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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o Jiyong Jul 15. 2017

최장거리 저격 기록

#20대의 잡설

구글 지도를 켜고 당신의 위치에서 3.5km 떨어진 곳에 점을 찍어보자. 그리고 창 밖으로 그곳을 내다보아라. 아득히 멀어 잘 보이지도 않는 거리이다. 직선으로 걸어도 거의 한 시간이 걸릴 거다. 

 3,540m는 대략 삼성 코엑스에서 석촌호수를 직선으로 이은 거리이다. 출처=구글지도


2017년 5월, 이라크에서 캐나다군 저격수가 3,540m 떨어진 IS 대원을 총으로 쏴 명중시켰다. 거리가 와 닿지 않는다면, 삼성 코엑스 옥상에서 석촌호수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을 쏘는 셈이다. 이전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은 2,475m.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국 저격수가 탈레반 기관총 사수를 사살했다. 당시에는 기적과도 같은 기록이라 여겼으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큰 차이로 경신된 것이다.

 


기록의 세부사항들

관심 있다면 이 신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최고의 저격수가 최적의 조건에서 최고의 장비를 사용한 결과다. 


저격수는 캐나다 최정예 특수부대 JTF-2 소속으로 신변보호와 기밀유지를 위해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용한 소총은 50구경 C15A1으로 알려져 있는데, 맥밀란社 TAC-50 저격소총의 캐나다군용 최신 사양이라고 한다. 총의 제조사가 명시한 유효사거리는 1800m. 이 저격수는 유효사거리보다 두배 먼 거리의 적을 맞춘 것이다.


조준경은 슈미트&벤더社의 3-27배율 PMII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15배율 스코프로 등장한 그 모델이다) 일반적인 아웃도어용 쌍안경이 4~8 배율 임을 생각하면 이 조준경이 얼마나 고성능인지 가늠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구매 가능하다. 관련 면허와 약 400만 원의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말이다.


고품질의 총탄 역시 정밀 사격의 필수요소다. 프로 골퍼들이 고급 골프공을 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번 기록에는 Hornady社의 A-MAX.50 750그레인(49g) 탄환이 사용됐다. 안 그래도 강력한 50구경(12.7mm) BMG 탄환의 항력을 최소화하여 사거리와 탄도를 개선한 정밀사격 전용탄환이다.  

C15A1 소총. 정밀 기술의 집약체다. 출처=Rocke guns


물론 이런 장비가 있다고 총이 저절로 맞을 리가 없다. 3540m 저격 기록은 사격술의 정수에 기적 같은 행운을 더한 결과다. 먼 거리의 목표를 총으로 맞추려면 중력과 바람을 계산해야함은 물론이고 대기 밀도와 습도, 그리고(게임 <콜 오브 듀티>의 유명한 대사처럼) 지구의 자전까지 변수가 된다. 영국의 한 사격덕후 기자가 당시 상황을 간략히 재현하여 계산해보았다. 

해당 기사 : https://www.theregister.co.uk/2017/06/22/canadian_sniper_3450m_shot_iraq/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기사에서는 먼저 6월 초 바그다드의 평균 온도(30˚C)와 고도(34m)와 습도(21%)를 설정하고 거리를 3500m로 잡았다. 계산이 너무 복잡한 풍속, 지구의 자전(코리올리 효과), 지면의 곡률 등은 계산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계산에 따르면 저격수는 조준점을 327각분(arc minute), 즉 5.45˚ 만큼 올려서 목표의 약 310m 위로 수정해야 했다. (조준경의 크리크 수정이나 오조준을 해서)

도형계산기로 만들어본 당시 상황의 간단한 도식. 총탄은 곡선을 그리며 9.7초나 비행했다.

총알은 약 9.7초를 날아 IS 전투원의 몸에 명중했다. 총탄은 소리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그는 총에 맞고 10초 뒤에나 총성을 들었을 것이다. 10초 넘게 의식이 있었다면 말이다. 저격 신기록은 이렇게 경신되었다. 



전쟁의 신기록


세계 기록이 경신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100m 달리기의 9초대 벽은 이미 깨졌고, 마라톤의 두 시간 벽은 곧 돌파될 거라 한다. 작고 약한 육체의 인간들이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기록의 숫자를 조금씩 바꿔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곡의 인간 찬가가 된다.


이번에 저격 거리의 세계 기록이 경신된 것 또한 멋진 일이라 할만하다. 무엇보다 IS 대원은 악으로 규정하기에 무리가 없으니까. 이름 모를 캐나다 특전사는 정의를 행하기 위해 상상할 수도 없는 혹독한 훈련을 거쳤을 것이다. 3.5km 거리의 명중은 수천수만 발 사격 연습의 결과다. 어디 사격뿐일까. 그 수천 배의 거리를 행군하고 산을 오르고 극한의 환경에서 훈련했을 것이다. 손과 발은 불어 터졌다 굳기를 반복하고, 무릎 연골은 닳고 귀에는 이명이 생겼을 거다. 그 결과로 그는 세계를 약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깨질 수 없는 기록을 남겼다. 확실히 멋진 일이다.



하지만 아주 멀리서 보면 결국 비극이 아닐까 싶다. 저격 기록이 경신된다는 것은 지금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살인 기술을 연마하고 장비를 개발하며 서로 총을 쏘고 있다는 뜻이니까. 사격술은 결국 살인술이다.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무기 기술과 사격술은 계속 발전할 거고 이 저격 기록도 언젠가는 경신될 거다. 


그 날은 머지않은 것 같다.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벌써 유도 가능한 총알을 개발해냈다. 사수가 적당히 방향을 잡아 사격하면 총탄이 자동으로 탄도를 수정하며 목표에 명중하는 원리다. 미국의 민간기업에서는 사격에 필요한 계산을 대신해주는 조준경을 만들어냈다. 사격에 필요한 복잡한 계산을 총에 달린 컴퓨터가 대신해준다고 한다. 기술은 발전하고 살육에는 끝이 없다. 


IS 대원을 반격 불가능한 거리에서 사살한 것은 좋은 일이다. 10여 년 전 기록에서 탈레반을 죽인 것도 옳은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10년 후 나타날 새로운 악인을 더 멀리서 저격하는 일 역시 정의로운 일일 것이다. 다만 살인이 옳은 일이라는 것은 인간이 옳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과 살육이 없던 기간은 단 1초도 없었다고 한다. 슬프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쟁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생떼처럼 허무맹랑한 소원이라 해도 말이다. 3.5km의 저격 기록이 더 이상 경신되지 않았으면 한다. 미스코리아 당선자가 세계 평화를 소망한다는 것만큼이나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소망이지만, 어쨌든 진심이다. 


누구나 소망하지만 누구도 달성할 수 없는 세계평화. 사진출처=아시아뉴스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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