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31 WORKERS

일그러진 표정으로 거울을 보면 뒤틀린 모습만 보게 되죠

31 WORKERS (23) 재활심리 박사과정 유학생 J와의 대화

by 브루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는 압박감이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압박감, 그리고 그 압박감마저 이겨내야 실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를 보면서 내가 저기 서있었으면 이겨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J 씨다. 제도상 단 한 번의 실수가 미래로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있지만, 낯선 문화와 압박감을 이겨내며 묵묵히 본인의 길을 가고 있는 J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J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 사회복지/심리학을 전공한 후 3년 정도 상담센터와 지역사회정신재활 기관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한 대학 재활심리/재활 상담자 교육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사 3년 차 학생입니다.


Q2.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현재 미국 중부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박사생으로 주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수업과 관련된 주제 혹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 쓰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로는, 학부 및 석사 과정 수업에 조교나 강사로 참여해 대학생과 석사생을 가르치거나 평가하는 일을 하고요. 대학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주로 장애 및 재활 관련 서비스에 대한 자료를 찾아 정리하거나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나 논문을 써내는 일을 합니다.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을 둘 다 가지고 있는 게 흥미롭네요. 본인에게는 어느 쪽에 더 맞는 것 같나요?


사실 박사 수업의 경우엔 대부분 발제와 토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배움과 가르침 사이의 차이가 그리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수업의 초점이 지식 전달보다는 정보 해석과 처리의 관점, 사유의 방법, 깊이, 방향성, 방법론, 이런 부분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지식 전달이 중심이었던 석사와 학부 때 수업을 생각해 보면, 전 아직까진 전달하는 입장보단 배우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내향적인 성격 탓에 그렇기도 하고, 언어적인 장벽 때문에 그렇기도 하죠. 내가 알게 된 지식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조명해보고 새로운 의미나 적용점을 찾아보는 건 재밌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제가 가진 걸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건 어렵게만 느껴져요. 특히 낯선 사람들 앞에서 긴장한 상태에서는 제가 아는 지식의 60-70% 정도만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쉬울 때가 많아요.


어쩌면 제가 가르친 누군가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보람을 느끼면 가르치는 게 더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뭐, 앞으로 가르칠 기회가 점점 더 많이 주어질 테니 나중엔 변할 수도 있겠죠?


Q3. 왜 이 일을 선택하셨나요?


재활심리라는 전공을 선택한 이유와 유학을 결심한 이유 두 가지 모두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선, 삶에 대해서 제가 가진 가치관이 이 전공을 선택하게 된 주된 이유였습니다. 10년 정도 전에 어떤 일을 계기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는데 그때 찾은 답을 따라 이 일을 선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학을 오게 된 이유는 좀 더 간단했어요. 재활기관에서 일했을 때 제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처럼 참 어려운 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는데요, 그곳에서 병의 증상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또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 중 몇몇은 자신이 가진 장애에도 불구하고, 혹은 자신이 가진 장애를 통해서 사회 공동체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었고, 대다수는 적절한 도움이 주어진다면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보건/복지 영역의 한계로 인해, 혹은 전문가 집단의 역량 부족,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그러한 가능성을 꽃피울 기회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오히려 그분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의 문제가 개인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보였죠. 거시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느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미미했고, 클라이언트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어요. 그래서 유학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거창한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 실정을 직접 본 사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평생 마음에 짐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공부를,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유학이라는 길 자체가 본인의 진로에 확신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가족과도 떨어져야 하고, 환경이 바뀌는 거니까요.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굳힌 구체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몇 년 간 학회에서 또 일선에서 일하며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만났어요. 대개 누가 정신건강 전문가다 그러면 인격적으로 성숙할 것 같은 느낌을 받잖아요.


