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두 가지에 집중된다. 브런치, 그리고 레시피 검색.
처음으로 도전하는 음식은 꼭 레시피를 찾아본다. 보통은 레시피대로 따라가다가 어떤 날은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요리조리 요리법을 바꿔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원래 음식과는 조금 동떨어질 때도 있지만 맛이 좋으면 그 음식에는 내가 만든 새로운 레시피가 곧 정석이 된다.
이게 어떻게 피자야? 혹은 이건 너무 한국식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나만의 레시피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가 최고로 애정 하는 음식이 된다.
엄마표 김치 피자
나는 한식을 좋아한다. 배가 고프거나 혹은 마음이 고픈 날에 생각나는 음식은 늘 한식이다. 퇴근 후에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외국 여행을 하다가는 뜨끈한 된장찌개가 생각이 난다. 심지어 데이트를 할 때에도 파스타보다는 국밥이 좋았고, 스테이크보다는 삼겹살이 좋았다.
그런 나를 위해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은 바로, 이름하여 '김치 피자'이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만남인 것이다. 나는 요즘도 피자를 먹고 싶은 날에는 엄마의 레시피대로 김치 피자를 만들어 먹으며, 어릴 적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김치 피자를 먹던 그 날들을 추억한다.
우선, 적당히 맛있게 익은 김치를 잘게 다진다. 너무 신김치라면 설탕에 잠시 조물조물 절여두어도 좋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그 위에 다진 김치를 얇게 펴서 올린다. 그 위에 계란을 풀어 얇게 편 김치 위에 골고루 부어준다. 계란이 피자 도우 대신이기 때문에, 김치를 조금은 듬성 듬성하게 올려주면 좋다. 이제 그 위에 피자 토핑을 올리 듯 취향에 맞게 재료들을 올려준다. 파프리카, 브로콜리, 양송이버섯, 양파, 소시지... 그리고 피자 소스 대신 소용돌이를 그리듯 케첩을 뿌려준다. 마지막으로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뿌려준 뒤 프라이팬 뚜껑을 닫고 기다리면 완성. 이때 바닥이 탈 수 있기 때문에 약한 불로 요리를 하다가 피자 치즈가 다 녹아 눈처럼 덮일 때 불을 끄고 맛있게 먹어주면 된다.
캐나다 유학 시절에 엄마가 보고 싶거나 한국이 그리울 때 김치 피자를 종종 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김치를 제외하고는 캐나다 마트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기 때문에 다른 메뉴들보다는 쉽게 해 먹을 수 있었다. 가끔은 놀러 온 외국 친구들에게도 선보였었는데,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막론하고 모두가 엄지를 치켜세웠던 메뉴였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김치 피자 광팬이 되었고, 지금은 김치 대신 아쉬운 대로 양배추 절임을 넣어 종종 해 먹는다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들만의 레시피가 또 생긴 것이다.
피자는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엄마는 한식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김치 피자라는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주셨다. 피자 도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최적의 음식이다. 이탈리아 식 피자와는 확연히 다른 레시피이지만, 엄마는 그렇게 사랑을 담은 김치 피자를 내게 선물해주신 것이다. 맛집으로 소문난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먹을 때 보다, 엄마표 김치 피자를 먹을 때 나는 더 행복하다.
이거... 우리 가족 비밀 레시피야
작년 이맘때쯤, 신랑은 꼭 연어를 사서 대접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대망의 그 날이 왔다. 나도 한창 연어에 맛을 들였던 때라 연어를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다. 능숙한 솜씨로 한 덩이의 연어를 먹음직스럽게 썰어 한 접시 가득 담아 올리고 난 후, 그는 연어와 함께 먹을 재료들을 이것저것 부지런히 꺼낸다. 그런데 연어와 먹는다고 하기에는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오빠, 연어 먹는 데 쌈장이랑 멸치 볶음을 왜 꺼내?"
"이거... 우리 가족 비밀 레시피야. 아버지가 전수해주신 비법이지. 우리 가족은 늘 이렇게 먹어."
궁금했다. 연어를 먹는데 도대체 왜 쌈장과 멸치 볶음이 필요할까. 어떻게 먹는다는 이야기인지 얼른 맛보고 싶었다.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고 먼저 시범을 보인다.
먼저 쌈배추 하나를 손에 올린다. 큼직하게 썰어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연어 한 점과,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 한 숟가락을 배추 위에 올린다. 그다음 기호에 맞게 고추냉이나 간장, 쌈장 등의 양념을 얹어준다. 그러고 나서 무순, 날치알, 고추장 멸치 볶음을 차례로 올려준다. 이제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입 가득 연어 쌈을 맞이한다.
수분 가득한 배추쌈과 함께 연어가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오도독오도독 터지는 날치알을 느낄 때쯤, 고추장 멸치 볶음이 연어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나에게는 다소 새로운 이 조합이 너무나도 환상적이다. 이런 연어 쌈이라면 한 상 가득 올려진 연어들을 다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날을 시작으로 우리가 연어를 먹는 날에는 꼭 이 조합이 완성된다.
이 새로운 레시피 또한 아버님의 사랑으로 탄생한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연어를 먹기 위해 고민하시다 연어계에 새로이 자리를 잡게 된 레시피. 우리는 아버님만의 연어 레시피와 함께, 아버님의 사랑도 함께 먹는다. 그리고 늘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연어를 먹으며 행복했던 그 순간들을 함께 추억한다.
아무리 맛집이라 하더라도 내 입맛에 안 맞으면 그만이고, 아무리 유명한 셰프의 레시피대로 만든 요리라 해도 먹는 내가 만족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먹어야 정석이고, 이렇게 요리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레시피는 재미없다. 조금은 다르게 가더라도 먹는 이의 입을, 그리고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그 음식이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세상에 틀린 레시피는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