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가 좋아요? 조화가 좋아요?

by 허훈

이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잠시 멈칫하게 된다.


생화(生花)는 그 이름처럼 살아있는 꽃이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꽃잎, 코끝을 간질이는 싱그러운 향, 그리고 숨 쉬는 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생명력.


그러나 생화에게는 얄궂은 운명이 있다.

필연적으로 시들고, 색을 잃고,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덧없음이다.

마치 우리네 삶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이미 쇠퇴의 그림자를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반면 조화(造花)는 완벽하다.

플라스틱이나 비단으로 정교하게 빚어진 그 모습은 생화보다 더 생화 같을 때도 있다.

변치 않는 색과 모양, 꺾이지 않는 줄기는 마치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을 박제해 놓은 듯하다.

조화는 시들지 않기에 슬픔을 주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처음처럼 화려하고 견고하게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화처럼 살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젊고, 변함없이 아름다우며,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함.

늙어감, 쇠퇴, 소멸로부터 자유로운 삶.

그러나 우리의 삶은 조화가 아닌, 지독한 생화의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

‘시들어가고 늙어 가지만’이라는 문장은 우리 생화 인생의 가장 정직하고 슬픈 고백이다.

거울 속 늘어가는 주름, 쉬이 지치는 몸,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


시간은 우리에게 생화의 운명을 뼛속 깊이 각인시킨다.

꽃잎은 얇아지고 향기는 희미해지며, 화려했던 색은 바래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이 자연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생화의 진짜 아름다움은 바로 그 시들어감 속에 깃들어 있다.

조화는 영원하지만,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생명의 온기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조화는 그저 완벽하게 만들어진 물건일 뿐이다.


생화는 다르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질 것을 알기에, 온 힘을 다해 그 하루를 피워낸다.

햇살을 향해 가장 찬란한 빛깔을 뿜어내고, 지나가는 벌과 나비를 위해 가장 짙은 향기를 내어준다. 그 짧은 생의 유한함이 오히려 그 순간의 존재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시간이 돌아오지 않을 귀한 시간임을 깨닫게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다가, 문득 오늘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생화의 하루일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래도 오늘 하루를 보석처럼 빛나게 멋지게 살아가요’라고 다짐한다.

이 다짐은 조화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절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화만이 가질 수 있는 유한함 속의 찬란함에서 비롯된다.

오늘 내 얼굴에 새로 생긴 잔주름은 지난 세월의 햇빛을 정직하게 맞았다는 증거다.

오늘 느껴지는 작은 통증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는 생명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시든 꽃잎처럼 연약해졌지만, 그 연약함이 어제의 나를 뛰어넘어 오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우리는 조화의 영원을 부러워하기보다, 생화의 순간을 찬양해야 한다.

시든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소중하게 간직하는 이 생화의 삶이야말로 가장 멋지고 빛나는 인생의 방식이다.

내일 또 한 잎이 떨어지더라도, 오늘은 온전히 나의 꽃으로 만개할 것이다.

시들지 않는 완벽함 대신, 시들기에 아름다운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는 생화 인생,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축복이자,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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