그런데 제 경험에 따르면 참 신기하게 이 분야에 있는 분들 중에 오히려 지위나 권위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심심찮게 봤어요. 저도 막내 사회복지사로 그런 일들을 종종 겪었죠. 병원에 있는 중견 사회복지사들, 정신과 의사들이랑 업무 현장에서 혹은 학회에서 만났을 때, 노력하지 않으면서 권위에 기대 자족하는 분들, 아예 노골적으로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분들을 봤어요. 그런 분들이 전문가, 권위자란 이름으로 클라이언트들에게 그리고 재활 정책과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보며 회의감이 많이 들었고, 그때부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제가 모병원으로 파견을 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저희 기관이랑 병원 사이에 일정 조정 문제가 있었나 봐요. 그날 처음 본 병원 쪽 사회복지사가 저를 ‘그쪽’이라고 칭하면서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그렇게 멀뚱히 서 있냐, 왜 거긴 늘 그런 식이냐, 네가 잘못한 걸 내가 알려줘야 하냐는 그런 얘기를 쏟아내더라고요. 불쾌하면서 은근히 모멸감을 느끼게 만드는 언사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이 그 지역에선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정신과 병원 책임자 급이었거든요. 다른 기관의 직원인 저를, 그것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무례한데,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 직원들이나 환자들한테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잖아요.


그리고 대학원생 때 학회에서 정신과 의사분들이랑 발표와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의사분들이 이 영역에선 한국에서 꽤 유명한 분들이었거든요. 저한텐 과분한 기회라 며칠간 잠 줄여가며 당시 최신 해외 연구나 문헌들을 뒤져서 찾아간 자료들을 바탕으로 발표를 했는데 어떤 의사가 ‘그건 당신이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지금도 기억해요. ‘미국에선 동부와 서부에서 각기 다른 이론을 얘기하는데, J 선생님이 얘기한 건 동부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거고 서부는 다르다. 그게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뭐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때 좀 충격적이었어요. 본인이 얘기하는 건 이미 미국에서도 해묵은 옛날 얘기였거든요. 귀를 의심했죠. 본인이 10년 전에 알던 것들이 아직까지 정설이라고 믿더라고요.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거죠. 그러면서 본인이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얘기는 일단 배척하고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더 큰 문제는 그 자리에 있던 수십 명의 정신과 환자들, 사회복지사들은 저명한 의사의 얘기를 신뢰한다는 거였어요. 게으름과 무지함이 전문가라는 명함으로 포장되면 잘못된 정보도 객관적인 사실이 되더라고요.


그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클라이언트들이었어요. 사람을 무례히 대하는 전문가들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되는 거죠. 그리고 더 좋은 서비스, 더 좋은 기회를 주장하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로 치부된다거나, 오히려 집단 내에서 소외되거나 평가절하 당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었어요. 클라이언트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위치에 있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진지하게 유학을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거기서 살아내면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보단 해외에서 공부하는 게 더 쉬워 보였어요. 그땐 몰랐죠. 유학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를 (웃음)


Q4. 이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나요?


상담이나 사회복지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자격증이 필요해요. 상담의 경우엔 다양한 민간 자격이 존재하지만, 전문 학술 학회에서 발급하는 전문 상담사 자격이 최소한의 전문성을 담보해준다고 볼 수 있고요. 보편적인 경로로 해당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석사 수준의 전문교육과 수백 시간의 실습이 필요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선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기준이 있으니 맞추어 준비하면 됩니다.


유학에 관해서는, 외국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입학 요건이 상당히 다양하지만 유학을 생각하는 분들이 보통 공통적으로 준비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는데요, 학부 및 석사 과정 성적증명서,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TOEFL이나 IELTS 등의 공인 영어 시험 성적, 그리고 영미권 국가에서 시행하는 대학원 시험 (Graduate Record Examination; GRE) 성적을 준비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Q5. 일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은?


