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것들 (박노대)
우리는 지금 유례없는 불안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와 국내의 갈등 상황은 개인의 심리적 기저에 가시 돋친 긴장을 심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라는 비인간 지능의 도래는 인간 존재의 근간을 뒤흔들며 모호한 두려움을 양산합니다.
어떤 이들은 기술의 파고에서 멀리 떨어져 평온을 유지할지 모르나, 오히려 그 무감각한 평온함이야말로 시대의 위기를 망각한 더 큰 불안의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즉, 보이지 않기에 더 위협적인 불안의 실체를 포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진그룹 다양해 기획전 ‘멀티-코드(Multi-code)’에서 선보인 작품 <부유하는 것들(Floating things)>은 보는 이들의 감각을 서늘하게 자극합니다. 화면을 지배하는 짙은 녹색 커튼과 테이블보는 기묘한 정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위로 놓인 붉은 고기와 적포도주는 날 선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육식 소비 문화가 초래한 환경 파괴의 이면을 감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상징인 녹색은 여기서 ‘녹조’의 이미지와 연결되며 죽음의 징후로 변모합니다. 술잔의 붉은 액체는 시각적으로 피(血)와 중첩되어, 화려한 축제의 현장을 잔인한 살육의 제단으로 감정을 전달시킵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만찬이 실상은 파괴된 자연의 잔해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작품 한편에 배치된 메리골드 꽃은 이중적인 상징을 품고 있습니다. 꽃말에 담긴 ‘이별의 슬픔’이라는 그림자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빛의 의미가 공존합니다. 이는 윤정은의 소설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에서 묘사된 치유의 장소성과 깊이 연결됩니다. 사진관은 아픈 기억을 인화하고 정화하는 회복의 공간입니다.
작품 <부유하는 것들> 속 포트레이트처럼 식탁 앞에 경직되어 앉아 있는 남녀는 현대인의 상처를 사진적 특성을 통해 기록하고 치유하려는 모습입니다. 이는 과거의 파괴를 인지하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는 2025년 말 발표된 영상 작품 속 아이의 울음소리가 웃음소리로 변해가는 과정과 맞닿으며, 절망 끝에서 갈구하는 희망의 서사를 완성합니다.
작업의 과정에서 불완전한 인공지능 기술을 창작의 매개로 삼았습니다. 기업들이 약속하는 기술적 풍요는 달콤한 ‘플러팅(Flirting)’과 같지만, 기저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잠식하고 있습니다.
제작의 과정은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비인간 종족’과의 지루한 문답을 통해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수백 번의 질문 끝에 얻어낸 불완전한 결과물은 그 자체로 현대 사회의 불안을 시각화합니다. 이는 인간의 노동과 기술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창작 방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도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진 매체의 숙명적 한계를 기꺼이 수용하며 창작의 영역을 확장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며, 보이지 않는 본질을 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삶의 근본을 흔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청호의 수면 위를 부유하는 녹조를 보며 생명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인간의 번영은 자연의 고통이 부유하는 현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심리적 불안에서 환경문제까지, 수면 아래 감춰진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우리에게 직시하도록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스는 1787년 한 공장의 유리창에 “더 지혜로워지려고 이 공장을 보러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지옥에 가서 놀라지 않으려는 것뿐”이라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이 전시는 우리 시대가 마주한 불안이라는 지옥을 미리 응시하는 고통스러운 행위입니다. 하지만 불안은 때로 신세계를 향한 항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항해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돛을 올린 이상 바람의 방향에 따라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방향타를 잡은 선장의 의지입니다. 전시를 통해 우리는 다가올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경악하지 않을 내면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의 기존 콘텐츠를 활용하여 유사한 콘텐츠를 새로 만들어내는 인공지능(AI) 기술. 작가는 <부유하는 것들> 영상을 제작하기 위하여 다수의 AI기술을 접목시켜 공개했다.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윤정은 저, 북로망스 출판,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