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는데, 강추위가 물러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추운 날씨에 폭설까지 내렸고, 영하 10도의 날씨가 며칠 지나다 보니 이제 영하 5도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난주에는 눈길을 한 번 달렸다. 말 그대로 영하 3도 정도의 비교적 따뜻한(?) 기온이었고, 눈이 온 다음 날이어서 인도에 어느 정도 눈이 치워져 있었다. 사람이 다닐 만큼의 너비는 비교적 다닐만했고, 너무 반질반질한 아이싱구간은 차라리 눈이 소복이 쌓인 곳을 밟으며 러닝을 했다.
사실 뛰면서 두 번 정도 미끄러질 뻔했는데,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나름 페이스를 줄이고 케이던스는 짧게 짧게 요령껏 뛰었다. 그냥 눈길을 즐기자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눈이 쌓인 밤길을 뛰는 일은 꽤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나의 귀에는 취향에 맞는 노래가 에어팟을 통해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러너는 경험해보지 못할 그런 광경일 것이다. 얼마나 럭키비키한가. 눈 위를 밟을 때 느껴지는 뽀드득한 그 감촉은 정말 낭만 그 자체다. 비록 솔이 두꺼운 러닝화를 신고 있지만 온전히 내 몸에 그 느낌이 전달되고, 비록 음악을 듣고 있지만 뽀드득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할 정도다.
눈길을 뛸 때는 나름 나만의 요령이 있다. 일단 동쪽, 서쪽방향으로 뛸 때는 남쪽에 위치한 인도보다 북쪽에 위치한 인도로 뛰는 편인데, 남쪽의 인도는 건물에 가려서 눈이 안 녹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쪽 인도 쪽이 훨씬 눈이 빨리 녹는다. 그리고, 노란색 오돌토돌한 시각장애인용 노란색 보도블록을 조심해야 한다. 예전에는 시멘트 재질로 되어 있는 블록만 있었지만, 요즘은 우레탄 같은 재질로 된 블록도 있는데, 이게 좀 미끄러운 편이다. 그리고 횡단보도의 하얀색 부분도 미끄러운 편이라 조심해야 한다. 나도 처음엔 몰랐으나 몇 번 미끄러질 뻔 한 값진 경험을 통해 몸소 터득한 요령이다.
그날 러닝을 하면서, 반대편에서 뛰어오고 있는 러너를 한 분 만났다. 오밤중에 눈밭을 뛰고 있던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안 그래도 추운 겨울철에는 뛰다가 러너분들을 만나면 괜한 내적 동질감과 친밀감이 느껴지는데, 눈밭을 뛰던 그날은 더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물론 각종 SNS에 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뛰는 러너들은 매우 많지만, 현실 세계에서, 내가 뛰는 동네에, 내가 뛰는 그 시간에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비 오는 날 트랙에서 러닝 할 때도, 비 맞고 뛰는 러너분이 나 말고도 한 분 더 있어서 매우 매우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요즘 나의 러닝 용품 위시리스트가 있는데 그건 바로 트레일 러닝화이다.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 후 트레일 러닝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에 트레일 러닝화를 겸사겸사 신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눈, 비가 오는 날은 헌 러닝화를 신는데, 헌 러닝화는 말 그대로 '헌'러닝화이기 때문에 아웃솔 바닥이 닳아서 좀 위험하다. 그래도 궂은날에 애지중지하는 새 러닝화를 신고 뛰기에는 썩 마음에 내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관심을 가지고 트레일 러닝화를 보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컬러와 디자인은 품절이거나 사이즈가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컬러는 사이즈가 있는데, 딱히 세일도 안 하고 제 돈 주고 사기에는 적지 않은 돈이라 계속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올겨울에 설런을 하는 날이 또 올까?
그전에 트레일 러닝화를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