제 일 중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것 하나가 학생들 앞에서 가르치는 일이에요. 눈이 파란 학생들이 서른 명 정도 앉아서 저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그 느낌은… 뭔가 무거운 공기로 막 몸 여기저기 얻어맞는 느낌이랄까요. 전 강의할 때 주로 검은색 옷이나 헐렁한 셔츠 정도밖에 안 입어요. 강의하다가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는 걸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요.


어쨌든, 한 학기가 끝나고 나면 학생들로부터 강의 평가를 받게 되는데, 처음 유학을 온 이후 첫 두 학기 제 강의 평가는 처참했어요. 학생들이 직접 쓴 평가서를 받아 들면 자괴감이 들거나 스스로가 미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겁이 나서 강의 평가서를 안 보게 되더라고요.


뭐, 서른 넘어서 난생처음 영미권 국가에서 살아본 저한테는 당연한 일이겠거니 했지만, 정작 신랄한 평가서를 받아 들면 정말 마음이 어렵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네 번째 학기가 끝날 때 받은 평가서에 어떤 학생이 제가 정말 큰 도움이 됐었다고, 고맙다고 적어 놓은 걸 봤어요. 긍정적인 피드백은 그거 하나였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은 많이 없어져 있었죠. 박사 생활 중 그때가 가장 기뻤어요. 내가 드디어 한 사람 몫을 겨우 할 수 있게 된 건가, 나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었죠.


심리학을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요즘 이슈가 인종차별이다 보니, 수업을 하면서 혹은 미국 생활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인종차별보다는, 제가 외국인이고 영어가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 때 간혹 미심쩍어할 때나 불만족스러울 때가 있어 보였어요. ‘저 인간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이 수업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죠.


그땐 나한테 그만한 능력이 있단 걸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고, 그 친구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질문들을 던져주고, 개개인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면 차츰 그런 시선은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그게 인종차별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또 모르죠. 제 백인 박사 친구들은 아무래도 그런 경험을 덜 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오히려 학교 바깥에서 인종차별 비슷하게 몇 번 당한 적이 있었죠. 대놓고 차별은 아니었는데 우리가 흔히 microaggression이라고 부르는 미묘한 것들이요. 예를 들어, 마트 계산대에 저랑 두 명의 백인 손님이 있었는데 점원이 아예 대놓고 저한테만 무례하게 대하는 거죠. 인사를 하거나 질문을 해도 건성건성에다 쳐다보지도 않고 대놓고 무시하는 듯하더니 다른 백인 손님들 앞에서는 아주 친절하게 돌변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제가 마트에서 나와 카트를 끌고 차로 가고 있었고 제 뒤엔 백인 남자 두 명이 따라 나오고 있었어요. 주차장 쪽으로 좀 걸어왔는데 마트 문 앞에 있던 직원이 저를 불러 세우고선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고선 아무 말없이 영수증 한번 제 얼굴 한번 쓱 훑어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거죠. 그때도 상당히 황당하고 불쾌했어요. 무작위로 누군가를 검사하는 거라면 문을 통과하기 전에 요청을 하든지, 아니면 제 뒤에 오는 사람에게 요청했을 것 같은데, 굳이 저만치 걸어가고 있던 저를 콕 집어 불러 세우고선 제 뒤에 있는 사람을 지나쳐서 제 영수증을 검사한 거죠. 지금도 궁금해요. 왜 굳이? 왜 그 백인 남자들이 아니라 나였을까? 혹시 같은 일이 또 있으면 그땐 꼭 물어보려고요.


유학생으로 살면서 어려운 점은 많아요. 공부나 강의가 어려운 건 둘째치고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 생활금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죠. 음, 그래도 그중에 제일 어려운 거 하나만 꼽아보라고 하면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는 거, 그거 같아요.


저희 프로그램에선 박사 첫 네 학기 동안 매 학기가 끝난 이후에 preliminary test라는 시험을 쳐요. 총 네 번 치게 되는 건데, 하나라도 통과 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는 위험한 시험이에요. 한 학기 동안 배운 박사 seminar 내용을 바탕으로 두 문제가 나오는데, 그럼 머리에 있는 온갖 지식을 꺼내서 거의 10장이 넘는 분량의 페이퍼를 6시간 안에 써내야 돼요.


