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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힐 러닝 코스를 찾으신다면, 여기를 추천합니다.

by 존버헨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주말에 훌쩍훌쩍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어느덧 아이들 학원 라이드를 해주는 게 주말 일상이 되어 버렸다. 사커대디라고 해야 하나. 지난 몇 주는 토요일 오전에 둘째 녀석 수학 학원에 걸어서 데려다주고, 수업 시간 1시간 30분 동안 밖에서 러닝을 했다. 그리고 아이 픽업해서 집으로 오는 루틴...


이번 주말에는 첫째 녀석이 과천 과학관에서 수업이 있었다. 자그마치 수업은 2시간 30분. 내가 아이들 라이드 해주면 나에게 2시간 30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 이렇게 뛰기 좋은 찬스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러닝 복장을 하고 아이와 집을 나섰다.


과천 과학관은 서울 대공원 바로 코앞인데, 서울 대공원은 아이들 어렸을 적에(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뻔질나게 다니던 곳이다. 서울대공원 광장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고, 리프트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동물원까지 다니면서 <아, 여기서 러닝 하면 좋겠다,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를 과학관에 들여보내고 걸어서 서울대공원 광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코끼리 열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러닝을 시작했다. 이 날 기온이 영상 3도 정도였고 해도 쨍하니 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게다가 호숫가 경치도 너무 좋았고, 새로운 곳에서의 러닝이라 약간의 흥분 상태로 호숫가를 한 바퀴 뛰었다. 약간의 고도차가 있었지만, 완만한 경사라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바퀴 다 뛰고 나니 2km가 조금 넘는 거리가 나왔다.


<아, 10-15km 정도 뛰려고 했는데, 이러면 대체 몇 바퀴를 뛰어야 되는 거야?>


두 바퀴를 뛴 것도 아닌데 한 바퀴 뛰고 거리를 보니, 벌써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원래 나란 사람은 같은 코스를 여러 번 도는 이런 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서도 천변 말고, 인도로 내가 러닝을 즐겨하는 코스가 있는데 한 바퀴를 돌면 대략 6-7km가 나온다. 두 바퀴 돌고 싶을 때가 꽤 자주 있는데, 이상하게 같은 길을 두 번 도는 게 썩 내키지가 않는다. 물론 아주 가끔 트랙도 뛰기는 하지만, 트랙은 그냥 트랙이니까... 참고 뛸 뿐이지 나는 같은 루트를 반복해서 뛰는 게 정말 싫다.


결국 한 바퀴 반을 뛰고 동물원 둘레길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동물원 둘레길은 말 그대로 동물원 외각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인데 4.5km의 코스이고 도보로 1시간 30분 코스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 예전에 한 번 걸어서 둘레길 초입에서 몇 백 미터 정도 걷다가 다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길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났다.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나무가 숲처럼 우거져있고 차도 다니지 않는 그런 길이다. 동물원을 수없이 다녀봤던 나의 경험에 의하면 매표소 부근에서 제일 안쪽 호랑이 있는 곳까지 계속해서 업힐이었으니, 동물원 둘레길도 업힐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되었다. 하지만, 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니 일단 뛰자. 지겹게 같은 코스 뛰는 것보다는 이게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업힐은 그나마 괜찮았다. 호숫가 한 바퀴 반을 뛰고 왔으니, 아직 3-4km 정도밖에 안 뛰었으니, 체력적으로도 문제없었고, 업힐이 그렇게 가파른 것 같지도 않았다. 약간의 평지가 나온 후 다시 업힐... 그리고 또 업힐... 그리고 또또 업힐... 또또또 업힐...


아, 이게 평지가 거의 없다. 결국 몇 번째인지도 모를 업힐에서 러닝을 멈추고 걸었다. 내 기록은 소중하니까 걷는 동안 NRC앱은 잠깐 스톱을 시켰다. 다행(?)인 것은 내가 멈췄던 그 업힐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S자 코스여서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걸어 올라가면서 보니 생각보다 긴 업힐이었다. 아 밑에서 일찌감치 걷기 시작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업힐을 올라가서 NRC앱을 다시 켜고 뛰기 시작했다. 평지를 조금 뛰다가 또 업힐, 그리고 또 업힐... 그나마 내가 걸어 올라온 그 업힐이 가장 난이도가 최상이었고 그 후에 만난 업힐들은 그럭저럭 뛰어 올라갈만했다. 물론 중간중간 내리막길로 있기는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러닝 코스에서 나와 딱 한 분만 시계 반대방향으로 뛰고 있었고, 나머지 러닝하시는 분들은 모두 시계방향으로 러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뭣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뛴 건데(사실 트랙에서도 시계 반대방향이 국룰 아닌가) 다들 시계방향으로 뛰고 있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반대로 뛰면 업힐이 조금 덜 나왔을 것 같다. 내가 뛰는 방향이 업힐이 많고 다운힐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무사히 4.5km의 동물월 둘레길 러닝을 마치고 다시 코끼리 열차가 다니는 호숫가로 내려왔다. 다시 평지에서 뛰니까, 이건 뭐 천국이 따로 없다. 진짜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게 이런 것인가. 그렇게 호숫가를 한 바퀴 돌고 러닝을 마무리했다. 천국 같은 호숫가길이라 한 바퀴 더 뛸까 하다가, 둘레길에서 다리가 털려서 한 바퀴 더 뛰면, 다리 힘이 빠져서 넘어질 것만 같았다.


동물원 둘레길이 이렇게 업힐이 많은 줄 알았다면 아마 지겹더라도 호숫길만 삥글삥글 열심히 돌았을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지옥 훈련도 해보고, 평지의 소중함도 알았다. 만약에 다음에 또 뛰게 된다면, 반대방향으로 한 번 뛰어 봐야겠다.


업힐 러닝코스를 찾으신다면, 주저 말고 서울대공원으로 가시길 바란다.

꼭 시계 반대 방향으로 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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