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WORKERS (19) 미국 교회 목회자 캐일럽과의 대화
2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려운 직업 중에 하나는 바로 목사일 것이다. 개신교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고, 종교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그냥 목사로 살아도 힘든 상황에서, 미국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두배의 힘듦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오늘 소개할 캐일 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직하고 올바른 목사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캐일럽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Q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나이가 먹을수록 I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ENFP, 35살 케일럽(Caleb)입니다.
Q2.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 지역의 한인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Q3. 왜 이 일을 선택하셨나요?
어려서부터 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나이 40세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시다가 돌연 목회의 길을 걸으시는 저의 아버지께서 참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행복의 기준이 세워진 것 같아요. “내가 하나님(절대자, 신)에게 더 가까이 기대어 살수록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신학 공부를 하기로 선택하여 목회라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미국으로 신학공부를 오게 된 까닭은 우선적으로는 아버지의 추천이었습니다. 한국의 주류 신학이 지금까지는 미국의 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앞으로 30년 이상 목회자로 살려면 이왕이면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더 넓게 배울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셨죠.
그 의견에 동의한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이미 한국 안에서는 교회들도 많고 목회자도 많은 상황에서 조금 더 나의 유니크함이 필요한 곳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고등학교 생활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보내면서, 이민교회에서 조금 더 내가 가진 유니크함이 잘 활용되고 계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럼 미국에 연고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신 거네요? 대단한 결단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 사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내리자 마자는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사실 한국에서 가진 것이나 이룬 것이 없었기 때문에 떠나기로 결정하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잃을 게 없으니, 얻을 수 있는 것만 보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Q4. 이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나요?
일단 신학교에서의 목회학 석사과정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소위 엠딥 (Mdiv, Master of Divinity)을 공부하면서 신학, 성서 해석, 설교 등의 기초공부를 하게 됩니다. 보통 엠딥 공부 중에 사역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때부터 교회 안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졸업 이후 각 교단에 속하여 교단에서 요구하는 기준(고시, 경력, 교육 등)을 이수하면 목사로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미국 신학교에 오려면, 일단 토플 점수가 있어야 하겠죠? 토플 점수가 절대치는 아니지만, ‘내가 영어로 수업을 듣고 학위를 따는 데 문제없다’라는 증명을 할 정도의 점수는 돼야 합니다. 그리고 입학 원서를 써야 하고, 합격을 하게 되면 미국에서 유학하는 데 필요한 비자가 필요합니다.
소위 F비자라 하는 이 유학비자를 받는 게 사실 제일 큰 산이예요. 필수조건들에 대한 안내는 있지만, 그 조건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거든요. 결국 승인 도장 찍어주는 것은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영사의 판단인데, 학교의 네임밸류, 가지고 있는 재정규모, 인터뷰 등 그러한 것들을 종합하여 영사가 최종 판결을 내리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크게 보면 미국 정부의 정치적 성향, 이민정책부터 정말 작게는 당일 영사의 기분에 따라 비자가 승인될 수도, 거절될 수도 있어서, “기도” (혹은 기적) 많이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7년 전 처음 올 때, 삼수 끝에 비자 승인을 받았었습니다.
필요한 기술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한 방식의 사역을 할 수 있으니 좋겠지요. 우스갯소리로,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기술들이, 90년대에는 운전면허 1종, 2000년대에는 홈페이지 제작 및 관리, 2010년대에는 SNS 관리, 팬데믹 이후에는 유튜브 제작 및 관리라고 합니다 (웃음)
다만, 이 모든 기술들이 플러스는 되겠지만 필수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 기술이 많을수록 더 많이 소모되겠지요? (할많하않)
말씀하신 비자는 만약 반려가 되었으면 아예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기분은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 당시 심경은 어떠셨나요?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었죠. 서류상으로도 문제가 없었고, 첫 번째 반려되고 수정사항을 다 맞추어 두 번째 인터뷰를 가졌는데도 제가 듣기엔 생트집으로 반려하더라고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준비를 더 해야 하는지 물어도 알아서 해오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좌절감에 주저앉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도해보고 안되면 미국으로 가는 건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별다른 수정사항 없이 가지고 있던 서류 그대로 들고 갔는데, 20분간의 기나긴 인터뷰 끝에 비자를 승인받았습니다. 제 직업상 전문용어로 “은혜였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좌절감이 역설적으로 유학생활 동안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Q5. 일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 위로와 만족을 얻지만, 그 방식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사람이지요. 내가 목양하고, 내가 양육하는 사람이 내가 하는 일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믿게 되는 모습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해요.
