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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서 감기에 걸린 것인가 감기에 걸렸는데 달린 것인가

by 존버헨리

감기에 걸렸다. 어제는 열이 조금 났고, 목이 심하게 부었고, 코가 계속 나왔다. 오늘은 다행히 열도 내리고 목도 많이 가라앉았다. 아주 고열은 아니었으니, 독감은 아닌 모양이다.


와이프는 나한테 추운데 나가서 러닝 해서 감기 걸린 거라고 했다. 아주 확신하는 듯하다.

진짜 추운데 내가 나가서 뛰어서 감기에 걸린 건지, 그냥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 걸린 건지 알 수 없다. 뭔가 러닝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마땅한 증거도 논리적인 설명도 할 수가 없어서 침묵만 지켰다. 뭔가 좀 억울한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러닝을 하면 더 건강해져야 하는데 왜 나는 감기에 걸렸을까?

사실, 러닝을 하면 심폐 관련 기능이 좋아지는 것이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면역력도 좋아지는 것이지 슈퍼맨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도 감기에 걸려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운동을 해도 일시적으로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급격한 체온 변화 등으로 감기에 걸릴 수 있다.


러닝을 하기 전과 러닝을 시작한 후 나의 감기에 대해 비교를 해보면 딱히 상관관계는 없는 듯하다. 러닝을 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일 년에 세네 번은 감기에 걸리는 것 같다. 회복력은 좀 차이가 있으려나? 이것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겨울철 러닝에 관한 정보나 글들을 찾아보면,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고, 땀이 금방 마르는 기능성 옷을 입으라고 한다. 달리기를 마친 후 옷에 있는 땀을 빨리 건조해야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되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그런 논리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고, 드라이핏 소재의 레깅스와 티셔츠를 입고 뛰었습니다.


그렇다. 뭘 해도 감기에 걸릴 놈은 걸리나 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을 줄여줄 뿐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건 아닌 듯하다.


사실, 나의 감기의 원인에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다. 요즘 나의 토요일 오전 루틴이 둘째 녀석 학원에 데려다주고 아이가 학원에 있는 동안 러닝을 하는 것이다. 학원 끝날 시간에 다시 학원 앞으로 가서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오는 건데, 땀이 식은 채로 찬바람을 쌔고 집까지 10-15분 정도 걸어서 감기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두꺼운 잠바를 한 겹 더 입고 나가서 어디 벗어 놓고 뛰고, 다시 입고 오고 싶지만, 딱히 잠바를 보관할 장소도 방법도 없다. 아이보고 아빠 잠바 좀 학원에 들고 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두꺼운 잠바를 한 겹 더 입고 뛸 수도 없고 말이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좀 춥기는 했다. 나 혼자였으면 쏜살같이 뛰어가거나,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갔을 텐데, 아이는 아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아 네월아, 보도블록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얼음과 눈을 발로 깨면서 아주 아주 천천히 뒤따라왔다.


나의 심증이 만약 감기의 원인이라면, 이건 러닝 때문인 건가 아니면 러닝 후 걷다가 그런 거니까 러닝 때문이 아닌 건가? 좀 애매한 부분이다. 아무튼 나는 그 토요일 다음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하필 내가 감기에 걸린 요 며칠, 날씨가 포근해졌다. 겨울철에는 이런 영상의 날씨에 열심히 뛰어줘야 하는데, 감기 때문에 뛸 수가 없으니, 뭔가 원통하기도 하고, 괜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들어서부터 미세먼지가 심해졌다. 나는 웬만한 미세먼지에 뛰는 편이긴 한데, 수치가 100-150도 아니고 자그마치 200을 훌쩍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숫자는 진짜 보기 드문 일인데 말이다. 감기가 아니어도, 어차피 미세먼지 때문에 러닝을 못했을 거라고 머릿속으로 희망회로를 돌리며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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