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31 WORKERS

배운대로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31 WORKERS: (11) 예비아빠 30대 은행원 다니엘

by 브루스

솔선수범, 남을 도우며 살아라, 배려하며 살아라 같은 인생의 가치판단 기준은 보통 어린 시절 배우게 된다. 하지만 직장 생활 연수가 올라가고, 나이가 먹을 수록 어렸을 때 배운 대로 살아가는게 가장 어렵다. 오늘 만날 분은 은행원 5년차 다니엘씨다. 회사 내 팀장님처럼 회사에서는 솔선수범하고 인품 좋은 선배가 되고 싶고, 올해 말 태어날 아이에게는 좋은 영향력을 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다니엘씨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2살 부산에 거주하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인터뷰 답변이 늦어졌다간 브루스에게 손절당할 것 같아 황금 주말에 노트북 앞에 부랴부랴 앉았습니다. 브루스와는 어느새 12년 지기가 되었네요 (웃음)


Q2.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국내 모 시중은행에서 Corporate Financing(기업금융), Import/Export Financing(수출입금융), 그리고 가장 관심있는 Small Business Financing(소상공인금융) 등을 주 업무로 다루고 있는 5년차 은행원입니다.


간략히 설명 드리면 국내 외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돈’을, 자금용도에 따라(운전자금/시설자금/수출입자금/개업자금 등) 빌려 줄수있는지 분석하고 심사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은행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재무제표 등의 서면 자료, 현장 실사, 대면인터뷰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기업의 신용도 및 현금흐름을 분석하는 것인데요. 왜냐면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특정 기업에게 어느 정도의 금액과 금리로 어떤 조건(담보, 연대보증, 상환조건 등)으로 대여할지 심사하는 일을 해야하기 떄문이죠.


우리가 쉽게 창구에서 만날 수 있는 은행원은 아니신거네요. 그럼 보통 기업의 높은 분들을 많이 만나시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기업의 자금을 총괄하는 재무담당 임원이나 대표님들이 주 고객이다보니,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더 조심해야 될 부분도 많고, 항상 VIP 손님들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일해야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요즘 머리가 많이 빠지고 있죠.


Q3. 왜 이 일을 선택하셨나요?


저는 대학시절 직업 선택을 위해 크게 3가지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1) 그 분야에 '1티어'가 될 자신있나?


저는 대학교에서 경제학/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사 과정 중 학문적인 지식을 쌓기도 했지만, 가장 큰 경쟁력은 목적에 맞는 자료를 서칭하고 분석하여 글을 쓰고, 독자를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이었습니다.


특히나 재무적인 자료들(재무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감사보고서 등) 속에 있는 수치 이면의 의미를 찾고 기업의 영업/재무 상황을 분석하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습니다.


제가 20대 내내 키워온 이 능력이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은행원, 특히 Corporate Financing 분야라는 판단이 들어 은행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1티어가 되진 못했지만요 (웃음)


2) 급여, 복지가 '1티어' 인가?


급여, 복지는 월급으로 연명하는 소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두말할 것 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3) 내 이름 뜻대로 살 수 있는 일인가?


제 본명은 ‘은혜롭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라’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름 뜻대로 산다’ 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진부하고 코웃음을 살만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에겐 삶의 방향을 이끌어준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항상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구요.


그렇기에 소상공인들의 사업 초기 어려움을 이해하고 전반적인 금융 컨설팅을 하는 일, 수출입을 처음 시작하는 중소기업의 교역 조건을 컨설팅하고 수출환어음 매입을 통해 현금 흐름을 제공하는 일들은 제 가슴을 뛰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현업에서도 그런 부분들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고요.



Q4. 이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나요?


