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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Aug 05. 2020

버버리 세 글자에 팔린 예비 며느리의 양심

지금으로부터 2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다. 그 당시 신랑과 나는 결혼 전이었고, 나는 예비 며느리였기에 농담으로라도 이 에피소드를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웃으며 말씀드릴 수 있는 며느리가 되었고, 우리 어머님과 아버님께서도 브런치에 뜬 알람을 보며 얼른 글을 읽으시고는 두 분이 배꼽 빠지게 웃으실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신랑과 어머님, 아버님과 다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제천에 사시는 우리 어머님과 아버님께서는 울산에 있는 자식들을 보러 가끔 내려오시는데, 그때마다 항상 양손 가득 우리에게 주실 것을 가져오신다. 그날도 어김없이 양손이 모자랄 정도로 이것저것들을 챙겨 오셨다.


여느 때처럼 식사 시간은 즐거웠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결혼 준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어머님께서 신랑에게 "아가 줄려고 가져온 버버리 가방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띠옹?

생각지도 못했던 버버리 가방을 선물해주시다니... 순간 나도 모르게 기대를 했는지 입꼬리가 올라가려던 찰나, 나는 그만 버버리 세 글자에 내 양심이 팔렸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버버리는 내가 알고 있던 바로 그 명품 버버리가 아니었다.


우리 아버님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명품 버버리가 아닌 또 하나의 버버리가 있다. 바로 안동을 대표하는 '버버리 찰떡'이다. 때마침 명절을 앞두고 있던 터라 우리 부모님께 선물로 드릴 버버리 찰떡을 직접 사서 울산에 내려오신 것이다. 표현하기에도 벅찬 이 감사한 마음 앞에, 나는 속으로 너무 창피하고 죄송하기만 했다. 


그렇게 버버리 찰떡을 안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신랑에게 솔직히 고백을 했다. "오빠, 나 사실 아까 버버리 가방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버버리 찰떡 주시면서 부모님 갖다 드리라고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거 듣고 나 혼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지 뭐야. 따뜻한 마음으로 챙겨주신 그 선물을 나는 어찌 그리 속물처럼 생각했을까." 하고 죄책감을 표하는 내게 그럴 수도 있다며 신랑은 엄청나게 큰 소리로 하하하 웃어댔다. 


버버리 가방을 받으면 어떻고, 또 안 받으면 어때. 나는 그 어떤 명품보다도 값진 명품 신랑, 그리고 명품 시부모님을 선물로 받은 행복한 며느리이다. 한 때는 명품 버버리를 받고 싶었던 예비 며느리였으나, 이제는 내 능력껏 명품을 선물해 드릴 수 있는 진짜 며느리가 되었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내가 좋아하는 옷, 비싼 가방을 사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는, 먼저 명품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가득하다. 아가씨 시절에는 몰랐던 이 소중한 마음을 선물해주신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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