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눈 내리는 정적 속에 한 점의 숨소리를 듣는 듯하다. 말보다 침묵을 더 사랑했던 작가, 그는 일본 문학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섬세한 문장에 담아낸 시인이었다.
그는 화려한 서사보다 멈춤과 여백, 잃어버린 감정의 흔적들을 좇았다.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해갔지만 가와바타는 눈이 쌓이듯 느리게, 조용히 인간의 내면에 스며들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사유의 행위이자 존재의 속삭임이었다.
“나는 말의 그림자를 쫓아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을 담으려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평생 붙들고 있었다.
가와바타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성장했다. 그의 문장에는 언제나 상실의 그림자와 고독의 냄새가 스며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할 때조차 그 안에는 멀어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여행을 자주 했다.
지방 도시의 조용한 여관, 눈 덮인 산골 마을, 바람 부는 역에서 스쳐 간 사람들. 삶의 부스러기들 속에서 영원을 본 작가였다. [설국]의 무대가 되는 눈의 나라 역시, 그런 여행 중 발견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느꼈다.
아름다움이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스러지는 것 안에 있다는 것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설국]은 무너지는 사랑과 닿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고요한 풍경화이다.
도쿄에서 온 지식인 시마무라와 지방의 게이샤 고마코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사랑이라 부르기엔 서늘하고 욕망이라 하기엔 슬프다.
그들의 관계는 설국의 눈처럼 스며들고 쌓이고 결국 녹아 사라진다.
<설국>은 서사보다 정서의 결을 따라 흐른다. 한마디 말보다 유리창 너머의 풍경, 기모노의 자락, 눈 위의 발자국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가와바타는 말한다.
사랑이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 진실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다가갈 수 없는 마음’과 ‘잊히지 않는 사람’을 그린 슬픈 찬가다.
[설국]은 사랑의 결말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성이나 결혼, 영원 같은 단어를 거부한다. 오히려 사랑이란 찰나의 불빛처럼 반짝였다가 꺼지는 것, 그것이기에 더 깊고 아픈 것임을 조용히 속삭인다.
눈은 모든 것을 덮지만 결국 녹는다. 그처럼 우리 마음도
아무리 깊은 감정일지라도 언젠가는 흐르고 사라진다.
그러나 지나간 감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가진다.
<설국>은 묻는다.
“사랑은 반드시 닿아야만 하는가?”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영원이 될 수 있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관계가 빠르게 맺어지고 쉽게 끊어지는 시대
가와바타는 말한다.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것일 수 있다.”
<설국>은 이야기라기보다는 기억이다.
하얗게 덮인 풍경 속에
조용히 묻혀 있는 감정 하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 순간을 간직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