그러고 나면 한 달 뒤에 교수님들이 그걸 읽고 길게 길게 평가서를 써주시죠. 그때가 진짜 힘들었어요. 그 과정이 다요. 박사 수업을 듣는 그 순간과 그 이후에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들과 시험을 치르는 그 6시간… 시험을 치르는 그 시간이 정말 쉽지 않죠. 평가서가 메일로 도착했을 때, 평가서를 읽어본 후의 그 느낌. 다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세 번째 시험을 칠 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거의 준비를 못하다시피 한 채로 시험을 쳤는데, 채점이 끝나고 평가서를 읽었던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자존감이 바닥을 쳤죠. 그땐 공부를 그만둬야 하나, 내가 이 공부를 끝마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가장 많이 또 심각하게 들었던 순간이었죠. 시험이 다 끝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이 반응하네요.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같아요. 한 번만 떨어져도 탈락이라뇨. 유학생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이 들었을 것 같아요.


아, 제가 너무 앞뒤를 자르고 얘기 했나 봐요.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쫓겨나는 건 맞는데, 사실 쫓겨나기도 쉽진 않아요. 탈락하는 사람들한텐 재시험이나 보충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든요. 오디션을 예로 들었으니,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할까요? 시험을 한번 망쳐도 두 번째 기회가 있어요. 그래서 그만두는 사람들 중엔 탈락하는 경우보다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개인적으로 박사과정은 서바이벌 오디션보단 서바이벌 다큐멘터리 같다고 생각해요. 오디션에선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나 그에 따른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면, 박사 생활은 압박감을 견디면서 발전해 나가는 과정 자체에 방점이 더 찍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있는 곳에선 누가 봐도 명백한 결격 사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고, 주위에선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줘요. 제가 공부하는 학문의 특성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장애와 재활 영역에선 equality와 구분되는 equity로써의 평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5를 가진 사람과 10을 가진 사람이 완벽히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지원을 받으며 경쟁한다고 쳐요. 그리고 두 사람이 동일한 양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면, 10을 가진 사람은 늘 승리자고 5를 가진 사람은 늘 패배자가 되겠죠. 동일한 조건, 동일한 지원,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equality로서 평등의 개념이에요.


하지만 처음에 무엇을 가졌느냐에 따라 나중에 무엇을 가질 수 있느냐가 결정되는 건 전혀 공정하지 않아요. 더 근본적으로 경쟁의 시작 이전에 존재하는 그 차이조차 외생적 요인, 그리고 우연과 행운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10을 가진 사람의 ‘더 가짐’과 5를 가진 사람의 ‘덜 가짐’ 사이의 차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인해 생기는 게 아닌 거죠.


그래서 경쟁의 시작 전에 이미 존재했던 차이가 고려되지 않으면 경쟁 후에 따라오는 결과는 절대 공정하거나 평등할 수 없어요. 그래서 공정한 평등을 위해선 결괏값과 더불어 그 결과를 불러온 종합적인 요인에 대한 정성적인(qualitative) 고려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해요. 이게 equity로서 평등의 개념이에요.


전 제가 공부하는 영역에서 강조되는 이 평등(equity)의 개념이 평가에도 적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결과에 따라 선 긋듯 당락을 나누기보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이후의 가능성을 더 면밀히 평가하는 것 같아요. 약간 부족하게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 있거든요. 10을 가진 사람이든 5를 가진 사람이든 본인이 가진 것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길러내는 게 제가 있는 프로그램의 목표이고, 그런 의미에서 오디션보단 성장 다큐멘터리 같다고 느껴지네요.



Q 6.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본인의 롤모델은?


