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WORKERS (12) 일에서 재미를 찾는 디자이너 C와의 대화
얼마 전 동료와의 대화에서 일에서 재미를 찾는 건 사치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나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일에서 찾을 수 없는 재미와 성취감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늘 만나볼 C씨는 일에서 내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이왕이면 재밌게 하고 싶어한다. 돈도 벌고 간혹 재미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디자이너 C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이 재밌어 보여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그래픽 디자이너 C입니다. 일을 시작한지는 3년차가 되었습니다.
Q2.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디지털 사이니지를 파는 중소기업의 컨텐츠 제작팀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주얼 디자이너와 모션그래퍼가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디자인팀이 전체적인 구도와 배치, 색감 등을 디자인한 후 모션팀이 오브젝트에 생동감을 주는 모션을 입혀주어 컨텐츠를 완성합니다. 사이니지 특성상 주로 식음료 사업장에 게시될 메뉴보드나 홍보물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사이니지라고 하면 호텔이나 백화점에 있는 디지털 광고가 나오는 전광판 같은거 말씀하시는거죠?
네. 저희는 주로 메뉴보드 쪽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Q3. 왜 이 일을 선택하셨나요?
저는 성향 자체가 미래를 고심하며 진로를 결정하는 성향이 아니라서 학부생 시절부터 디자인 공부가 단순히 재밌어서 선택했어요. 공부 하다 보니 외주 요청을 받기도 하고, 고객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 작업물이 그들을 만족시켜서 쓰여진다는 것 자체가 보람 있었어요. 보기 좋다, 곧 내 디자인이 예쁘다는 그 말이 저는 이 일을 선택했던 계기였고, 지금도 이 일을 이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Q4. 이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나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연장 사용 능력입니다. 이 둘은 제작에 필수적인 툴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툴이에요. 회사마다 주로 사용하는 툴이 포토샵이 될 수도 있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도 있지만, 이 두 가지 툴 모두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생각해요.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로 사용하는 툴이 더 빨라지고 더 능숙해지게 됩니다만, 준비 과정에는 둘 다 이해를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업무 시에 파일을 호환하면서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툴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고, 그 기능으로 내가 어떤 비주얼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느냐를 이해하는 것이 툴에 대한 능숙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툴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면 디자이너 본인에게 가장 유리합니다. 더 풍부하고 완성도 있는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툴을 잘 쓴다고 해서 감각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 보기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이력서에 기입하는 자격증이나 학위와 같은 것들을 포트폴리오라는 가시적인 방식으로 입증해보이는 겁니다.
신입 디자이너 채용을 진행했던 경험을 비춰볼게요. 포트폴리오를 통해서는 디자인 기본기에 대한 것들을 먼저 확인합니다. 포트폴리오 디자인은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복잡하지 않고 깔끔한 것이 보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열어보기도 전에 패키지가 너무 산만하면 내용물이 잘 디자인 되어있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각 프로젝트별 작업물의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색에 대한 감각, 구성 등을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하면서, 디자인 트렌드를 파악하는 디자이너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디자이너가 어떤 스타일의 디자인을 해낼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회사의 아이덴티티와 내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협업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도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가는 작업물은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가”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여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들은 학위를 받는 과정인 학부생 수준에서 준비할 수 있기도 하지만, 요즘은 학원에서도 배울 수 있어요. 학원이 학위 과정에 비해서는 비교적 짧은 과정이라 포트폴리오 제작 위주로 배울 수 있긴 한데 그러다보니 실무에 적응을 하는데는 시간을 좀 더 투자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결국 예쁘고 보기 좋은 디자인을 위해 연구하며, 트렌드와 다양한 레퍼런스를 탐구하고, 퀄리티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디자이너라면 상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디자인 감각은 타고 난다 라고 생각해요. C님의 생각은 어때요?
어떤 생각인지 공감이 갑니다. 저도 다른 디자인 작업물을 보면서 스스로를 감각적인 디자이너라고 당당하게 소개하기는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예술과 비슷하게 디자인에는 답이 없다고 흔히 말하잖아요. 감각을 타고난 디자이너들이 있다면, 그들은 창의적인 발상으로 역사에 남을 만한 디자인을 해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실무 디자인에는 좋아보이게 만드는 법칙, 이미 정해진 질서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감각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이에 대한 학습이 잘 되어있는가, 시도해보고 있는가를 먼저 질문해보는 것이 감각이라는 선천적이고 바꿀 수 없는 것에 의지하는 것보다 더 발전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Q5. 일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은?
“가장” 즐거웠던 일은 딱히 없고요. 저는 고객사에 제 디자인 시안이 선택되면 항상 소소하게 기분이 좋아요.
디자인 업무는 좀 힘들긴 해도 항상 재밌었어요. 그런데 저는 회사가 저를 디자인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 같을 때 일을 하기가 싫어지더라구요. 예를 들면, 타이트한 일정 내에 대형 클라이언트의 수주를 위해서 야근을 불사하는 것을 강요하는 경우. 그러면서 추가적인 보상 및 수당을 주는 것은 나몰라라 하는 경영주의 경영 방식. 수평적인 업무 스타일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결국 뜻대로 안되니 수직적인 구조로 진행되는 업무 체계 등. 다 대형 클라이언트 수주 건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영혼을 갈아서라도 수주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개인적인 시간을 쏟아붓는 사원들은 적절한 보상없이 희생만을 강요당하다보니 이 회사는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 회의감이 들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쓰다보니 잡플래닛에 남기고 싶은 말들만 남았네요.
디자이너들의 밈의 있잖아요. ‘옆에서 사람이 소리지르면 디자이너들은 침착하게 저장버튼 누른다’던지 파일명에 최종_최종_수정_그만 이런식으로 제작하는것도 그렇고요. 실제 본인 업무에서도 그런가요?
