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존버헨리 Aug 14. 2024

따봉, 하이파이브 그리고 파이팅

달리다 보면, 항상 다른 러너와 마주칠 일이 생긴다.

마주치거나, 혹은 같은 방향으로 뛰거나...

내가 밤 12시, 새벽 1시에도 뛰어봤지만 분명히 누군가 만나게 되어있다. 정말 세상에 러너는 참 많다. 이렇게 러너가 많은데 현실 세계 내 주변에는 러너가 거의 없는 것도 참 신기하다.


나는 반대편에서 다른 러너분이 내쪽으로 달려오면, 유심히 그분을 관찰한다. 우선 신발, 옷 등 <다른 사람들은 뭘 입고 신고 뛸까> 궁금해서 쳐다보고, 그다음엔 그 사람의 폼을 유심히 본다. 자세말이다. 어떤 자세로 뛰는지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좀 무례한 사람같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빤히 쳐다보지는 않고 소심하게 혼자 힐끔힐끔 본다.


그러다가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따봉을 받는 경우가 있다. 러너로써의 동질감, 동료의식 그리고 힘든걸 서로 아니까 파이팅 해주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여도 달리기, 따봉 하나면 충분히 힘이 되어주고도 남는다. 나는 I형 인간이라 먼저 나서서 따봉을 날려주지는 않고, 내가 따봉을 받으면 나도 따봉으로 화답해주고는 한다.


내가 따봉을 처음 받은 건 몇 년 전 잠수교에서였다. 러닝 초보 시절이라 한창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던 시기였고, 그날은 아마도 공휴일에다가 비가 왔었다. 비가 와서 러닝을 못하는 게 아쉬워서 차를 운전해서 잠수교에 러닝을 하러 갔다. 초보 시절이라 러닝화가 하나라 우중런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고, 그날은 공휴일이라 시간은 좀 넉넉하게 있어서 운전해서 잠수교까지 갈 수 있었다. 잠수교는 그 위가  반포대교라 비가 오는 날도 비를 맞지 않고 뛸 수 있다.


비 오는 날 밤, 잠수교에서 러닝 하는 분들이 역시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아주 많지는 않았고 대여섯 명 정도 러너분들이 러닝을 하고 계셨다. 비 오는 날 잠수교 특성상 약 800m 남짓의 잠수교를 계속 왕복하는 러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속 같은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 아무튼 그렇게 뛰고 계시던 러너분들 중 혼자서 뛰시던 한 분이 나한테 따봉을 날려 주셨다. 러너 인생 처음 받아본 따봉이었다. 물론 나도 얼떨결에 따봉으로 화답을 드렸다. 따봉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은근 힘이 된다. 나한테 따봉은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들어. 따봉 받고 서로 파이팅 하자>이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후로도 왕복 러닝을 하면서 다음번에 만나면 또 따봉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다음부터는 그분도 더 이상 따봉은 하지 않으셨고, 나도 잠자코 그냥 뛰었다.


사실 말로 파이팅을 외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손바닥을 펼쳐 드는 행동은 명백하게 러닝의 자세가 아니므로 쉽게 구분이 되는데, 따봉은 그렇지 않다. 원래 러닝 자세가 계란 하나 가볍게 움켜잡듯 주먹을 쥐고, 엄지도 자연스레 어느 정도 펴져있는 상태에서, 허리에서 가슴까지 왕복으로 팔 치기를 하니까 자칫 잘못하면 그냥 뛰고 있는데 이게 따봉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래서 사실 나도 가끔은 좀 헷갈릴 때가 있다. 아, 저분이 나에게 따봉을 한 건가 아닌 건가 하고 말이다. 특히 따봉을 한 번 받고 나면 그다음번 러너를 마주칠 때 저게 따봉인가 아닌가 더욱 고민하게 된다.


따봉 외에도, 지나가는 러너분과 하이파이브도 한 번 해봤다. 하이파이브는 아직까지는 한 번뿐이다. 물론 그분이 먼저 손바닥을 먼저 나에게 내밀었고, 나도 손바닥으로 화답을 해주었다. 따봉도 따봉이지만, 하이파이브도 느낌이 나쁘지 않다. 물론 따봉이든 하이파이브든, 상대방의 반응이 없다면 부끄러움은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파이팅은 주로 대회에 나가면 많이 들을 수 있다.  다리 아래나 터널 같은 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파이팅을 외친다. 처음 마라톤 대회 나가기 전에, 너무도 긴장돼도, 설레고, 떨리는 마음에 각종 마라톤 대회 후기들을 샅샅이 찾아서 읽었는데, 여러 후기에서 터널 같이 울리는 곳에서 파이팅들을 외친다고 하는 글들을 보았다. 글로 읽었을 때는, 아 그냥 그런가 보다, 굳이 힘든데 소리 지를 힘이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대회에 나가서 뛰어보니, 에코가 빵빵한 터널에서, 다리밑에서 파이팅 외치는 게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인지, 소리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파이팅>은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든 러너에게 힘을 주는 소리가 맞을 것이다.  터널 안에서 서로에게 또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그 경험은 러너로써 참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나도 따봉이나 하이파이브를 먼저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터널에서 만큼은 나도 파이팅을 외쳐준다. 다른 러너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하는 파이팅.


그 외에도 대회 때, 반환점 돌면서 마주 오는 러너들에게 파이팅, 따봉, 하이파이브 등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러너들이 아니더라도 자원봉사자 분들, 혹은 러닝 크루에서 응원 나온 분들이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아직 따봉, 하이파이브, 파이팅을 받아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앞으로 계속 꾸준히 뛰면 된다.

언젠가는 마주치게 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옷과 신발을 제외한 각종 러닝 용품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