제가 참 좋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학부 때 은사님이 계세요. 여성 분이신데 한 분의 연구자로서, 선생님으로서, 돕는 전문가로서, 또 개인으로서 제가 늘 닮고 싶은 분입니다. 연구만 해도 바쁘실 텐데 학생들 면담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만나면 꼭 잘 지내냐고 먼저 물어봐주셔요. 학생들이 우는 소리 죽는소리 해도 들어주는 걸 마다하지 않으시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고요. 손아랫사람에 대한 존중이란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게 대해주시죠.


자주 뵙진 못해도 뵐 때마다 맛있는 식사나 커피도 자주 사주시고요. 직접 재활 기관을 만들어서 몇 년째 운영에 참여 중이기도 하세요. 주말에는 타 지역에 연구에 관한 강의를 들으러 다니시고, 안식년엔 좀 쉬셔도 될 법한데 미국에 공부하러 가시더라고요. 매일 바빠 보이시는데 그렇게 활기 있고 유쾌하실 수가 없어요.


처음 뵌 이후로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참 한결같으세요. 세월이 지날수록 인품은 더더욱 좋아지시는 것 같네요. 최근엔 드럼을 배우신다고, 부끄러우니까 소문내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연구에 진지한 마음가짐도,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고 꼭 닮고 싶은 분입니다. 그분 닮은 연구자가, 선생님이, 혹은 교수가 된다면, 스스로 참 멋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존경할만한 롤모델이 있다는 건 가르치는 직업과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J님 입장에선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힘들일이 있을 때 조언도 많이 구하셨을 것 같은데, 은사님이 해주신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거나 힘이 되는 말은 무엇일까요?


주옥같은 말씀을 아주 많이 해 주셨지만 그중 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 나눴던 얘기가 있어요. 석사 때 제가 어떤 교수님들 감정싸움에 애매하게 껴서 고통받을 때였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제 상황을 듣고는 해 주신 말씀이 ‘교수들이 힘없는 학생 사이에 끼워 놓고 싸우는 거 그거 절대 하면 안 된다. 나 박사 때 지도 교수님도 나중에 내가 교수되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이때 두 가지가 되게 크게 와닿았는데, 첫째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배려해주려는 관점과 태도였어요. 교수라는 직책 상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지 알기 때문에 더 배려하고 더 조심하며 대해 주셨단 걸 그때 알게 됐죠.


두 번째는 본인이 예전 선생님에게 배웠던 가르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지키려 노력해 오셨단 거였어요. 본인이 교수가 된 이후에도 예전에 배웠던 기본을 잊지 않고 계속 지켜 나가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어요. 저도 나중에 그 두 가지를 꼭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진짜 선생님이세요. 먼저 살아감으로 가르친다… 그런 의미가 잘 어울리는 분이세요.


Q 7.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요즘엔 일을 하면서 ‘자기 확신’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연구라는 걸 단순히 말하면 현존하는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인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지지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논리적 연결성을 만들고, 실제 자료로 이 가설이 맞다는 걸 입증해서 논문으로 내놓는 과정이거든요. 공부라는 건 연구에 필요한 능력과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고요. 그래서 하면 할수록 끝이 없어요. 공부할 주제도 끝도 없고, 연구할 영역에 제한도 없어요. 누가 나한테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연구할지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고요.


