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너무 추운 요즘이다. 낮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던 지난 며칠은 정말, 러닝이 아니어도 문 열고 밖에 나가기만 해도 욕이 절로 나올 만큼 추웠다. 좀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추워지는 이 겨울 날씨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에 영하 3도, 영하 8도에서 러닝을 한 번 해 보았다. 원래 영하로 내려갈 정도면 러닝을 안 하던가, 지하주차장에서 뛰던가 했을 텐데, 연말에 선물 받은 패딩러닝재킷, 넥워머, 비니가 있으니 용기를 내서 밤기온 영하 3도에 밖에 나가봤다. 그래 뛰는 데까지 뛰다가 추우면 뛰다가 그냥 들어오면 되지 뭐..
넥워머는 처음 착용하고 뛰는 건데, 입이랑 코 부분까지 가려줘서 정말 영하 3도가 맞는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다만 숨을 쉴 때마다 넥워머의 재질이 입술이 붙었다 떼어졌다가 하고, 침까지 젖는 느낌이라 조금은 불편했다. 그래도 찬바람을 얼굴로 쌩으로 맞고 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하고, 옷도 장비도 중무장을 하고 나와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역시 러닝은 장비빨이었던 건지, 중무장을 하니 추위도 어느 정도 견뎌지는구나...
영하 3도 러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주말 아침엔 영하 8도에 러닝을 하러 나가 봤다. 영하 8도지만, 지난번과 밤러닝 아니고 아침러닝이니 해가 있어서 그렇게 안 추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없는 영하 3도나 해가 떠 있는 영하 8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다행히 그날 날씨는 맑음이었고 내가 뛰러 나간 시간은 오전 10시로 점점 기온이 올라올 그런 시점이었다.
영하 8도에 뛰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아, 뛸만한데??>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영하 3도 밤러닝과 같은 복장과 용품으로 중무장을 하고 나갔고(사실 더 중무장할 옷도 용품도 없다), 역시나 해가 있어서 그런지 기온은 더 낫지만 덜 추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1시간을 뛰면서 바람이 정말 거짓말처럼 한 번도 불지 않았다. 심지어 2km 정도 뛴 후에는 입과 코를 가리고 있던 넥워머도 내리고 뛰었다. 영하 8도의 러닝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영하의 날씨에 몇 번 뛰어보니, 추위는 역시 기온보다는 바람의 영향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강하면, 특히 맞바람이 불면 추위가 느껴진다. 반환점을 돌면 등 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야속하게 내가 반환점을 돌면, 바람도 방향을 바꾸기 일쑤다. 일기예보상으로 바람의 세기를 어느 정도 어림잡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바람이란 게 국지적인 면이 있어서 내가 뛰는 장소의 바람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뭐 어쩌겠는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안 불면 안 부는 대로 뛰는 수밖에... 우스갯소리로, 추운 날 진짜 러너는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뛰지?>라고 생각하고 가짜 러너는 <추운데 뛸까 말까>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그냥 뛰는 거다. 너도 춥고 나도 춥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게 덜 춥다.
사실 기온이니, 체감온도니 하는 것은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추위가 아니라 숫자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영하 3도 러닝 그다음 영하 8도 러닝.... 한 번 해보니, 이제 그 정도 기온에 또 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영하 15도 정도 되는 날 한 번 뛰고 나면, 웬만한 영하의 날씨는 또 따뜻하게 느껴져서 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추워도 뛰고 나면 <아 추운데 괜히 뛰었네>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물론 추위가 아니어도 모든 러닝이 그렇지만 말이다.
지난 토요일 오전, 영하 8도의 날씨에도 천변에 러닝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다. 내가 평소 뛰는 시간대가 아니라서 평소보다 적은 건지, 아닌지는 분간이 잘 안 되지만, 아무튼 그 추위에도 뛰는 분들을 꽤 많이 보였다.
추위에 겁먹지 말자.
뛰면 된다.
너무 추우면 다시 들어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