재밌네요. 사실이라서요. 저희 팀은 영한 분위기라 서로 장난도 많이 치는데요. 저희 사이에 금지된 추임새가 있는데, 소리지르는 건 좀 오바스럽고 보통 “어?”가 많죠. 그 추임새는 ‘내가 지금 뭔가 문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의 축약어거든요. 즉시 ctrl + s를 누르고는 한껏 미간을 좁히며 무슨 일이에요?를 물으면 별 일 아닌 적도 꽤 있어서 장난식으로 ‘어?’를 금지어로 하기로 했다는 재미있는 후문.
광고에이전시 디자이너들은 마케터들과 협업해야하는 위치잖아요. 마케터들도 제작팀과 협업이 필수적이고요. 협업하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주로 제작 일정을 잡는데 트러블이 있고는 하죠. 기획 단계에서 마케터들이 시간을 많이 쓰는 건 이해가 갑니다만, 업무 요청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일정 막바지에 기획안을 전달받다 보니 야근을 하게 되는 일들이 빈번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Q6. 일을 하는데 있어서 본인의 롤모델은?
저는 특정한 한 인물로서의 롤모델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언젠가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디자인에 대해서 안주하지 않고 창의적인 디자인 작업물을 끊임없이 내는 디자이너분들의 결과물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아요. 개인 SNS나 ,Behance(Adobe에서 제공하는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플랫폼)를 통해서 올라오는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아직 나는 많이 멀었구나, 더 열심히 하자! 이렇게요.
인품적인 면에서 귀감으로 삼는 롤모델은 저는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는 저희 아버지입니다. 중소기업에서 몇 십년을 일하시기도 했고, 평사원부터 임원진까지 모든 직급을 거쳐보신 분이라 ‘사회 생활’에 대한 조언을 많이 구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알고 있는 유명한 위인은 아니지만, 저와 가장 가까운 경력직 회사원이시지요.
Q7.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력과 소통 능력입니다. 둘 중 하나만 가지지 말고 둘 다 가지기로 해요, 우리. 냉혹한 직장에서 실력은 곧 인성으로 여겨집니다. 흑흑. 업무 시 오류를 줄여 괜한 수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업을 위한 소통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팀 내부뿐만 아니라 타팀과의 협업도 중요한데, 업무 전달 및 스케쥴 조정에 있어서 명확하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있어야 원하는 결과물을 제 시간에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잘하는 것 중요하지만, 다같이 잘하면 150%, 200% 결과물 낼 지 누가 알아요?
실력과 소통 능력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C님도 본인을 이 두가지 관점으로 평가하면 어떤가요? 그리고 두가지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저는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컨텐츠들 대부분은 팀장님을 거쳐서 컨펌이 되는데, 제가 생각하는 100%를 가져가더라도 피드백을 통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의견을 구하려고 하거든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 큐에 컨펌받는 게 편하니까 달갑지만은 않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알아야 다음에 더 보기 좋게 디자인할 수 있으니까 불편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업무적 소통에 있어서는 미루거나 피하지 않으려고 해요. 뭐가 필요한지를 제 때 확인하려고 하고, 중간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인하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아마 평가는 우리 동료들이 해줘야 되는 것 아닐까요?
Q8. 현재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진로 문제입니다. 현재 회사에서는 따지자면 주로 일러스트나 편집 쪽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더 좋은 페이를 받으려면 현 스펙만으로는 한계가 있을거라고 보고 있어요. 3D 툴이라던지, 모션 그래픽을 할 수 있는 스킬을 더 익혀야 하나, 아니면 원래 하고 싶었던 브랜드 디자인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준비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결국은 어떤 일을 해야 재밌으면서도 더 많이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중인 것 같아요. 사람 천성 어디 안가잖아요.
Q9. 5년 뒤 본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저는 디자인을 계속 하고 있을 겁니다. 생각만 하던 디자이너 브이로그를 시작했을 거예요. 그리고 이모티콘을 부업으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모티콘이 잘 팔린다면, 직장은 새로운 분야지만 하고 싶었던 분야로 이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디자이너가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지 새로운 곳과 새로운 업무에 잘 적응해가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을 겁니다. 그런 경력을 통해서 제 개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전 결국엔 제 사업체를 가지는 게 목표거든요.
Q10. 본인에게 일이란?
돈을 버는 행위와 관계되어 있다면 모두 다 일이라고 느껴지긴 합니다. 곧, 업무 자체이자, 일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업무로 소통하는 동료들 사이의 관계를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는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 실력을 쌓고, 일상에서 틈틈히 영감을 위한 레퍼런스를 찾고 연구하며, 동료와의 원활한 소통에 힘써야 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다 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협업을 위해 배려와 이해심이 필요한만큼 냉철하게 선을 긋는 법도 필요한 것이 일입니다. 이것들 잘하면 저 사람 일 잘하네 소리 듣지 않나요?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일하다보면 ‘일’과 ‘생’의 경계를 분명하게 두고자 하는 워라밸에 대한 강박이 사라지더라구요. ‘돈을 버는 일’ 역시 숭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내 귀중한 평일 낮 시간을 일에 쓰면서 ‘나’, 곧 ‘생’은 없는 것처럼 되는게 아쉬웠습니다. 이왕이면 돈도 벌고 의미도 있고 간혹 재미도 느끼는 행위가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소모라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저라는 사람은 아직도 재미나 의미도 못 찾는 곳에 제 시간을 쓰는 것이 더 낭비라고 느껴지거든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일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결국 일은 돈버는 수단이기도 하고, 커리어를 쌓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흠, 꽤 진지해 보이네요. 사실 매 업무마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일은 휘몰아칠 때가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