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 제일가는 기념품이자 짐
여독
살아온 세월들이 차곡차곡 포개지고
못 본 새 독소가 놀랍도록 쌓였구나
아, 깊은 잠에 빠지는 건 나 혼자라도
눈을 감는다면 모두의 앞에서이길
인간은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가나니
누워 있자니 바닥으로 스며드는 독소
한때 나의 전부를 이루었던
긴 여정 끝에 육신은 돌아가는 길, 편안히 가벼이
독소로 똘똘 뭉친 몸을 여기 묻어둘 테니
지독하게 뚫고 올라오는 나의 사랑을 알아다오
이 여행 제일가는 기념품이자 짐
감당 못할 내 사랑의 무게였지만
어찌 이고 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 다시 뒤돌아볼 때
너희를 보며 내 여정을 추억하리니
슬픔과 괴로움은 잠시 넣어두고
멋진 여행을 끝냈음을 축하해다오
작가가 말아주는 해설
삶이라는 여정의 끝, 그리고 흙으로 스며드는 여독. 이 여행 제일가는 기념품이자 짐은 감당하기 버거웠던 나의 사랑. 죽어서 묻혀도 알아주길 바라.
처음에 쓰면서 한 생각은, 내가 늙으면 자식들을 보며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퇴고하면서 한 생각은, 그럼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 22년을 살면서 힘들어했던 것 대부분이 인간관계 때문인데 역설적으로 그 관계들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우고 힘을 냈었다. 이 사랑들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짐이고 기념품이다. 여독이 생긴 건 다 이 관계들, 이 사랑들 때문이야. 그 무거운 걸 이고 가려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하지만 어떻게 이고 가지 않을 수 있었겠어.
죽음에 대한 글을 자꾸 쓰게 되는 건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일까.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죽는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사고회로가 변한 것 같다.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달까.
소중한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사람이 생전 나를 사랑했음을 알기에 이겨낼 수 있다. 내가 내일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내가 그 아이의 글들을 읽고 위로를 얻었듯이.
이건 학교에 시와 함께 전시하려고 그렸던 그림. 왼쪽 빈 공간에 시를 넣었는데 오타가 있어서... 나중에 편집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