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오 <후흑>

by Henry




‘후흑’은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 즉 ‘뻔뻔함과 무자비함’이라는 뜻의 처세술 개념으로 중국 근대 사상가 이종오가 주창한 개념이다.


세상은 늘 이상과 도덕을 말하지만

정작 그 속에서 승리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주저함이 없는 자였다.

‘후흑(厚黑)’은 그런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한 단어다.


후(厚)는 얼굴의 두꺼움이요

흑(黑)은 마음의 검음이다.


이종오는 말한다.

“천하를 얻은 자는 모두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었다.”


그는 누구보다 세상의 위선을 꿰뚫었고

권력과 생존이 도덕보다 우선하는 현실을

슬프고도 냉철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그 말은 냉소가 아니다.

그것은 속이지 않기 위해 먼저 세상의 속임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먼저 인간의 본색을 마주하려는 용기였다.


이종오는 원래 유교적 이상을 품은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고매함보다 현실을 요구했고

그가 믿었던 도리는 무능함이라는 이름으로 조롱받았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꺾였다.

그리고 결국 꺾인 자리에서 ‘후흑’이라는 도발적인 사상을 낳았다.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정직한 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양심 있는 자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목격한 인간 군상의 민낯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면을 쓴 세상에서 맨얼굴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는 그렇게 가면을 읽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후흑학’은 자체로 하나의 현실 철학이다.

피비린내 나는 정치판, 이익이 얽힌 인간관계,

거짓된 미소 뒤에 숨은 칼날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직시하라고 말한다.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욕을 먹어도 흔들리지 않고 비난을 들어도 웃는 것이다.

마음이 검다는 것은

타인을 이용할 줄 알고 필요할 땐 버릴 줄 아는 것이다.


무자비하지만 무능하진 않다.

비정하지만 멍청하진 않다.


그는 말한다.

“유교는 사람을 바르게 하는 데 그쳤지만 후흑은 사람을 이기게 만든다.”


그 말속에는

도덕이 지배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쓸쓸한 체념과

그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담겨 있다.


‘후흑’은 어쩌면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는 도덕을 말하면서도

정작 ‘두껍고 검은 자’들이 살아남는 세상을 지켜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착한가, 아니면 단지 약한가?"


이종오는 우리에게 악을 따르라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음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이 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준비가 되었는가?”


후흑은 살아남기 위한 나약한 자의 방어술일까

아니면 승리를 위한 냉혹한 처세술일까


그 판단은

오늘도 양심과 이익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이 내릴 몫이다.


Henry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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