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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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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 Jan 06. 2018

속초 여행

가볍고자 떠나는 여행이 시작부터 무거워졌다.

혼자 하는 여행이 청승맞지 않으려면, 멋을 부려야 한다.

그런 이유로 옷을 챙기다 보니, 백팩은 겨울 옷의 부피를 감당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여행지에서 갑자기 혼자 책을 읽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 책도 챙겨야 했고,

숙소에서 갑자기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 노트북도 챙겨야 했다.

가볍고자 떠나는 여행이 시작부터 무거워졌다.

그 먼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다닐 생각을 하니 초장부터 힘이 빠졌다.

이러려고 떠나는 여행이 아닌데, 생각을 하면서도 포기하는 게 참 힘들다.

붙잡고 사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쨌건, 여행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

첫 행선지는 바다였다. 속초 해변. 어딘가,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속초 해변. 

담백한 이름이었다. 별 고민 없이 툭 내뱉은 것만 같은 그런 이름.

그렇게 잔뜩 기대를 하고 도착한 속초 해변은 실망스러웠다.

(사실 단순히 어떤 이름에 기대를 하는 것도 우습고, 그것 때문에 실망까지 하는 건, 더 우습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세계 주요 도시들과 속초와의 거리를 보여주는 이정표였다.

도대체 이런 것들을, 구태여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존재했으면 한다.



그래도 바다는 좋았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하면 된다. 물론 그래도 되는 것들에 한해서만)

푸르른 색깔이 이렇게나 청명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눈물이 끊임없이 날 정도로 추웠던 날, 그렇게 맑은 바다를 보게 될 줄이야.

밝을 때부터, 해가 질 녘,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모든 시간의 바다를 보러 간 첫 시작부터가 좋았다.

사서 고생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으니, 정말 괜찮았던 것 아닐까.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이 추운 겨울날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생을 끝내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라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괜찮은 카페가 있다면 커피도 한 잔 마실 겸.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꽤나 생소한 광경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실 속초라는 도시에는 도착할 때부터 느껴지던 어떤 생소함, 낯섦이 있었는데,

도무지가 이 도시는 어떤 곳인가, 하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골목에 들어찬 집들이 만들어내는 정겨운 풍경 위로 생뚱맞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촌스러운 것인지, 복고적인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건물들.

정돈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어수선하게 매무새를 계속 다듬고 있는 듯한.

어떻게 해야 정돈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듯했다.

무언가를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마구잡이로 개발되고 있는 여타의 다른 곳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보면 젠틀한 방식의 파괴 혹은 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인상이었다.


그런 의미로 이색적인 풍경을 마주하며 바다 주변의 동네들을 둘러보는 와중에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언제나 귀엽고, 언제나 사랑스럽다.

심지어는 고양이 한 마리면 국민 대통합이 가능하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고양이가 많은 줄 몰랐는데, 하루에 한 번씩은 고양이를 봤던 것 같다.

이 고양이는 특히나 혼자 땅을 파며 잘 놀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낀 순간, 바로 저런 귀여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는데,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건 미안했지만, 나는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울 뿐이었다.

그렇게 고양이와의 짧은 시간 후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아메리카노가 너무 맹맹했다. 샷 추가가 안 된다는 것이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알바생이 귀찮았던 것이겠지. 그런 날도 있을 테니 더 이상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날이 있으니.

그렇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해가 뉘엿뉘엿 진다는 표현은 어떻게 생겨난 건지 의아했다.

해는 차분히 넘어가는 것 같은데, 뉘엿뉘엿은 어딘가 모르게 물결이 이는 느낌이 들어서.

해는 매일같이, 똑같은 자리에서 일어나, 넘어가는데 매번 그런 식이면 지치지 않을까.




역시나 앞서 말한 세 가지의 시간 중 어두운 때의 바다가 가장 좋았다.

나는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정리하고자 이번 속초 여행을 계획했는데,

정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준 건 아니고,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이 파도와 닮았다는 생각도 함께.


끝없이 치는 파도가 정말 지루한 반복처럼 느껴졌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파도는 없건만, (그날의) 나에게는 어떤 파도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파도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갈 뿐인 것처럼,

가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거대하게 밀려드는 파도도, 

다른 파도들과 다르지 않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달리 방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방도가 없는 것이 방도이지 않을까.

그것이 '허무'만은 아니었음 한다. 또, 아니어야 하며.



이틀째에는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에 갔다.

