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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Oct 10. 2019

코르크 마개와 추억의 상관관계

시월에 들어서자 성큼 다가온 가을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유리창 가득 아침 햇살이 거실을 비추고, 싱그러운 가을바람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100일도 채 안 되었던 풋풋했던 연애시절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하는 것들이 많아 모든 것이 설레었던 작년 가을, 우리의 수많은 처음 중 '첫 파티'를 떠올려본다.




우리의 첫 번째 파티


이사 기념으로 파티를 열자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작년 이맘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내려와 혼자 살고 있던 그가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따뜻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부랴부랴 짐 정리를 끝내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은 그는, 나를 첫 집들이 손님으로 초대해주었다. 이사 기념으로 파티를 열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파티였다.




첫 와인, 그리고...


코르크 마개에 날짜를 기록해두자


분위기를 잡는 데 와인이 빠질 리가 없었다. 와인의 달달함 때문이었는지, 그 날의 행복함 때문이었는지 그 날 먹었던 와인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와인은 우리 부부가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을 때면 자주 찾는 와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코르크 마개에 그 와인을 마신 날짜와 이벤트를 간단히 적어서 보관해뒀다가, 가끔 꺼내어 보면서 그 날을 추억하자."


그 날의 첫 파티를 시작으로 우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코르크 마개에 특별한 날들을 기록했다. 첫 크리스마스, 첫 설날, 웨딩홀을 계약하던 날, 그가 내게 프로포즈를 하던 날...  우리의 처음이, 우리의 특별한 날들이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것만 같아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을 코르크 마개가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듯하다.


규칙은 간단하다. 코르크 마개에 날짜를 쓰고 간단히 메모를 한다.


18.12.25 첫 크리스마스

19.02.17 웨딩홀 계약

19.06.26 프로포즈


코르크 마개를 유리병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날아가버릴 것만 같던 우리의 추억이 코르크 마개와 함께 병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코르크 마개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우리의 추억도 하나씩 쌓여간다.


코르크 마개와 포스트잇 메모


아쉽게 와인을 마시지 못한 날에는 포스트잇에 간단히 메모를 해서 넣어 둔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소소하게 보낸 행복했던 날들에 대한 기록을 써서 넣어두기도 한다. 오며 가며 유리병을 볼 때마다 큰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듯이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매년 다가올 크리스마스마다 해야 할 일을 하나 정했다. 크리스마스 날 밤이 되면 이 병 속의 코르크 마개와 포스트잇 메모를 꺼내서 하나하나씩 보며 그 날을 추억해보자는 것.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점점 더 많아진 코르크 마개와 함께 우리의 얘깃거리도 많아지겠지. 이렇게 소소한 행복들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다.


병을 여니 진한 와인 향이 피어오른다. 그 와인향이 내 코 끝을 스치면, 우리의 추억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흘러 이 병이 다 차 있을 때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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