국내 대학에 비교하면 외국 대학원에선, 특히 박사과정에선 훨씬 큰 자율성을 부여해주고 스스로 관심 영역을 정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역량을 요구하거든요. 혼자서도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공부든 연구든 일을 할 때 늘 불확실하고 불안해요. 내가 정한 주제가 괜찮은 건지, 내가 쓴 글에 오류가 없을지, 문법이나 단어 사용이 이상하진 않은지, 뭔가 놓치고 있는 자료는 없는지 늘 걱정하고 고민돼요. 태평양 같은 바다 한가운데 부표 하나 놓고 목적지 없이 표류하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그러다 보면 일은 일대로 잘 안되고 스트레스는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근데 또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여주면 평가가 나쁘진 않아요. 제가 그렇게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건 제 마음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는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저한텐 자기 확신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잘하고 있다, 이만하면 좋다, 충분하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 뭐 그런 마음의 확신이 있어야 훨씬 능률적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선 연구자의 자기 확신이 꼭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자기 확신은 말씀하신 것처럼 업무의 분야에서도 필요하고 삶을 살아가는데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맞아요 심리학적으로 볼 때도 자기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느낌이라는 건 사람의 다양한 측면에 정말 중요한 영향을 미쳐요. 심리학에선 자존감, 자기 감, 자기 효능감, 자기 가치감 등 여러 가지 개념이 있는데요,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느낌, 시각, 인식, 평가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세상 또는 타인과 관계하고, 어떻게 일하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진다는 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밀접하게 관련된 아주 중요한 주제예요. 일에 있어선 특히 자기 효능감이 중요해요.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에 있어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기 쉽고, 업무 만족도와 업무 성취도까지 더 높은 경향을 보여요. 그래서 만족스러운 일과 삶을 위해 우리는 나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연습해야 돼요.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나 자신에 대한 시각이라는 게 외부의 요인에 참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 삶의 경험들,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은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해요. 마치 거울 같은 거죠.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도 일그러진 거울로 자신을 본다면 뒤틀린 자기 모습밖에 볼 수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과 함께 나를 아름답게 비춰줄 수 있는 환경이나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하고, 소통하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더 자세한 얘기는… 이미 다른 내용들이 충분히 길기 때문에 편집할 사람을 생각해서 줄이도록 할게요 (웃음)


Q 8. 현재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졸업 후에 뭐할까 이런 고민이 가장 크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게 막연히 있긴 한데, 그 목표는 지금 내가 이루기엔 너무 멀고 커 보이는 거죠. 10년 후 20년 후쯤에나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위해서 당장 내 다음 발걸음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고민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길 찾기, 미로 찾기 이런 거 보면 들어가는 곳 나가는 곳은 한눈에 보이는데 중간에 길이 막 헷갈리게 이리저리 엉켜 있잖아요. 제 인생이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라 어떻게 하면 출구로 나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좀 다르게 말하면… 음, 장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단기 경로를 고민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문제는 장기 목표의 스케일이 많이 커서 그런지, 단기 목표를 잘 못 잡으면 인생이 피곤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고민이 많이 되네요.


Q 9. 5년 뒤 본인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음, 미래를 생각하면 늘 두 가지 버전을 그려보는데요. 첫 번째는 박사 프로그램에서 잘린 미래의 저구요(웃음) 두 번째는 박사학위를 받고 무사히 졸업한 미래의 저예요. 전자의 경우엔, 글쎄요. 한국에 돌아가서 상담사나 사회복지사로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다른 외국 대학원에 도전할 수도 있겠고,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님 아예 다 때려치우고 다른 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학원 강사나 뭐 이런 쪽으로요.


학위를 잘 마치면 외국 대학에서 연구자로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가치를 두고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 기반이 되는, 그런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저는 꿈이 큰 사람인 것 같네요(웃음)


이런 두 가지 버전의 상상을 해봅니다. 졸업할 확률이 높긴 한 것 같은데 사람 일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요. 5년 후에 무슨 일을 하게 되든지, 저는 마음이 행복한,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Q 10. 본인에게 일이란?

저한테 일이란 제가 할 수 있는 형태의 기여와 공헌이에요. 내 삶을 살아나가는데 꼭 필요한 게 일이기도 하지만, 저는 제 일이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거든요.


제가 하는 공부나 연구나 가르치는 일이 어떤 형태로든 미미하게나마 장애를 가진 분들의 삶에, 또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첫 이유이자 목표이기도 하고요. 이 담에 죽어서 나라는 존재를 만든 누군가가 어떻게 살았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하다 왔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쓰니까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제가 되게 부끄럽네요. 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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