저의 개똥 같은 설교를 듣고도 새로운 점을 배웠다고 할 때, 삑사리 나는 거친 노랫소리에도 찬양을 통하여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고 할 때, 밤새워 준비한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었고 교회 오는 것이 즐겁다고 할 때…
조금 더 종교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느꼈을 때? 그게 가장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면서, 또 열심히 일하게 되는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웃음)
힘든 점은 일로 인하여 내 개인의 삶이 소홀하게 되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한 번은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1박 2일로 미니 수련회를 진행 중이었는데, 집에 있던 아내가 다급하게 아이가 온몸에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왔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미국이 대중교통도 잘 안되어 있어서 병원에 데려가려면 차가 필요한데, 차도 제가 갖고 온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아내가 영하의 날씨 속에 유모차 밀고 30분 이상을 걸어서 병원에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외에도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무슨 일 있으면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많지요. 더욱이나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비싼 인건비로 인하여 웬만한 것을 교회 자체 내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제가 신경 쓰고 해야 할 일이 참 많아요.
겉으로 보면 예배준비부터 교회 내 성도님들의 안부도 살펴야 하고, 부수적으로 음향 영상시설 관리, 교회 건물 관리, 교회 차량 관리까지 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혼자 하지는 않지만, 바쁜 이민생활 속 주중에 교회를 지키는 것은 결국 목회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다 하다 보니, 일만 생기면 달려 나와야 하지요. 워라밸은커녕 Work와 Life의 합일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우리 아내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국내 교회 목회자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직업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민생활에서 오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아요. 한인 커뮤니티 안에 지내고 계시는 것 같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이슈가 커지기도 했는데,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고충은 없으세요?
한국에 살았더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걱정거리들이 제일 힘들게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분 문제입니다. 학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신분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 시 회사의 신분 스폰서 및 서류 작업이 선행돼야 하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꺼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인종차별 문제도 분명히 있지요. 피부색만으로 일단 경계를 받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아무런 근거 없는 특권의식으로 불공평한 처우를 받아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전제하고 살아가는 것이 마이너리티(Minority)의 고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미국 사회의 고질병, 총기에 대한 불안감도 마음 한 구석에 늘 깔려 있습니다. 볼티모어 도시가 강력범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여서 요. 저는 상대적으로 도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도심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교회 내 멤버분들의 안전이 늘 걱정되지요.
그리고 가족들,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한다는 점이 늘 힘들죠. 얼굴 보는 건 고사하고, 경조사도 제대로 못 챙겨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늘 빚진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Q6.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본인의 롤모델은?
저는 저의 아버지가 저의 롤모델이십니다. 단순히 아버지여서가 아니라, 목사로써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버지가 외국에 있는 이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 아들인 제가 봐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점이 많거든요. 그중에서도 사역을 합리적이고 정직하게 하신다는 점, 겉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정말 필요한 부분에 개인 혹은 공동체가 가진 가장 최선을 집중하여 사역을 끌고 나간다는 것이 정말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껴오면서, 아버지의 삶의 기준이 정말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런 부분이 제가 꼭 배우고 갖추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7.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의 기준을 하나님에게 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기준으로 두고, 담임목사님, 장로님, 혹은 성도님들을 기준으로 두고 일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평가를 높이기 위한 일이 될 것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 즉 목회자가 아니란 소리가 되겠지요?
특히나 요즘,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평판이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즘,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결국 교회가 교회답지 않고, 목회자가 목회자답지 않아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목회자다운 목회자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기준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마음가짐이 결국에는 나태하고 게으른 모습에게는 움직일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나의 최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 평가에 대해서도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고 홀가분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마음가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직자의 어려움은 직장인과 달리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데서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인이 없고, 돈이 없으면 운영되기가 어려운 게 교회의 상황일 것 같습니다. 경제적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써의 목사라는 직업과, 성직자로의 목사, 캐일럽님은 둘 사이에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으신지 궁금해요.
