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서 2월이다.
12월에도 월누백에 실패했고, 1월에도 월누백에 실패했다.
그동안 강추위가 있던 겨울이나 장마가 있는 여름에도 기필코 달성했던 월누백을 두 달 연속으로 실패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년 넘게 잘 지켜오던 루틴이었는데 말이다.
12월에는 월초에 셋째 녀석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고, 월말에는 온 가족이 스키장에 2박 3일 다녀왔다. 러너답게 일본에 갈 때도, 스키장에 갈 때도 러닝복과 러닝화를 야심 차게 챙겨갔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번의 여행에서 단 한 번도 러닝을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혼자 호텔방에 두고 나갈 수가 없어서 러닝을 못했고, 스키장에서는 생각보다 뛸만한 평지도 없었고 춥기도 너무 추웠다. 2박 3일 내내 영하 10도 이하였던 것 같다. 물론 스키복을 입고 있을 때는 추위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리프트를 타고 있을 때는 정말 온몸이 달달 떨릴 정도로 추웠다. 최상급자 코스 맨 꼭대기에 갔을 때는 전광판에 영하 16도라는 글자까지 봤다.
사실 12월은 중순이 넘어가면서부터 월누백이 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12월 초부터 중순까지 달린 기록과 앞으로 남은 날짜 그리고 평소 내가 뛰는 거리, 횟수 등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5km, 10km 정도만 월누백에 모자랐다면 여차저차 악착같이 스키장에서도 뛰었을지도 모르겠다. 12월의 나의 누적 마일리지는 결국 61.8km였다. 그래, 어쩌다 한 번쯤 그럴 수 있지.
1월에 다시 월누백을 달성하기 위해 1월 1일부터 열심히 달렸고, 강추위에도, 눈이 오는 날도 열심히 달렸다. 물론 추워서 길게는 많이 못 뛰고 짧게 짧게 뛰기는 했지만, 나의 온 신경은 월누백을 향해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마일리지를 쌓아나갔고, 1월 27일까지 85km의 마일리지를 쌓았다. 1월은 31일까지 있으니, 남은 4일 동안 한 번 혹은 두 번만 더 뛰면 무난하게 월누백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구정 연휴 중인 28일에 와이프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와이프의 친할머니는 몇 년 전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지는 장인장모님과 함께 살았고, 물론 와이프와 처제랑도 쭉 같이 살았던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게다가 자식이 장인어른과 고모 딱 두 명인 데다가, 장인어른은 딸만 둘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내가 장인어른을 도와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워낙 연세가 많으셨기에, 큰 혼란이나 동요는 없었고, 슬픈 와중에 장례식은 잘 마쳤다.
1월엔 무난하게 월누백을 달성할 줄 알았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12월에 월누백에 실패했을 때는 뭔가 많이 아쉽고 짜증(?)도 나고 그랬는데 1월에도 월누백에 실패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 달에 꼭 월누백을 해야겠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줄었다. 사실 99km를 뛰나 100km를 뛰나 뭔 차이가 있겠는가. 그냥 자기만족일 뿐이다.
장례를 치르고, 생각보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정신적으로도 뭔가 계속 붕 뜬 느낌이었다. 금요일에 장례를 마치고 달릴 엄두를 못 내다가 어제 일요일에 드디어 다시 러닝을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뛰면서 좀 머리를 리프레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2월의 첫 러닝으로 10km를 뛰었다. 2월에는 월누백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달성하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월누백 다시 꼭 채워야겠다는 오기는 아직 조금 남아있다. 근데 하필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다. 그럴 땐 목표를 100km를 잡는 게 아니라 160km로 잡으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2월 20일쯤엔 100km를 달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