제가 취업할 당시에는 각종 금융, IT, 어학 자격증 보유 여부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자소서에 경험을 서술하는 항목이 6 ~ 7개나 되었기 때문에 각종 대외활동, 인턴, 공모전 등의 경험을 하고 그 경험과 직무를 관련지어 서술하는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최종합격까지 3 ~ 4번의 면접[PT 면접, 다대일 토론면접,실무진 면접 등등]이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면접 스터디를 통해 준비한 답변을 진정성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요즘 은행은 제가 입사할 때와 상황이 많이 바뀌어 금융회사이기 보다 ‘IT 회사’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관계사에 IT 회사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행원 전체를 대상으로 코딩 교육을 하기도 하고 카이스트에 일부 직원들을 장기 파견하여 디지털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카카오뱅크가 상장 즉시 시총 11위라는 기염을 토한 것도 이런 변화의 결과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입행을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자소서 작성시에도 면접시에도 ‘XX은행이 리딩 IT금융회사가 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실제로 은행을 방문해서 금융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1년에 1건이 될까 말까 인것 같아요. 핀테크라고 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 현직자로 계시는 건데, 현직자가 느끼는 변화의 폭은 더 큰가요?


현직에 있으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내점 손님이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카카오뱅크, 토스 등 IT회사의 플랫폼이 워낙 편리하다 보니 수신 창구[개인손님]의 손님 감소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업, 수출입 분야는 인터넷/모바일 환경에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내점 손님 감소 → 지점 통폐합 → 직원 수 감소’의 흐름은 시대가 요구하는 불가피한 흐름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나 휴대폰이 대체할 수 없는 기업금융 Career Path를 선택한 것이 개인적으론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Q5. 일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을 하나씩 소개해주세요.


4~5년간 현업에 있었지만, 입행을 준비했을 때 상상했던 것처럼 가슴 따뜻하고 웅장한 에피소드 따위는 잘 생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해보자면 첫 지점인 김해지점에서 저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 주말할 것 없이 업무 관련된 자격증들을 따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입행 1년 안에 기업신용분석, 파생상품[선물, 옵션], 개인재무관리, 수출입 관련 자격증들을 충분히 취득했고, 결과적으로 낮은 연차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지역에서 가장 큰 XX지점 기업금융팀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은 전국적으로 악명 높은 본부장님, 지점장님이 계신 곳이라 곳곳에서 정말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도 참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본부장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김대리가 XX지점에서 연차는 제일 낮은데 가만 보면 업무 지식이나 일하는 방식은 제일 고참 같다?” 라고 하시는겁니다.


전국적으로 악명 높은 분께서 저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셨던 것 자체도 감동이었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던 은행 업무를 이겨보겟다고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던 순간들이 인정받은 것 같아 스스로 뿌듯했고 진심으로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XX지점에서 제일 일 많이 하는 일대리가 되어버렸지만요 (웃음)


은행일이 사실 저랑 너무 잘 맞는 편이라서, 기억에 남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은행원의 일이라는게 아무래도 ‘돈’이 오가는 일이고, 은행 내규뿐 아니라 민법, 상법, 외국환거래법, URDG, UCP600 등 다양한 법률을 근거로 하루에도 수많은 ‘판단’을 해야만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실수가 민원으로 이어진다던지, 금전적인 배상을 해야된다던지, 지점 경영평가에 감점이 된다던지 하는 일이 생기면 밤잠을 못이루기도 합니다.


저희도 업무상 프로젝트 결산을 할 때 금액이 안맞으면 정신이 없거든요. 하물며 더 큰 규모의 돈을 만지는데, 숫자가 틀리거나 하면 정말 긴장될 것 같아요. 숫자가 계속 안맞으면 퇴근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네 그렇죠. 특히 환율이 개입되는 부분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곤 하는데요. 기업들이 외화를 매각[환전]하려면 사전에 환율을 FIX 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예를 들어 손님이 미화 천만불 ‘매도’를 하시겟다고 하셧는데, 은행직원이 실수로 ‘매입’으로 환율을 FIX한 경우, 환율이 그 사이에 3원이 하락했다고 하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3원 * 1000만 = 3,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죠? 은행원은 매일매일을 그런 중압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날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연히 퇴근은 못하고요.


Q6. 일을 하는데 있어서 본인의 롤모델은?


제 롤모델은 저희 지점에 같은 팀 팀장님입니다. 저희 팀장님은 41살의 나이에 초고속으로 부지점까지 올라간 분인데, 업무적으로는 비교 상대가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부분은 소위 말하는 '꼰대'같은 마인드가 눈꼽만큼도 없고 인품이 너무 좋다는 겁니다.