목사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목사가 되려 하였다면, 이미 출발점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물론 몇몇 대형교회들의 담임목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에 한하는 일일뿐더러, 근본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행태는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굉장히 거리가 먼, 성직자답지 않은 성직자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돈은 분명 필요합니다.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 조직을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저도 돈에 관련하여 고민도 많이 하고,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다만, 늘 마음에 두는 것은, 돈은 결국 수단이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처럼 일용할 양식을 얻은 것에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시는 손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게도, 여러 상황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 저에게 필요한 만큼의 재정이 늘 채워져 온 경험들이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저를 돌보아 주셨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Q8. 현재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거창하게 얘기하면, “이 시대에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라는 생각이지요. 제가 일하는 직장이기도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교회가 필요하고,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 교회라는 조직 또는 공동체만큼 복잡한 곳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 교회에 속하고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목적이 제각기 다 다르다는 것이에요. 20세기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동의 목표를 내걸고 그것을 함께 달성해야 한다며 하나로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던 것이 이전의 방법들입니다. 성전건축이나 선교사역부터, 반동성애 운동이나 태극기 집회까지 결국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은 효과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생각할 때에는 성경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가 보이는 모습의 괴리 속에서 교회에 상처 받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독교가 아닌 “개독교” 혹은 “기득교”로 취급하는 상황 속에서, 적어도 내가 속한 교회는 교회 안에 속한 사람들이나 교회를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나 “저 교회는 진짜 하나님을 믿는 교회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 진짜 고민은 “그럼 어떻게?”라는 것이지요 (웃음)
이와 관련하여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들은 꼭 좀 이야기해주세요.
국내에서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뚫고 내려가버린 것 같아요. 저도 종교를 개신교로 가지고 있지만,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럽다고 느낀 건 요즘이 처음입니다. 미국, 특히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너무 거대담론이라, 어디서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확실한 것은 탈종교현상은 한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를 보아서도 꽤나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더욱 가속화된 것은 분명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왜 교회를 다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이 공동체성을 더 필요로 하게 되고, 그 틈에서 교회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몰상식한 모습에 실망하는 것 같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 어떻게 가능할까요?
정말 제가 바라고 바라는 모습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 결국에는 근본적인 신학적&신앙적 재교육만이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그 개혁의 핵심은 성경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몰상식한 모습들은 대부분 반성경적인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도 하나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교회가 싫어서, 혹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떠나는 것이지요. 밥을 먹으려는데 밥그릇이나 수저 같은 식기들이 더러워져 있고 깨져 있으면, 입으로 못 넣는 사람을 욕할 것이 아니라 식기부터 먼저 깨끗하게 씻고 고쳐야 합니다. 아니면 새 식기로 바꿔야 하겠지요.
결국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탓하고 붙잡을 것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는 것이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몰지각하고 몰상식적인, 교회도 아닌 것이 교회라고 하는 일부가 너무 튀어서 문제이지만…
Q9. 5년 뒤 본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5년 뒤에도 살아는 있겠지?” 하하. 사실, 제가 일하고 있는 교회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은 교회라서 장례식이 참 많은데, 장례식에 갈 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과 죽음이 참 가까이 맞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결국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데, 내일 당장 죽는다면, 살지 못한 내일모레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최소한 지나간 어제에 대한 후회는 만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5년 후가 되어있겠죠? 5년 후에는 사춘기 딸 비위 맞추느라 진땀 빼는, 지금보다는 배는 조금 더 홀쭉하지만 마음은 더 넉넉한 목사다운 목사가 되어 있으면 좋겠네요.
5년 뒤에 자녀가 사춘기라고 말하니까 5년이 꽤나 긴 세월처럼 느껴지네요. 미국에서 현재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국내로 복귀하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미국에서 계속 사역을 하신다면 담임목사가 되셔야 할 텐데, 국내 교단과의 차이가 있나요?
아직까지는 제가 이곳에서 더 경험하고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케일럽’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원들이 임원이나 CEO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목회도 모든 목회자의 종착점이 꼭 담임목사여야 할까라는 의문이 아직까지 마음에 있습니다. 아마도 5년 후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10. 본인에게 일이란?
제가 가진 가치관을 발현하는 프로젝터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비추어 보여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프로젝터의 프레젠테이션처럼 비추어질 때, 그것을 보는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주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 그것이 저에게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