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아가들, 세상에 나오다
8.17.
생명은 불가항력인가?
어제 아침엔 유난히 잠이 안 왔다. 아침 여덟 시 반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자기 전부터 별이가 수상했다. 책상 밑 구석진 곳을 핥고 여기저기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그런가 하면 다 큰 자식인 모리에 기대어 가쁜 숨을 쉬며 몸을 흔들기도 하고....아기를 낳으려 저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 사십여 분쯤 졸았을까....무슨 소리에 깨어보니 이미 낳아놓은 새끼 한 마리가 내 눈앞에 뒹굴고, 이 갓난아이를 모리가 건드리고 있었다. 저쪽 구석에도 또 한 마리가 뒹굴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수건 빨러 다녀와 보니 그사이 또 한 마리가 나와 있었고,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짓말처럼 그냥 ‘쑤욱’ 나왔다.
모든 아이의 출산에 대략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아주 쉽게 나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물의 출산은 이렇게나 수월하다니!
어미 고양이는 새끼의 피 묻은 피부를 핥아주고 나서 곧 태반을 씹어먹는다. 그러고 조금 쉬었다 또 하나를 낳고 또 핥고 이런 식이다.
생각 외로 사람이 도와줄 일은 딱히 없었다. 그냥 젖은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별이는 꽤 고마워하고 있었다. 막 골골거리기까지 하면서. 새끼 낳는 걸 주인이 보거나 낳아놓은 새끼 만지는 걸 싫어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별이가 내게 보여준 건 절대 신뢰와 의존이었다. 내가 볼일 보러 문밖으로 나갈라치면, 입을 딸싹거려 '까'라는 소리를 내며 애처로이 쳐다보거나 따라 나오려 했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거다. 나를 그저 밥 주는 사람으로만 여겨온 줄 알았었는데 그 이상으로 자기 새끼들의 보호자나 산파나 보모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별이의 출산이 끝나고서야 나는 겨우 눈을 좀 붙였다. 그런데 자다 보니 별이가 새끼 두 마리를 물어다 놓고서, 자기 몸을 내 몸에 밀착시킨 가운데 젖을 물리고 있었다. 이 구도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한나절을 같은 자세로 머물러 있었다.
아직 새끼들은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경쟁적으로 젖을 빨아댄다.
다른 고양이들은 아예 내 방에 못 들어오고 있다. 어미가 문 앞에서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어서다. 별이는 집의 고양이 중에서 가장 맹수 같았던 데다가 이젠 어미이기까지 하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일기조차 적지 못했다.
고양이가 내 방에서 아기를 낳다니! 방엔 출산의 피비린내가 흘렀고, 평소와 다른 서기가 감돌았다. 이사 가더라도 이 방을 늘 기억하게 될 거다.
생명의 탄생에는 신비하고도 신령한 힘이 느껴졌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새끼라 할지라도. 엊그제만 해도, 어차피 무지하게 죽어갈 생명을 왜 모든 존재가 당연히 만들어 내나 하는 우울한 느낌에 빠져있었는데, 별이의 출산이 아주 자연스럽게 알려준 것 같은 뭔가가 있다.
지금까지도 방에 감도는 신령한 태기를 느끼며 그리고 늘 새로워지는 아침의 신선한 서기를 호흡하며 생각이 들기를.... 생명이란 본디 영원한 것이며 끊어짐 없이 완전하고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의 발현이다. 그런데 생명력을 받은 개체들로서는 아직 불완전하여 그 힘을 한 개체 내에서 완결시킬 수 없기에 피치 못하게도 죽음과 종식의 기운에 잠식되어간다. 그러나 생명 전체로 봐서는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개체를 복사해냄으로써 생명의 반대 기운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개체는 어떤 근원적인 신성한 생명력 그 자체의 발현이고, 생명의 바다를 덮어 생명력을 소멸시키려는 이상한 허무의 정체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생성되는 병사들인 것이다.
어제는 탄생이라는 사건이 왜 신비하고 그 얼마나, 이미 존재하는 나머지 생명들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는지가 대번에 와닿은 날이었다.
젖을 물려야 하는 별이에게 영양보충으로 분유를 타주러 가야겠다. 고양이용 분유는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난다. 사람이 먹는 분유 같은 맛이 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