작은 결정에도 막내의 의견은 어떤지 먼저 물어주시는가 하면, 본인 일이 지점에서 가장 바쁜데도 불구하고 다른 직원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보이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도와주고 진심으로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줄줄 쓰고 보니 ‘솔선수범’하고 ‘인품’이 좋다는 얘기인데, 직장생활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힘든건지 다들 이해 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팀장님처럼 제 시간과 노력을 조금 더 쓰더라도, 동료 직원들의 어려움을 분담하고 위로해줄 줄 아는 사려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초등학교 때 배운게 제일 어렵습니다.


네 저도 공감합니다. 초등학교때 배운게 가장 어려워요. 그럼 본인은 후배들에게 그렇게 대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어요? 금융권은 워낙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최근에 MZ세대의 등장이다 하면서 세대간 생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많은 곳일 것 같아요.


제가 만난 MZ세대 후배들은 본인의 업무 영역 밖의 ‘당연한 희생’을 강요 받을 시, 주저하지 않고 반대 생각을 피력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가 팀장이든 지점장이든 예외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금고가 열리면 선배들의 개인 시재통을 후배가 챙겨서 배부하는 일, 저녁 메뉴를 시키는 일, 퇴근할 때 에어컨을 끄는 일 등은 구태의연하고 암묵적으로 후배들에게 강요되고 있던 악습입니다.


제가 막내일 때는 MZ세대들처럼 속으로 쌓인 불만들을 차마 얘기는 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부조리한 일들을 해왔다면, 저는 요즘 제가 먼저 나서서 후배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저런 일들을 대신해주고 생색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젊꼰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참 별거 아니지만 그것이 MZ세대 후배들을 위해 하고 있는 작은 노력인 것 같습니다.


Q7. 일을 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입행 초기에는 무슨 업무든 한발 빠르게 습득하고 정확하게 실수 없이 일하는 것, 일 잘하고 인품 좋은 직원으로 인정 받는 것 따위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4~5년이 지나며 드는 생각은 능동적으로 일하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만큼이나, 퇴근 후의 삶이 침해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6시에 퇴근하고 와이프와 편안하고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 취미 생활을 하며 행복에 젖을 여유를 항시 확보하는 것. 이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저는 회사에서 정시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출 것이고, 업무 시간에 그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하려 노력합니다. 사실 은행 업무에 대한 진지하고 거창한 자세를 얼마든지 논할 수 있지만, 지금의 저에겐 이것이 가장 솔직한 답변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일하면서 느끼는 건데,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 취미가 있는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다니엘님의 취미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저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듣는 것도 너무 행복하지만 요즘은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거의 미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 6시가 되면 회사를 박차고 나와 칼같이 집에 달려와서 집안일 한번 쫙~하고, 스탠드에 놓인 기타를 턱하니 드는 순간, 저는 세상 행복한 방구석 기타리스트로 변신합니다. 아직 누군가에게 들려줄만한 실력은 못되지만, 뭐 어떻습니까. 돈받고 하는일도 아니잖아요 ;-)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 ‘기타치는은행원’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웃음)



Q8. 현재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저는 올해 결혼한지 3년, 임신 8개월 차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올해 10월이면 저희 가정에 첫번째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좋은 아빠’가 어떤 걸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라날 때 부모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 서로의 대화를 경청해주는 모습, 갈등이 생겼을 때 지혜롭고 따듯하게 해결하는 모습, 가족 외 타인을 대하는 모습,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 직업을 대하는 자세 등 수없이 많은 부분을 보고 영향을 받게 될텐데, 우리 아이에게 정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Q9. 5년 뒤 본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5년 뒤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사진도 찍고 세상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저 혼자만 계획하고 있어서 어떻게 될진 모르겠네요ㅎㅎ


Q10. 본인에게 일이란?


저에게 일이란 일상의 행복을 위한 ‘거름’과 같습니다. 안정적인 고용을 누리고 있는 것, 때 되면 따박따박 소정의 급여가 입금된다는 것. 참 별 것 아닌 그것이 우리 가족의 행복에 아주 큰 ‘거름’이 되어 주고 있고, 경제적인 걱정없이 편안하게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믿을 구석’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쓰고 보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다 XX은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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