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사랑의 심연
에밀리 브론테는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고독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사교와 문단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황량한 요크셔의 언덕과 자연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폭풍의 언덕>은 그녀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지만
단 한 권으로 문학사에 깊고도 위험한 흔적을 남겼다.
에밀리의 상상력은 온화하지 않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절제하거나 교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 증오, 집착, 복수 같은 감정을
자연의 폭풍처럼 거칠게 풀어놓는다.
이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소설과 달리
사랑을 구원의 힘이 아니라
파괴의 에너지로 그린 드문 사례다.
<폭풍의 언덕>은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와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 캐서린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거칠고 황량한 자연 속에서
서로를 유일한 세계로 삼으며 자란다.
그러나 계급과 사회적 조건은
그들의 결합을 허락하지 않는다.
캐서린은 안정을 택해
린턴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고
그 선택은 히스클리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후의 서사는
사랑이 좌절될 때
어떻게 증오와 복수로 변형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히스클리프는
사랑받지 못한 상처를
타인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되갚고
파괴는 다음 세대까지 전염된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따뜻하지 않다.
위로가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사람을 붙잡아두고
자유를 빼앗고
끝내는 삶 전체를 황폐하게 만든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는
상호 치유가 아니라
상호 잠식에 가깝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를 살게 하지는 못한다.
이 지점에서 <폭풍의 언덕>은
낭만주의 소설이 아니라
사랑의 어두운 본성을 해부한 심리소설로 읽힌다.
에밀리 브론테는
사랑이 반드시 선하다는 전제를
과감히 부정한다.
사랑은 미성숙한 자아와 결합할 때
가장 잔인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숨기지 않는다.
<폭풍의 언덕>의 사랑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를 소유하려는 집착에 가깝다.
히스클리프에게 캐서린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아의 일부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잃는 순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집착은 사랑의 과잉이 아니라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은 그런 결핍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불안정 애착의 전형이다.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가
사랑을 통제와 폭력으로 변질시킨다.
그는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상대를 파괴한다.
스피노자는
통제되지 않은 정념이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고 보았다.
히스클리프는 사랑이라는 정념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로 살아간다.
히스클리프의 집착은
순수한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계급적 배제와 사회적 모욕이
그의 사랑을 왜곡시킨다.
사랑은 개인의 감정이지만
형태는 사회가 결정한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이 치유가 아니라 집착으로 변할 때
인간과 세계를 얼마나 깊이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거칠고 정직한 문학적 증언이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