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에 러닝 하다가 군인들을 봤다. 러닝 하면서, 한강에서 낚시하는 사람, 천변 산책로 자전거길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사람은 봤어도 군인은 아마 처음 본 것 같다. 동네 천변 산책로였는데, 완전 군장에 총까지 메고, 화이바를 쓴 군인들이 한 줄로 열댓 명씩 무리를 지어서, 100여 명 정도가 행군을 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군부대가 없는데 저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마도 인근 과천이나 남태령 쪽에서 양재천을 따라 행군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까마득하게 오래된 나의 군대시절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아, 맞다 나도 군대 갔다 왔지. 이제는 예비군도, 민방위도 끝난 지도 한참되었으니, 정말 오래되긴 했다. 사실, 나는 군대에서 1호차 운전병이었다. 군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을 하자면 그 부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타는 차가 1호차이고 나는 그분의 운전병이었던 것이다. 시쳇말로 땡보(편한 보직)로 불리지만, 나름대로의 애로사항도 있고, 보통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스타급이나 사단장, 연대장이 타는 그런 1호차는 아니었다. 대대급의 1호차였으니, 대대장이 타는 1호차였다.
그리고 나는 좀 꼬인 군번이었는데 수송부 내무반 30여 명 중에 막내 생활을 일병 5호봉까지 했으며, 1호차 운전병이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내 밑으로 두 달 후임이 들어왔는데, 이 녀석은 굴삭기 운전병이라는 아주 특수한 보직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수송부에 오자마자 다른 부대로 장기 파견을 나갔다. 그 후 다음 후임은 7개월 후에나 들어왔다. 군기가 세다고 소문난 수송부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내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내가 1호차 운전병이 되었다. 사실, 1호차 운전병이 말년 병장이었고 그 후임으로 내 3개월 선임이 내정이 되었는데, 그 선임이 1호차 운전 연수를 하다가 2번이나 접촉 사고를 내는 바람에 내가 1호차 운전병이 되었다. 더 자세하게는 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인생역전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모시게 된 대대장 그 대대장님은 매일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내가 달리기에 별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 연병장에 나가서 뛰시면 뛰나 보다, 그런가 보다 했지, 그분이 얼마나 빨리 뛰는지, 몇 km나 뛰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그때는 스마트 워치도 없었을 텐데, 본인은 페이스와 거리를 알고 뛰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담배는 하루 한 갑(에쎄를 폈다)을 피우면서 꼬박꼬박 퇴근 전에 연병장에 나가서 러닝을 했다. 러닝 하러 가면서 나에게, 30분 후 혹은 40분 후에 차 끌고 연병장으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럼, 러닝을 마치고 바로 퇴근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양군에서 하는 무슨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군부대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가 아니라 아마 양양군에서 주최하는 대회였는데, 지역 특성상 군인들도 많이 참여를 했다. 우리 부대에서도 사병들 몇 명, 간부 몇 명 그리고 대대장님까지 그 대회에 출전을 했다. 그뿐 아니라 주변 대학교의 체대생들과 지역 주민들도 참가했다. 사실, 비율로 따지면 군인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대회가 몇 km를 뛰는 대회였는지도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대대장님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20위 정도의 순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대에서 나간 사람 중에서는 1등이었다. 아니 젊은 대학생들도 있고, 훨씬 어린 장교, 사병들도 있는데 40대 초반에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는 사람이 대회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다니, 좀 깜짝 놀랐다. 아무리 군인이어도, 중령쯤 되면 배 나온 사람들도 많고 운동 안 하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 대대장님이 잘 뛰는 사람이었구나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대대장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아, 담배 많이 펴도 러닝을 잘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40대 초반의 대대장님이 나이가 꽤 많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40대 초반이면 여전히 젊은 나이고 충분이 잘 뛸 수 있는 나이다. 내 나이의 곱절이 많았으니, 당연히 아주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내가 1호차 운전병이었지만, 나도 군대에서 행군을 여러 번 했다. 1호차 운전병이 되기 전에 유격훈련을 갈 때 20km 행군을 했고, 1호차 운전병이 된 후에도, 대대장님이 행군은 꼭 해야 한다며, 훈련에 오고 갈 때 두 번 중 한 번은 행군을 하게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20km 행군이었던 것 같다. 사실 1호차 운전병으로써, 행군하는 무리들을 아주 느린 속도로 운전하면서 몇 시간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1호차는 자동 변속기도 아니고 수동 변속기에, 당연히 크루즈 기능도 없다.
내가 모시고 있던 우리 대대장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아직 담배를 피우고 계실지, 여전히 러닝을 꾸준히 하고 계실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