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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O Jun 21. 2020

밀가루

나는 당신을 오분동안 알았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대전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갔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나오는 검은색 대문은 드문드문 칠이 벗겨져있고, 초인종은 나사가 풀려 기울어져있다 사춘기시절 내 몸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장래희망같았고, 새로운 학교, 새로운 아이들, 공부, 살던 집마저도 이사를 했다. 그래서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마저도 낯설었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네 댁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속성을 지닌 장소로 여겨졌다. 몇 달에 한 번씩 와도 초인종은 여전히 기울어져있고 칠이 벗겨진 대문은 괴음을 내며 열리는 곳, 기름내와 밀가루 냄새가 집안 곳곳에 빨래처럼 걸려있고 1층에서 살던 삼촌네가 할머니와 함께 마중 나오는 집. 약과같은 과자가 어디에 있는지, 사촌동생과는 어느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들이 변하지 않은 곳

온 가족이 빚은 김치만두를 넣고 끓인 만둣국을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먹었다. 멸치를 우린 국물에 호박을 잘라 넣고 만두만 넣고 끓인 만둣국, 커다란 대접에 담긴 만두 네 개, 숟가락으로 만두를 으깨놓고 국물에 풀어놓고 먹었다. 어른들이 만두 속 불그스름한 속처럼 취했고 아이들은 멋모르고 따라 웃었다. 몇 년 뒤 엄마에게 할머니가 이사를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집엔 이제 다른 가족이 산다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미워졌다.

명절날 엄마가 차 안에서 내게

“할머니네 가는 건 처음이지?”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낯선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네’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만 같았다. 대답은 않고 괜히 손만 꾹꾹 눌렀다. 이사 간 곳은 더 이상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나오는 낡은 2층 주택이 아니라 4차선 도로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할머니네 댁은 더 이상 초인종이 기울어져있지도 칠이 다 벗겨진 문도 아니었다. 집이 낡은 것은 같았지만, 아빠와 손잡고 처음 목욕탕을 갔을 때 목도했던 노인들의 늘어진 가죽처럼 소름 끼쳤다. 그 순간 무언가가 영원히 지나감을 느꼈다. 문이 열리고 구두랑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좁은 신발장, 방바닥을 딛는 순간 나는 끈적함을 느꼈다. 할머니네 방바닥은 항상 끈적거렸다. 노후된 집에선 어떤 일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아빠는 꾹 눌러져 있던 세월이 반죽처럼 부푸는 거라 했다. 걸을 때마다 양말을 잡아끄는 이 끈적함은 예전 집에서 가져온 장독대처럼 이곳이 할머니네 댁이라고 확인 시켜주는 듯했다. 끈적한 반죽 속에 양손을 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다른 사람의 손과 맞닿은 것만 같아서 반죽하다 말고 자주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바닥과 가족과 내가 반죽으로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다 삼 남매를 키웠다. 평생 죽은 것과 죽어가는 것을 만진 주름진 손으로 밀가루 덩어리를 반죽했다. 반죽 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려는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서 꾹꾹 치댔다. 물을 묻혀가며 계속 반죽했다.

온 가족이 상에 둘러앉아 만둣국을 먹었다. 만두를 먹다가 반죽하던 할머니가 떠올라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으깼다 짓누르고 잘라서 만두피와 만두속이 국물의 한 층을 만들 떄까지 다 같이 모여 TV를 보며 수다를 떨다가 밤 11시가 넘어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고 제사를 지냈다. 흰쌀밥 소고기뭇국 과일 생선 전 약과 등이 올려져 있는 할아버지 제사상,

할머니는 수저를 옮기고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거기서 애들 좀 잘 봐줘요”

흔들리는 연기같이 한마디 내뱉곤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오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실보다 얇은 반죽으로 이어진 손자의 안녕을 소망하는 것이 할아버지에게 과한 요구 같았다.

만두를 입에 넣고 또 쑤셔넣었다.

끈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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