사실 속초에 가기로 맘먹은 건 이 미술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엄청난 기대가 있었다는 건 아니고,

다만 강원도에, 설악산을 병풍으로 하고 세워진 미술관이라니.

고작 이십 대 중반의 나이를 먹고 느끼는 것은 낭만이라 불리는 것들이 생각보다 사소하다는 것 정도.

그래서 이런 얼어붙은 사진들을 찍는지도.

미술관에 가는 길에 있었던, 얼어붙은 작은 호수.

차를 타고 갔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지만 나는 걸어갔기에, 볼 수 있었다.

물론 일상적일 만큼 사소한 풍경이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의 시선도 받기 힘든 외딴곳에서 얼어붙은 호수에게도 심정이란 게 있다면.



이건 미술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마주했던 (완성되지 않은) 첫 건물인데, 

의도한 건물인지 혹은 어떤 이유가 있어 공사가 중단된 건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조각 작품도 이렇게 거친 날 것의 과정이 있었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 말끔히 다듬어져 나온 조각 작품에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갔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미술관 자체는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설악산과 만나는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눈이 왔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미술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나에게는 오히려 그 편이 나았다.

나는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비치되어 있던 (조각에 관한) 책을 집어 들어 몇 꼭지를 살펴봤을 정도로,

조각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사실 조각이라는 것이, 여전히 영향력 있는 예술인가에 대한 아주 얕은 의문도 가지고 있기에.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하는 소리치곤 굉장히 건방지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작품들이 몇 있었다. 

이 미술관의 관장인 김명숙 씨의 말처럼, 여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사실, 아무런 소리나 한 것이다. 

평소처럼 전시를 즐기진 못했다. 너무 춥기도 했고, 미술관도 굉장히 냉한 공간이었다.

먼 거리이기도 했거니와, (나에게는) 생소한 조각 작품들을 보며 색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기에,

정말 유심히 작품들을 감상했지만 그저 쳐다보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 잘 모르겠다.

형상을 빚는 조각들이 스스로의, 본질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허무해진 마음을 달래려 미술관 속의 카페로 향했건만,

나의 주문을 귀찮아하시는 점원 분의 태도를 보면서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나는 그저 메뉴판에 있는 것을 주문했을 뿐인데. 

하지만 그날도 그 날의 전날처럼 이해했다.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니.

다만 나에게 그런 날들이 연속되었다고 해서, 구태여 나까지 짜증을 낼 필요는 없는 것이겠지.

혹은 내가 방금했던 생각을 들킨 걸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도 해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다소 어이는 없지만 전시관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머그컵을 사기 위해 아트샵으로 갔다.

(나에게는 어디에 가서, 기념품을 사는 일이 정말 흔치 않다)

기념품을 사고 나와 바깥 마당을 둘러보니, 이런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작품명은 보지 못했지만, 마리아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 마리아로 기억한다.

어떤 성스러운 여성의 이미지.


사실 조각을 보며 어떤 아우라를 느끼는 것은, 지금 같은 시대에 웃긴 일이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것이 학습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나는 느껴지는 대로 느낄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그녀의 편안한 표정 덕에 내 마음까지 덩달아 편해지는 듯했지만,

당연히 그녀가 마리아일리는 없었고, (마리아가 저렇게 옷을 흘리듯 걸치고 있을 리 없으니)

(하지만 마돈나라고 생각하면, 전혀 어색하지는 않지만, 마돈나는 또 저런 표정을 짓지 않겠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마리아라고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아마 여체의 아름다움을 찬사하는 맥락에서 어떤 여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일 터인데, 

혼자서 마리아라고 생각하고, 혼자 마리아라고 생각했음을 생각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답이 없는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걸러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건지.

있다고 한들, 그 순수를 알아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그렇다면 곧, 순수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의미가, 그 영향력은 얼마나 미약할 것인지.


결국 스스로 순수하지 못해 내뱉는 변명 같았다. 

스스로에게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조각이 주는 단순한 언캐니와 함께)

작품의 의도는 내가 생각한 바와는 달랐을 텐데, 이제는 어떤 것을 봐도, 스스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모든 것들을 내 마음대로 변용시키려는 이 파시즘적인 태도는, 아마도 나를 더욱 고립시킬 것이 뻔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순수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기에 그럴 필요도 없을진 대.

이제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면 어떤 것도 자극이 되지 않는 어떤 상태에 당도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 극도로 추악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날이 덜 추웠다면,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히 그 날은 너무 추웠다.

