물을 풀어보며 환호했다. 그 날은 특히 마치 서프라이즈처럼, 슈네이드의 가장 친한 친구 베카 허스트가 영국으로부터 날아와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도착해서 어느덧 방은 꽉 찼다. 완전히 사람이 다 모일 때까지 슈네이드는 준비한 술들을 따라주곤 했다. 이미 추운 날씨지만 몇몇 영국 여자애들은 섹시하게 등을 드러낸 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애들과 여자애들, 유학 중인 거의 모든 영국 아이들을 이 파티에서 다 본 듯하다. 우리는 일제히 시내 맛집 '파를르망Parlement'까지 걸어가 피자와 와인을 먹었다. 언제나 톰보이 같던 슈네이드는 이날따라 예쁜 소녀처럼 도트무늬 옷을 차려입었다. 내 앞에는 마치 동글동글한 감자 같은 두상을 한 ‘다니’라는 친구가 달걀 얹은 크림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다. 슈네이드는 이 친구를 가리켜 전형적인 영국 남자애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들은 그가 유니언 잭이 그려진 반바지 등을 즐겨 입는다고 했다. 다니는 우연히 마주치면 보통의 아이들처럼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게 아니라 매번 뭔가 더 할 말이 있다는 표정과 제스처를 보이곤 했다. 더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모두 다니를 좋아했다.
반면에 다른 영국 친구들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예의상으로라도 친해보려는 표시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종에 대한 호기심처럼 보일까 봐 영국 애들은 동양인에게 말 거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고 한다. 나름대로는 그들의 매너인 것이다. 내 옆의 스티브도 그랬다. 얘는 링고 스타처럼 생겼는데, 내가 공동의 화제를 만들어볼까 하고 스티브 반의 한국 애를 안다고 말을 꺼내자 별 느낌 없이 “그 애는 친절해.”라고 뇌까린 뒤 다른 영국 애들과 계속 잡담을 나누며 무심히 피자만 먹었다.
왁자지껄 피자를 먹은 다음 우리들은 조그만 바에 들러 주피터Jupiter라 불리는 작고 맛없는 잔들을 비웠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들이키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술이었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니스 맛이었다. 그런 다음 이내 쇼케이스로 갔다. 앞에는 제이스라는 날카롭게 생긴 여자애와 몇몇이서, 내가 늘 헷갈려하던, 시내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을 최단거리로 익숙하게 질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냥 따라 걸었다.
그날 이후 슈네이드는 일주일쯤 결석을 했다. 서프라이즈로 도착했던 친구 베카에게 낮 시간 동안 이 도시를 구경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여기는 저녁에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이 기간에 그동안 못 해 봤던 것도 해봤다고 했다. 택시를 전화로 부르기가 그것이었는데 의외로 꽤 간단하고 쉬웠다 한다. ‘몇 시, 어디!’라고만 하면 기사들은 알아듣고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슈네이드는 이후에도 또 한 주 더 결석을 했는데 이번에는 단짝 릴리가 아파 누워서 그녀를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슈네이드가 옆자리를 비운 그 2주 동안 나는 점점 더 기운이 없어지며 우울을 타기 시작했다. 오후의 기울어가는 햇빛을 옆의 친구와 나누던 느낌이 사라지자 문득 강장제 중독이 나타난 듯 스산한 기분이 되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전 여느 때처럼 복도에 여럿이 서 있을 때였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처럼 50분에 끝나고 10분 휴식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이전 수업이 4시에 끝나도 다음 수업은 거기서 곧바로 4시에 시작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기다림의 풍경은 일상적이다. 또 모든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오면 항상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부터 시작한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방에서 나는 숨결과 체취로 포화상태가 된 방을 정화해서 맑은 공기를 들여오게 하기 위함이다. 마리 크리스틴은 “어쨌든 사람도 동물이니까...”라고 한 적이 있다. 강의실이 중간 10분이라도 비워지는 일 없이 곧장 사람들이 들고 나기 때문에 더더욱 환기가 필요했다.
이때 누군가 나에게 외쳤다. “누가 왔는지 봐, 수형!”
뒤를 돌아다보니 슈네이드가 웃고 서 있었다. 우리는 재회를 기뻐하며 포옹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학기 말까지 잘 어울려 지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의 나에게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낯설고 무서웠던 우리 반 아이들은 가장 말 잘 듣고 순한,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그룹으로 꼽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