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余華) <허삼관 매혈기>

by Henry




위화는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혁명과 이념의 거대한 언어보다, 살아남아야 했던 개인의 몸과 생활에 집중한다.


위화의 문장은 잔혹한 역사를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의 작품에서 비극은 비명으로 오지 않는다. 밥 짓는 냄새처럼 조용히 스며든다.


허삼관은 가난한 노동자다.

그가 가진 유일한 자산은 건강한 몸 그리고 몸에서 뽑아낼 수 있는 피다.


결혼을 위해, 아이를 먹이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는 반복해서 피를 판다.

피를 팔고 국수를 먹는다.

피를 팔고 아이의 병을 넘긴다.

피를 팔고도 삶은 계속된다.


혁명과 정치의 소용돌이는 그의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격변은 그의 식탁과 몸을 직접 통과한다.

허삼관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다만 살아야 했던 사람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생존의 서사다.

그러나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생존을 고귀하게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삼관의 삶은 반복된다.

피를 판다. 국수를 먹는다. 다시 피를 판다.

단조로움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다.


위화는 묻는다.

“인간은 얼마나 많은 존엄을 잃고도 살아갈 수 있는가.”


허삼관은 때로 비굴하고 때로 이기적이며 때로 잔인하다.

그러나 그는 가족 앞에서 늘 책임을 진다.

그의 사랑은 숭고하지 않다.

그러나 구체적이다.


이 소설에서 몸은 노동의 도구이자 교환의 수단이며 마지막 남은 재산이다.

사상도, 명예도, 말도 사라질 때

몸만이 끝까지 남는다.


한나 아렌트의 ‘노동하는 인간(Homo Laborans)’은 허삼관의 삶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의 삶은 생산과 소모의 반복이다.

정치적 주체 이전에,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허삼관의 피는 극단적으로 상품화된 노동력이다.

자본은 그의 시간을 사지 않는다.

그의 생명 자체를 산다.


피를 판다는 행위는 생존과 자기 훼손의 경계에 서 있다.

이 소설은 묻는다.

“살기 위해 자신을 해치는 선택은 과연 선택인가.”


<허삼관 매혈기>는 위대한 혁명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텨낸 인간의 이야기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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