몸을 녹일만한 공간 또한 그곳에는 없었기에, 숙소로 돌아갈 길에 서둘렀다.





하지만, 숙소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근 1시간 동안 몸을 녹이니, 방금까지의 추위가 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건대, 그때부터 추위를 우습게 본 결과로 지금 지독한 독감에 시달리게 된 것 같다)

어쨌거나, 그렇게 쉬이 녹아들 것이었다면 얼어붙지나 말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녹아버렸고, 속초에 왔으니 아바이 마을쯤은 들러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 거리를 헤맸다.

사실 순대를 먹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어디가 아바이 마을인지도 모르겠다는 사실. 

허나 알고 보니 사실은 내가 속초에서 항상 보던 곳이 아바이 마을이었다는 황당함.

이상한 곳에 아바이 마을이라는 이정표가 있길래 조금 생뚱맞은 곳에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또 그것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바이 마을은 속초의 일상적 풍경으로 자리 잡은 곳이었다.

잘 알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실향민 마을'이라는 곳에, 어떤 가짜 노스탤지어 같은 감정을 느꼈던 덕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필요는 없을 텐데,

당연히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주 짙은 고정관념을 가진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 아바이 마을이 이미 여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관광지화化된 것과는 별개로.


여튼 그렇게 무작정 걷다 보니, 전 날 갔던 속초 해변과는 또 다른 바다가 보이는 것 같아, 또 무작정 걸었다.

다리 하나를 넘고, 또 한참을 걷고 나서야 대강이나마 눈에 바다가 들어왔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서 떠난 여행은 맞지만, 머리가 얼어붙길 바란 건 아니었기에,

대충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10여 분 정도를 서있는 동안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자마자 정말 괜찮은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돌아가는 와중에는 어떤 풍경도 찾지 않고, 카페 같아 보이는 모든 곳들을 샅샅이 훑었다.

물론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카페는 없었다. (그런 카페가 어떤 모습일지는 나조차 상상이 안되고)

대충 괜찮아 보이는 카페를 찾아갔을 때는 멀리서 봐야 좋은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가까워진 김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라떼인데 맹맹했다. 속초는 맹맹한 도시일까.

덕분에 역시나 푸근하고 따뜻한 잠자리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숙소로 미련 없이 돌아갈 수 있었다.



속초에서의 마지막 날, 내가 찾았던 곳은 설악산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케이블 카를 타고 가는 설악산.

어떤 산을, 케이블 카를 타고 간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짜치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편견을 가진 인간임이 틀림없기에, 도전적인 자세로 임했다. 

허나, 이럴 때는 또 나의 편견이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다 좋다는데, 혼자 볼멘소리하고 싶은 건 아니니 기대와 달랐다는 정도로 말하겠다.

사실 케이블 카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설경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최근 속초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기도 했건만,

그 기대를 놓지 않고 억지로 이어간 것은 나의 미련이 맞으니.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설악산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탓할 필요가 없다.



허나 명성답게, 울퉁불퉁하지만 섬세한 설악산의 능선은 감탄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설악산 국립공원을 말 그대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을 봤을 때, 느낀 어떤 압도감은 굉장하긴 했다.

모든 것이 작게만 느껴졌던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이토록 광활한 무엇인가가 있었구나, 하는 다소 미숙한 생각.

이 설악산을 끝으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엄청 오래 기다려야 할 줄 알았던 버스도 시간표가 잘못된 건지, 고민하는 와중에 도착했다.

더 이상은 없다고, 얼른 돌아가라고 재촉하듯. 



허나 나란 인간은 변덕이 심한 것인지, 미련이 많은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영금정이란 곳은 어떤가 여쭤봤다.

괜찮은 곳이라고 하셨고, 태워주신다는 친절까지 베풀어주신다기에, 당연히 가기로 맘먹었다.

이왕 이도 저도 아니게 된 여행에 무슨 고민이 필요할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고 가는 것도 나름의 낭만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갑자기 물회도 먹고 싶었다. 


이 곳의 파도는 엄청나게 세찼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씻겨져 내려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파도 소리를 한참 듣고 있으니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계획하는 것보다 계획하지 않는 것이 훨 낫다. 기대가 없기 때문이겠지.



그런 진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영금정에 왔으니, 영금정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진부한 생각으로,

진부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진부한 것이 꼭 지루하기만한 것은 아니니.

진부함에 대한 이 말이 진정성 있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여기서 나름의 여행기를 끝내려고 한다.

내가 봐도 여행기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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